시련을 만났을 때

복음............... 조회 수 928 추천 수 0 2004.09.17 15: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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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만났을 때(18)

본문: 삼하 16:5-14

이탈리아에 한 소아마비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비관해 깊은 밤중에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오히려 정신이 더 맑았습니다. 어머니가 딸의 자살의도를 눈치채고 독약이 든 병에 영양제를 넣어 놓은 것입니다. 소녀는 다음 날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주민들의 눈에 띄어 구조됐습니다. 어느 날, 소녀에게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야, 네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으련?” 소녀는 열심히 기도하며 그 대답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깨달은 그녀는 지금 방송국의 인생상담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온전한 인간을 만듭니다. 시련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재료입니다. 세계적인 작가들은 모두 그 시련을 재료로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인생은 고갯길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올라가기만 하는 신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 한없이 내려가는 암담한 날도 있습니다. 푸른 초원과 잔잔한 시냇가에 사는 평안의 날도 있는가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절망의 어둠에 싸여 고통을 받는 날도 만나게 됩니다. 순풍의 돛을 단 듯이 순항(巡航)하는 순간도 있는가 하면,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우로 파선 위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사업이 잘 됩니다. 자녀들이 별로 속을 태우지 않고 잘 자라줍니다. 오히려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이 생길 정도로 가정의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모든 출구(出口)가 막힌 듯이 보여지는 날도 만납니다. 사업이 부도 위기를 만나서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판에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교통 사고를 만나 덜컥 입원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낄 정도로 죽을 맛입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은 시련의 깊은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도망하는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 이복형인 암논이 자기의 친누이 다말을 성적으로 범했을 때 화가 나서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다윗 왕이 자기의 이복동생인 솔로몬에게 왕위(王位)가 물려준다는 것을 알고 유다의 불평 불만자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할 정도로 막강한 장수와 군사력을 가졌으나, 아들과 차마 싸울 수가 없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피난길에 오릅니다. 옆에 보위하던 장수들은 화가 났을 것입니다. 아비에게 반역을 일으킨 이 천하 패륜아를 당장에 쳐들어가서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일어났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자식을 끔찍하게 위하고 있으니 차마 말을 못 꺼냅니다.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골리앗 장수 앞에서도 물 맷돌 몇 개만 들고도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 싸우던 용감하던 다윗,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의로운 다윗은 어디로 가고 허둥지둥 도망치는 초라한 꼴이 되었는가? 삼하15:30절에 보면, 다윗이 감람산 길을 통해서 도망칠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갑니다. 이에 함께 가던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갑니다. 너무나 초췌한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일생 전투에서 승리해 왔던 부하들의 가슴은 안타까움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더 비참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감람산에서 여리고를 향해 60리 정도 내려가야 요단강에 이릅니다. 다윗 일행이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바후림이라는 곳에 왔을 때였습니다. 사울의 집 족속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란 자가 나와서 고함 고함을 지르며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고 욕을 퍼부으며 저주합니다.
"피를 흘린 자여, 이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사울왕 대신에 왕이 되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쫓기어 도망치는 처참한 지경에서 이런 욕을 당하니 얼마나 화를 치밀었을까요? 더욱이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데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윗의 장수 중에 요압의 동생 아비새가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감히 저주하리이까? 당장 강을 건너가서 저 못된 놈의 머리를 베게 허락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펄펄 뛰면서 흥분했으나 다윗이 가까스로 말렸습니다. 겨우 피난을 갔으나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차지한 압살롬이 간신 아히도벨의 간계를 듣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강제로 동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으면서 다윗이 너무나 낙심하여 죽은 자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대세가 이처럼 압살롬에게 기울자 다윗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배신하고 새로운 왕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 특히 정치생명이 끝나버린 절망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련의 날, 절망의 날 속에서도 다윗은 믿음으로 견딘 결과 마침내 승리의 날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러한 다윗의 사건을 통해서 배울 교훈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그 동안 얼마나 승승장구 올라가는 삶만 살았습니까? 