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아내에게

운영자............... 조회 수 464 추천 수 0 2001.08.31 06:06:58
.........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랩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이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


/황지우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je333.ce.ro, 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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