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보고서

운영자............... 조회 수 479 추천 수 0 2001.12.02 20: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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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보고서




1999년 12월 31일, 미카엘 대천사님께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창문을 열었을 때, 세상이 온통 안개에 싸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밀레니엄 버그를 하루 앞둔 오늘, 덕분에 전세계의 모든 비행기는 결항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천사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하신 거군요. 제가 지상에 내려온 이후, 스무 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카엘 대천사님께 드리는 스무번째 보고서(라기보다는 편지에 가깝지만)가 되는군요.


저는 대천사님의 뜻대로 인간의 감성을 완전히 배우고 익혀, 이제는 다른 지구인들과 아무것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매일매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지구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에는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도대체 왜 지구인들은 밤에 자야하고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지...).


어쨌든 지난 한 세기 동안은 미카엘 대천사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신대로, '지구인들의 사랑의 기록 중 한가지 케이스를 골라 그것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9세기 말에 제가 보내드린, '지구인에게 사랑은 없다'라는 편지를 보시고 결정하신 일이었겠지요. 대천사님의 명을 받은 이후, 저는 지구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들추어 보면서 수억 가지의 사랑의 케이스를 연구, 분석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직도 지구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지금까지 연구, 분석했던 케이스 중에서 한가지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것이 제가 찾던 그 사랑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희미한 희망의 빛을 간직한 사랑이니까요.


그녀는 180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2백년도 채 안된 이야기지요. 그녀는 열한명의 아이 중 장녀였고, 어머니는 그녀가 스물두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자였지만, 괴팍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열한 명의 자녀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결국 그 중 아홉명은 평생동안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살았다고 합니다(나머지 두 명은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다음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 말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이후 계속 집안에서만 생활했기 ‹š문에, 폐가 약해져서 결국 폐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집안의 장남이자 그녀의 남동생인 에드워드는, 그녀와 함께 해변가로 놀러갔다가 물에 빠져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녀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세상과 결별해버리고, 혼자서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플러시'라는 이름을 가진, 한 마리의 개였지요.


(대천사님, 한가지 이상한 것은, 이후 '거의 완성된 사랑'을 하게 되는 그녀가 어디서 사랑의 방법을 배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군이었고,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가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까요.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난 아이들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를 만나기 전까지, 말씀드린 대로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인간의 말도 못하는 한 마리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플러시'로부터 사랑을 배웠을까요?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보다 개의 희생적인 사랑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만, 대천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야기를 계속 하지요. 그녀의 시는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고, 그녀의 시를 읽은 손님들이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건강이 괜찮을 때면 손님을 만났고, 그 외의 시간은 시를 쓰거나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그녀가 서른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특별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역시 시인이었는데, 그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임을 밝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책을 통해 그의 시를 알고 있었으며, 게다가 그의 시를 평소에 좋아하고 있었답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한지 일년 만에 그가 그녀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었던 서른 세 살의 시인은, 그녀와의 첫만남 이후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대천사님,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은, 지구인들이 말한 사랑이라는 단어 속에서 환상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들의 알고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아주 회의적인 입장인데, 이 두사람의 경우 역시 환상에서 시작된 사랑이 아닌가요?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그 환상이 어째서 깨어지지 않고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애초부터 이 두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하나의 영혼으로 묶인 사람들일까요? 저의 의문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요. 하지만 그녀는 혼자 힘으로 침대까지도 갈 수 없는 환자였고, 이미 나이도 들었기 때문에, 그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그는 그녀의 곁에 머물면서, 그 모든 것이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고 그녀를 설득합니다. 그녀에게서 마침내 허락을 받아내기까지, 일년 반이 걸렸다는군요.


(사실 우리끼리의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이 기간동안 그들이 몇몇 천사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짐이 되지 않으려 했던 그녀가 밤새도록 눈물을 흘릴 때, 우리 천사들 중의 몇몇이 그녀의 주위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지요. 그녀의 거절을 몇번이나 되풀이해서 듣고 좌절에 빠진 그의 주위에도 우리 천사들이 있었다지요.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한 진정한 사랑을 얻고자 갈망했으며, 그 사랑을 지켜갈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사들은 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녀의 아버지 몰래 결혼식을 올리고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그의 사랑은 한없이 깊고 따뜻했으며, 그 사랑에 의해 그녀의 병은 치유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풍요롭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 부부를 만난 어떤 이는 이렇게 썼더군요.


<그들보다 행복한 가정과 완벽한 결합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한숨 쉴 필요도 없는 마음을 지닌 그들의 결합은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아아 대천사님, 이것이야말로 제가 찾고 있는 사랑에서 가장 근접한 것입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한숨 쉴 필요도 없는 마음을 지는 결합' 말입니다.


저는 수세기 동안 이런 사랑을 지구에서 발견하고자 애를 썼으나, 거의 모든 사랑은 갈망과 집착과 욕심과 한숨으로 가득차 있었답니다. 때문에 지난 번 편지에서 저는, '지구인에게 사랑이라는 축복을 내리지 않으신 것 아닙니까?' 라고 질문 드린 것입니다. 대천사님께서는 그저 모든 사랑의 케이스를 조사해보라고 말씀하셨지요. 덕분에 저는 이렇게 동화같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의 마음은 아직도 캄캄합니다. 이러한 완벽한 사랑을 얻는 이들은 너무나 소수에 불과하며, 그것을 제가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대천사님과 저와의 약속을 기억하시겠죠. 완벽한 사랑을 얻기 전까지 저는 하늘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였고, 그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 저에게 지구인의 시간을 주시겠다고 대천사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겨우 하나의 모델을 발견하였으나, 과연 제가 이런 사랑을 얻을 수 있으까요? 저는 지쳐갑니다. 대천사님, 저에게 빨리 답을 주세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대천사님,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기록해둡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베레트, 그이 이름은 로버트 브라우닝이며, 지구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시인들이지요. 그녀의 시 한편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 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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