그 앞에는 언제나 푸른 초원과 잔잔한 시냇가, 쉴만한 물가만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사자와 곰과 싸워서 이기게 하시고, 심지어는 당대 천하무적의 장수 골리앗과 싸워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루아침에 백성들의 스타가 되고, 단번에 왕의 사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병적인 시기로 인해서 갖은 핍박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는 식사 중에 창을 던져서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 핍박 속에서도 저는 하나님의 제일주의 삶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왕의 자리까지 높이셨습니다. 그가 왕이 된 뒤에도 저는 결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과 조국, 백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왕의 신분으로도 전쟁터에서 앞장서서 나가 싸우는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모든 장수나 군사들이 감격하여 전력투구함으로 전투마다 연전연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정도로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하게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은 '이제는 좀 쉬자. 왕으로 위신을 찾자.'라는 생각에서인지 왕궁에서 편히 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다윗의 위기가 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삼하11장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과 전쟁을 벌리고 있는 동안, 다윗은 왕궁에서 오랫동안 낮잠을 자다가 늦게 일어나 왕궁 지붕을 산책하다가 왕궁 뜰에서 목욕하는 밧세바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궁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왕궁 주변에 있는 평인(平人)들의 집 안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뜰은 담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흔히 목욕을 해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밧세바의 목욕하는 아름다운 자태를 보자, 음욕이 일어나 그 여인을 불러다가 음란을 저질렀습니다. 자기에게는 많은 여인이 있음에도 그런 욕심이 생겼다는 것과 그것도 자기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윗이 영적 긴장이 풀어졌으며, 동시에 양심이 무디어졌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자기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아를 꾀어서 여러 가지 감추는 수단을 부리다가 안 되니까, 최전방에 보내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다윗이 영적으로 병드니까, 음란과 살인 두 가지 죄를 짓게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때부터 그렇게 튼튼하고 평안하던 다윗의 가정과 국가는 엄청난 시련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밧세바가 낳은 불의의 씨앗인 어린 아기가 비참히 죽습니다. 이어서 악질(惡疾)이 돌아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암논이라는 아들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제로 강간했고, 이에 분노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마침내는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에게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범죄의 결과는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는 날이 옵니다. 다윗이 악을 저질렀다고 즉시 악의 열매를 거둔 것이 아닙니다. 수년 동안의 세월이 가면서 점점 그 씨가 자라 마침내 악의 열매를 거두는 날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이 자기를 벌주지 않으셨다고 용납하신 것은 아닙니다. 마침내 악을 심은 대로 거두는 날이 오는 줄 알고 철저히 회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때보다 모든 것이 평안하고 형통할 때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느 부부는 가난한 때는 그렇게 부부가 잉꼬처럼 우애가 깊고 신앙생활을 잘 하더니 사업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가고 집안 살림도 좋아지니까. 기도생활, 충성생활을 게을리 하더니 부부 사이도 나빠집니다. 더 나가서는 깨어지기도 합니다. 안 됩니다. 어려울 때보다도 평안하고 형통할 때에 더 영적 긴장을 놓치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서 충성하고 깨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영적으로 잠자고 있으면 사탄이 틈을 타서 하나님과의 관계, 식구와의 관계를 깨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전도관을 시작한 박태선 장로는 처음부터 이단(異端)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저는 남대문교회 집사로서 열심히 노방전도를 할 정도로 모범적인 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생활을 한지 21년 되는 때에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에서 참석하여 3일을 금식하며 열심히 기도하다가 새벽 4시에 성령의 큰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그를 통해서 고침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산에서 김치선 목사님과 스완스 선교사와 함께 10일 동안 집회할 때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은혜를 받았는지, 엄청난 헌금이 모여지고 금가락지만도 몇 가마니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가 정신을 차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하나님처럼 받들어 주고 집회가 끝나면 여인들이 최고의 음식과 다리와 몸을 주물러 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러자 교만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결국 기성교회를 맹렬히 비판하고 칼빈의 예정론을 뒤엎고 자기를 감람나무로 자처하기 시작하면서 '기성교회는 마귀의 전당이니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함으로 이단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신도들의 피땀 어린 재산들을 착취함으로 덕소에 제1신앙촌, 소사에 제2신앙촌, 경남 기장에 제3신앙촌을 설립하는 등,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지만 결말이 너무 비참하고 그 자녀들은 천한 패륜아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안하고 형통할 때, 방심하거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또 조그마한 죄라도 소홀히 보지 마십시오. 오직 깨어서 기도하고 깨어서 충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시련의 강을 다윗은 오직 겸손히 건넜음을 배워야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 비참한 모습으로 임진강을 건너던 인조대왕처럼,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유비가 신하들과 백성들을 거느리고 양양으로 피난 가던 그 처참한 때처럼 지금 다윗은 아들의 칼날을 피해서 요단강, 그 시련의 강을 절망의 가슴으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비참한 때에 시므이라고 하는 보잘 것 없는 자가 계속 따라오며 욕설을 퍼붓고 저주하고 돌을 던지면서 모독의 먼지를 일으키니 기진맥진할 지경입니다.
