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별세신앙

운영자............... 조회 수 597 추천 수 0 2004.10.25 05: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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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별세신앙

별세의 4수(四修)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던져주신 키워드는 ‘삶과 죽음’이었다. 수술을 전후하여 삶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였다. 별세신앙의 시각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진단을 기다리면서, 수술을 앞두고, 수술에서 깨어나서,수술 후 더딘 회복 과정에서 계속 삶과 죽음을 묵상했다. 별세의 4수에 이르러서야 나는 삶과 죽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인 것을 묵상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3수(三修)까지의 별세시험은 살아서 죽는 것이요,‘죽음 없이 죽는 연습’이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은 결박을 당한 채 죽음의 위기를 체험했다. 직접 죽음을 겪지는 않았다. 이삭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숫양의 희생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간접 체험한 것뿐이었다. 3수까지의 별세 수련은 이와 같이 죽지 않고 죽음을 배우는 것이었다. 무덤에 들어가지 않은 채 부활의 은혜를 받는 것이었다. 세 번 쓰러졌어도 죽는다는 실감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의 4수는 달랐다. 실제 죽음을 예감하며 수술에 임했다. 수술은 50%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다. 수술이 빨리 끝나면 포기한 것이요,수술이 길어지면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가족과 장로님들은 10시간이 넘어갈 때 안도의 숨을 쉬었고 성도들의 강렬한 기도는 하늘에 치솟고 있었다. 긴장의 시간이었다. 죽음을 실감하며 수술에서 깨어났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었다. 삶이 있는 죽음,죽음을 경유하는 별세수련의 과정이었다. 죽음으로 죽는 참 죽음의 연습이요,죽음으로 삶을 실감하는 수련이었다.

감히 예수님의 생애 사건과 비유하자면 지난날 3수의 별세시험은 광야에서의 시험이었다. 그에 반해 이번 4수는 겟세마네를 거쳐 갈보리에 이르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출발하실 무렵 광야에서 겪은 세 가지 시험은 육체적 생명을 지닌 채 자신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욕망을 죽이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시험은 갈보리에서 직접 죽어야 하는 시험이었다.

진단과 수술 과정에서 나는 죽음의 실체를 보았다. 죽는다는 문제를 실감했다. 온통 죽음에 대한 묵상이 나를 지배했다. 별세의 사수는 넉 ‘四’자의 ‘四修’일 뿐 아니라 죽을 ‘死’자의 ‘死修’였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별세 4수의 시험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실로 큰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에 이르는 죽음이요,삶을 얻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는 자에게 삶이 있다. 나는 수술을 금요일에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을 거쳐 주일을 맞았다. 머릿속에서 의식이 살아났을 때는 수없는 별세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기록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기도를 했다.

“주님이 감동과 은혜의 말씀을 이 종의 머릿속에 입력하사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순간순간 떠오르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신비한 말씀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살아야 할 목적을 여기에 두고 살았기에 잊는 순간 ‘나는 죽는구나!’ 괴로워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삼층천의 환상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 기도가 평소에 부족했고 내가 가진 신학이 나를 천국으로 올리는 것보다 천국을 지상에 끌어내리는 데 힘쓴 때문이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기를 원합니다. 나를 데려가 주옵소서.”

소원해도 전혀 응답이 없었다. 수술 후 사흘째 되던 날,눈을 감고 잠을 자려는데 내 마음과 영이 하늘로 떴다. 강력한 별세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별세의 은혜는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을…. 낮이 있어야 밤이 온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 그러므로 낮과 밤은 구분할 수는 있으나 하나의 시간 속에서 만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기에 삶과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도 주의 생명이요,죽어도 주의 생명이니 사나 죽으나 주의 생명일 뿐이다.
/이중표 목사

영광에 이르는 별세

내가 별세4수의 수련을 통해 받은 은혜는 사는 것도 영광이요,죽는 것도 영광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는 것은 영광을 위해서라고 고백하면서 죽음을 영광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죽기 싫으나 죽었고 억지로 죽었을 뿐이다. 병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 좋은 믿음인가?
죽음에 직면하면서 내가 깨달은 첫번째 진리는 죽음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두고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 개념이 담겨 있다. 죽는다는 것을 돌아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데려가신 사건으로 신앙고백한다. 소천(召天)으로서의 죽음이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천국으로 갔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영광에 이르는 길로 보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고 말씀하셨다(요 12:23).
예수님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순간이요,그 영광에 이르는 기회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통해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다시금 하나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셨다. 별세신앙의 사람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그 죽음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사도 바울은 생명을 중하게 여겼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별세신앙의 시각에서 죽음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의 결론은 죽음이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하여 얻은 결론이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든 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위기 앞에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죽음의 위험 부담을 안고 수술에 들어갔고 죽음으로부터 일어나듯 수술에서 깨어났다. 죽음을 가까이 경험하면서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지 않는다 해도 죽음은 그 자체로도 영광이었다.

죽음은 생의 완성이다. 생을 마감하는 죽음의 시각에서 내 뒤를 돌아보니 지금껏 살아온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18세 어린 나이에 폐결핵에 걸릴 만큼 연약했던 내가 생명을 오늘까지 유지하고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제 그 생애를 마칠 수 있다면 영광이다. 지금까지 산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많이 살았다. 더구나 목양 40년,주의 종으로서의 세월은 과분한 은혜의 향유였다. 하나님은 그 오랜 세월 섬긴 교회마다 한결같은 은혜를 주셨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하셨고 감동으로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다.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생애는 목사로서 너무 행복한 인생이다. 지금 죽는다 해도 영광일 따름이다. 더 이상 인생을 산다고 해도 이미 살아온 시간의 단순한 연장일 뿐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이미 족하다. 하나님이 주신 절대적 사명은 이미 수행했다.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뛰고 달리며 일해온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내 마음은 지금 곧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한없이 평안할 것 같았다.

손수 개척해 지금까지 혼신의 열정을 기울인 한신교회의 목양사역도 하나님께서 마치게 해주시는 시간이 가장 적절한 때라는 믿음이 왔다. 내 할 일은 다 끝난 것으로 느껴졌다. 성도들은 내가 없어도 이제 다른 목자를 통해 은혜 받으면 될 뿐 걱정할 것이 없다는 여유가 생겼다. 다만 홀로 남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홀로 남은 아내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살다가 주의 품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죽음을 영광으로 여기며 담담하게 맞아들이자는 생각에 이르자 생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됐다. 내 마음은 새처럼 자유롭게 비행(飛行)을 시작했다.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좋은땅 인터넷 http://www.g-world.co.kr
좋은땅 이메일 gworld@g-world.co.kr
저자 홈페이지: http://allcome.ce.ro, http://je333.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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