정말, 다윗은 요단강에 머리를 박고 죽고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보다 못한 아비새 장군이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데 나로 건너가서 저 놈의 목을 베게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에게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고 했습니다.
또한, 또 11절에 보면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에게 저주하게 두라."고 했습니다. 지금 시므이가 저렇게 욕하고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시각(視覺)에서 이 사건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적으로 한없이 교만하고 방자하던 다윗이 철저하게 하나님 아래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반역의 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려는 압살롬의 탓도 아니요, 저기 이를 시리 물고 욕하면서 돌을 던지고 있는 시므이 탓도 아니라, 바로 자신의 탓이요, 나의 연고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요, 하나님 앞에 깨어진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 탓이다.'
'누구 때문이다.'라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세는 성도들의 진정한 자세가 아닙니다. '나의 탓입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은 탓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다른 이의 허물까지 대신 십자가를 지는 자세가 성숙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시련을 만나거든, 결코 다른 사람의 탓이나 무슨 환경 탓으로 돌리기 보다 먼저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나의 연고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진 모습을 보이심으로 문제 해결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시련의 강을 건너면서 다윗은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었습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지경 가운데서도 12절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시련의 날 속에서 교만했던 죄, 음란죄, 살인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낮아질 때에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실 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고도의 군사작전을 써서 압살롬의 군대를 고립시키고 승리함으로 나라를 도탄에서 구할 수 있고 왕의 권위도 회복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 저렇게 악착같이 따라오면서 욕과 저주와 돌을 퍼붓는 안하무인격의 시므이를 당장에 처형함으로 일행들의 사기를 높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철저히 경책하고 낮추기 위해서 역사 하시는 사건인 줄 믿었기에 인간 수단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압살롬의 칼에서 하나님의 칼을 보았고, 시므이의 욕설과 저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과연, 다윗이 이러한 믿음대로 나갈 때에 압살롬에게는 더 막강한 군대가 있고, 아히도벨이라는 최고의 전략가가 있을 지라도, 전쟁에서 다윗에게 승리하게 만드심으로 아히도벨은 자살하게 되고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압살롬이 늘 큰 자랑으로 여기던 긴 머리채가 상수리 가지에 걸리고 노새는 달아남으로 뒤쫓아온 요압 장군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이 큰 시련을 겪은 후에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에 다시 요단강을 건네게 되었는데, 그렇게 욕과 저주를 퍼 붇던 시므이가 와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 때 아비새 장군이 다시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죽여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말했으나, 다윗은 삼하19:22에서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고 한 후 시므이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예루살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안 압살롬의 편에 섰던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다가 안심을 하면서 민심이 안정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말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교만과 자기 자랑과 죄악의 불순물을 제거함으로 더욱 더 겸손의 왕, 더욱 더 덕이 넘치는 성왕이 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 길을 가다 보면 시련의 강을 건널 때가 있습니다. 이 시련이 우리의 실수나 죄로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 시키기 위해 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연히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련은 아픔과 쓴 눈물과 많은 손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날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겸손과 회개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통해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시련은 손해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자기의 죄와 인간의 연약을 깨닫게 함으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므로 영적 성숙을 가져오게 하며, 마침내는 더 좋은 길로 인도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게 하십니다.
어떤 책에 기독교인이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고난의 학교에서 4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견딜 수밖에 없다."는 말을 배우는 단계로, 고난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십자가를 배우는 단계요, 두 번째 단계는, "나는 참고 견딘다."고 하면서 고난은 힘들지만, 자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 고난을 떠맡는 단계요, 세 번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고난을 이기는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는 "나는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단계로, 여기서는 고난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임이 나타나는 표적이 되고 시험이 오면 오히려 기뻐하는 위치까지 이르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간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나 거기를 지나면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더 좋은 초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같이, 시련의 강을 건너면 더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어야 합니다.
성도가 시련을 당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해야 합니다.(시118:5, 약5:13)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을 통해서 나의 힘이 얼마나 무력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당연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더 겸허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시련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는 마술적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현입니다. 기도를 마술적 능력으로 아는 사람은 기도할수록 마음이 높아지지만 기도를 신뢰의 표현으로 아는 사람은 기도할수록 겸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을 통한 기도의 기회'를 통해서도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에덴은 결코 펼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크리스챤 옵서버」라는 잡지에는 이런 귀한 예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912년 4월 타이타닉이라는 호화선이 서덤튼 항구를 떠나 항해하던 중에 거대한 빙산에 부딪혀 1,635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있었는데, 그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산 어느 성도의 간증입니다. 한 미국 부인이 밤에 자려는 데 남편에 대해서 너무나 불안하여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열렬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시간을 기도해도 평안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다가 새벽 5시경에야 굳건한 확신과 평안을 얻고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 부인의 남편은 귀국하려고 타이타닉호를 탔다가 침몰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명정을 타려고 했으나 수백 명이 매달려서 탈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여자와 아이들만 태우기로 하고 남자들은 생명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여인의 남편도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여보, 잘 있어요."라고 공중에 눈물로 외치고는 거대한 배가 침몰할 때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돌연, 물위로 솟구쳐 떠오르게 되고 가까운 곳에 구명 보트가 뒤집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배 위로 올라가 생명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시간이 바로 미국 시간으로 새벽 5시였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미국에 돌아온 남편은 자기가 물에 빠진 시간에 아내로 하여금 강권적으로 기도하신 것과 새벽 5시에 확신과 평안을 준 것과 더불어 그 시간이 자기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뀐 시간인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감격하여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그 죽음의 시련이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지름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인내해야 합니다.(롬12:12)
시드니 올림픽 여자 다이빙에서 우승한 미국의 로라 윌킨슨. 그녀가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당한 것은 지난 3월. 코치는 윌킨슨을 향해 '올림픽 출전불가'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에 수십 번씩 한 성경구절을 묵상하며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림픽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윌킨슨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성구는 빌립보서 4장 13절이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희망적인 성구 하나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운동선수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육상 여자 800m 금메달 수상자인 모잠비크의 무톨라. 포연이 걷히지 않는 전장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마땅한 놀이가 없어 남자들과 축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굶주림과 고독을 재료로 삼아 세계 최고의 육상선수로 우뚝 섰습니다. 시련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고난은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최상의 재료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고 즐거워해야 합니다.(빌3:10, 롬8: 17, 고후4: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 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넷째,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시42:11, 시43:5)
'수재'로 불린 한 영국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명석한 두뇌로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며 가끔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그는 "신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절망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늘이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중에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실명하기 전 거리에서 만났던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저 사람들을 위한 일이 무엇일까?" 청년은 그 때부터 맹인들을 위한 점자를 연구하기 시작해 '문 타이프'를 개발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윌리엄 문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성경을 편찬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한 순간의 시련과 고통은 삶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인생의 용광로가 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손길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하나님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시련은 그러한 우리의 의심의 눈을 고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눈을 뜨게 하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헌신하도록 합니다. 그러한 헌신은 마지막 날 칭찬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됩니다.
다섯째, 믿음의 선배들도 동일한 시련을 겪었음을 알고 그들을 본받고자 할 때 시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벧전5:9)
시련을 이긴 대표적인 인물로 요셉(창37:28,29), 욥(욥2:8,9, 욥7:4,5), 베드로(행4:21, 행12: 3- 17), 바울(고전4: 9- 13, 고후6:4- 10, 딤후4:7) 사도요한(계1:9) 등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 길을 가다보면 올라갈 때도 있지만, 내려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라갈 때, 평안할 때 방심하지 마시고 깨어서 기도하고 충성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시련의 강을 건널 날에도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더욱 더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 하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고 좁은 길로만 따라 가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기도: 우리의 보호자 되신 주님, 시련과 위기의 먹구름 속에서도 당당히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시련을 통해 더욱 큰 발전과 지혜를 얻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위기와 신앙

우리의 살아가는 삶에는 시시각각으로 위기가 오고 지나갑니다. 이런 위기앞에서도 최대의 평안을 누릴수 있다면 그는 성자입니다. 마가복음 4장 38절에 보면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은 노도와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의 위기앞에서도 고물을 베개하시고 주무셨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그는 창조주이셨고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닥쳐온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지만 제자들은 최대의 능력앞에 떨고 있는 최대의 불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의 능력보다도 갈릴리 바다의 풍랑의 위력앞에 압도당하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보다 세상이 더 크게 보이는 한 인간은 좌절의 늪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불안의 벽을 무너뜨릴수 없다. 이럴때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최대의 신앙입니다. 캄캄한 밤일수록 등불이 필요하고 높은 산일수록 지팡이가 요구되듯이 큰 위기앞에 요구되어지는 것은 믿음입니다.
"풍랑이 문제가 아니고 불신앙이 문제임을 깨달아야한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풍랑뒤에 서계시는 그분을 보실수 있는 눈은 있는지요? 문제앞에 해결사되시는 주님을 보실수 있는 믿음은 소유하고 있는지요? 시련을 만났을 때 불신앙이 아니라 신앙인이되여 우리앞에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주를 위해 어떠한 시련과 고난도 기뻐하는가?
0 나는 시련과 고통 속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까?
0 나는 극한적인 고난과 시련 중에라도 결단코 절망하지 않는가?
0 이 어려움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0.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시련과 박해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내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0 아무 죄 없이 시련과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내가 십자가의 길을 따를 때 기뻐하실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0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나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나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모두 맡깁니까?

3. 예화(1) : 나방의 날개

애벌래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동안 관찰한 찰스 코우만 여사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맨 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저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다닐 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온 탓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이 없는 삶을 바랍니다. 그리고 고난이 없는 삶이 축복된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온전한 인격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 예화(2): 시련은 성장의 기초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에 두 번이나 후보로 오른 리브 울만은 일찍이 노르웨이 국립 연극 학교 오디션에서 탈락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제 잡지 [포브스]의 발행인이 된 말콤 포브스는 프린스톤 대학 시절 학교 신문 기자 시험에 보기 좋게 탈락한 사람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대중 가수로 사랑 받은 엘비스 프레스리는 1954년 단 한 번의 공연을 한 뒤 곧바로 매니저에게 해고된 사람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라고 하는 에디슨은 초등학교 시절에 교사들로부터 너무 느려터지고 다루기 힘들다고 팽개친 사람이되어 초등학교를 중도에 하차한 사람입니다. 존 밀턴은 44세에 장님이 되었으나 그로부터 16년 뒤 그는 [실락원]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썼습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지만 그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서부 소설의 성공적인 작가 루이스 라모르는 출판사로부터 350번이나 거절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픔은 성장을 위한 거름일 뿐입니다.

4. 찬송: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5. 성경 말씀:
0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2:18)
0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0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9)
0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
0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3:12)
0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6. 금언:
0 고난을 당하여 쓰러진다면 네 힘은 아직도 약하다는 것이다.
0 자기의 고난은 참아야 하고 남의 고난은 돌보아 주어야 한다.
0 불은 쇠를 시험하고 역경은 강자를 시험한다.
0 역경을 당했을 때 비로소 참다운 벗을 안다.
0 사랑하는 곳에 고생은 없다. 만일 고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고생이야말로 즐거움이다.
0 고생 끝에 낙이 있다.
0 편히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0 큰배는 깊은 물이 있어야 한다.
0 큰 나무는 많은 바람을 맞는다. ( Tall trees catch much wind )
0 괴로움을 피하지 말라. 괴로움은 인생의 본질중의 하나다. 인생에 괴로움 이 없다면 만족감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깊은 골짜기가 있을 때 산은 높은 법이다.(도스토예프스키)
0 우리는 매일 먹고 또 잠을 자지만 지치지 않는다. 주림과 수면이 새로 오 기 때문이다. 만일 평화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정신은 금방 지쳐 버리고 말 것이다. 고통은 정신의 양식이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다면 극히 무능력한 상태가 오고 말 것이다.(파스칼)
0 밤의 어둠이 하늘의 빛을 나타내듯이 고뇌만이 인생의 모든 의미를 계시 한다. 고통을 통해서 인생은 참다운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톨스토이)
0 초인이란 필요한 일을 견뎌 나갈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니체)
0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칼빈)
0 고난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채찍이며, 고난은 승리의 전주곡이다.
0 낮에도 별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저것 볼 수 있을 때에는 별을 보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에야 비로소 영롱한 별빛을 볼 수 있습니다.
0 나무는 뿌리에 물만 있다면 햇빛이면 뜨거울수록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고난 속에서 강해지고 고난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고난 속에서 성장한다. 뿌리가 생수의 공급 없이는 아무리 좋은 햇빛을 받아도 메말라 죽듯이, 귀한 고생과 역경에도 말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말씀 없 이 당하는 고난은 비참하여 마침내 자살로 연결되고 만다. 말씀의 생수만 얻을 수 있다면 고난은 있을수록 좋고 햇빛은 강할수록 좋다.
0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곤고를 견디어야 한다.(메난드로스)
0 남몰래 뿌리는 눈물 맛이 달다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면 아직은 사람이 덜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학교에는 고난이라는 과목이 필수인 것을...
0 공부할 때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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