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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 수행 중입니다
본문: 레위기 10장 8-11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명령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우리나라의 문화 가운데 술 문화만큼 엉망진창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그 사람의 주량에 따라‘배포가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좀팽이, 능력 없는 사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큼 음주운전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주운전을 하지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음주문화가 여성들에게까지 점차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나고 술로 인해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술로 인해 왜곡되어진 문화들이 기독학생들에게까지 점점 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 백일 전에 먹는다는 백일주, 이성 친구를 만난 지 100일 기념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100원씩 걷는 등의 유치한 문화들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우리 교회 청소년들에게까지 아무런 여과 없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중고등부를 담당했을 때 일입니다. 중3 아이들이 고입 시험을 보기 백일 전에 술을 마셨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백일주를 누가 마련했느냐 하면 다름 아닌 같은 교회 내의 고등부 선배들이었답니다. 선배들은 당연히 선배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시험 잘 보라고 술자리를 턱 만들어 주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배려와 아량에 감사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 술자리에 갔다는 게예요.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야,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런 모습을 가질 수가 있을까…’ 오늘 우리가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목사님,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술 가지고 고리타분하게 이야기하십니까? 그리고 성경에 보세요. 술 마셨다고 지옥 간다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물론 술을 마신다고 해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술을 마심으로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유치한 논쟁이 아니라, 그 구원의 문제를 뛰어 넘어 좀 더 고차원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질 만한 근거로서의 금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술을 마시지 말아야 되는가, 왜 술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이유를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 사명의 측면에서 다가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공무수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단속의 기준은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 먹는다고 사람이 뿅 가고 이상해지는 것도 아닌데 왜 단속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까? 그 수준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운전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운전하는 데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측정해 보면 그 정도로도 상당히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수행 중인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는 술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술을 권하더라도 올바른 경찰관이라면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공무수행 중에 술을 마시면 경찰관으로서 제대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술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도 공무수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60만이 넘는 큰 민족으로 만드신 후에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애굽에서는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여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산에 불러모으고 나서 왜 불렀는지 그 부름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들을 부르신 목적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로 제사장 나라를 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가서 해결함을 받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또 다른 백성 사이에서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면 누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인지가 자명해집니다. 그것에 모이지 아니한 이방 민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렀다' 라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제사장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가야할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름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직무입니다. 그저 내 자신의 문제, 이성의 문제, 학업의 문제, 가정의 문제만을 짊어지고 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도 짊어지고 나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봅시다. 왜 제사장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8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의 사망을 면하라' 즉 공무수행 중에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 거예요. 왜? 10절에 보니까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즉 술을 마시면 이와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부심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 그런데 우리 사랑하는 고등부 친구들. 솔직히 한 번 우리 신앙을 돌아봅시다. 우리 주변의 친구들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해 보신 적 있어요? 같은 고등부 회원들 중에 연약해 보이고 어려움 가운데 처한 친구들 있잖아요? 믿음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어려움을 주고 친구들 있잖아요? 맨 뒤에 앉아 예배를 방해하고 때로는 그저 왔다 가는 불 신앙적인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이 분명히 이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해 보신 적 있어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이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러한 제사장으로 삼기 위함인데, 우리들은 그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늘 내 것에만 내 삶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지요.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여러 가지 많은 사역을 행하셨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전정화 사건인데요.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면서 그것을 휘두르시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해 주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고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을 내어쫓았습니다. 인자하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참으로 모순된 모습입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신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뭐라고 말씀하신 지 아십니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너희가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예수님이 분개하여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곳은 성전 바깥뜰인 이방인의 뜰로써 이방인이 유일하게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까지 점령한 채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제사 드리기 편하게 그 뜰마저 빼앗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강도라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어요? 과연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내 마음 한 부분을 늘 그들을 위해 비워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늘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앞서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고민만이, 그런 기도 제목만이 심령의 중심에 있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직분의 사명, 이것은 바로 제사장이라는 것이에요.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는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이 귀한 사명을 맡았는데 술을 마심으로 이 귀한 사명을 내 팽개칠 수 있습니까? 그 귀한 사명 저버리고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그저 한 잔 두 잔 마시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이 보신다면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겠습니까? 육사 생도들은 아무리 비가와도 절대로 뛰지 않습니다. 우산도 안 씁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개봉관 아닌 삼류 영화관에는 가지 않습니다. 왜요? 육사 생도라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자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살아가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살아가고 뭐 어떻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아무런 자존심과 자부심과 사명의식 없이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이죠. 여러분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확실히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부심을 가지고 있나요? 믿지 않는 친구들과 모였을 때에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하는 자부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불끈불끈 솟아오르나요? 다 잊어버리지 않아요? 친구들과 연예인 이야기하고 세상 이야기하고 학업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도 다 잊어버린 채 그들과 희희낙락하며 이야기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누구라고요?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나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우리가 제사장이라는 귀한 사명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술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거절해야지요. 왜? 내가 술을 마시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것과 세상의 속된 것을 분별해서 가르칠 수가 없어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고 좋고 하다 보면 내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참된 모습을 증거하지 못하는 그런 삶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술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어요. 아무리 마셔도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천국 가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성경에 술 마신다고 지옥 간다는 얘기가 있느냐, 없느냐? 이렇게 유치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가 술을 마시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혹시라도 술을 마셨다면, 그 술을 마시는 동안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내가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술에 대한 가치관이에요. 이러한 가치관을 가질 때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소명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답게 참으로 술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세상의 술 문화는 너무나 유치하고 세상 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백일주를 마시면 시험을 잘 보게 되나요? 백일주를 한 잔 마시고 몸에서 열기가 팍 오르면 그 열기를 가지고 백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게 되나요? 요새 보니까 또 부적을 갖고 다니는 친구들도 적잖이 있는 것 같은데, 뭐 장난삼아 심심풀이로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 여러분이 아무런 문제없이 만사형통 잘 되어지던가요? 제가 그 백일주를 먹은 친구에게 물어 보았어요. “왜 먹었냐?” 그랬더니 “네, 다른 친구들 다 먹는데 저만 안 먹으니까 혹시 나만 시험 잘못 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 찝찝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억지로 먹었어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술 한 잔보다 못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가 그 백일주라고 하는 술 한 잔을 마시는 것보다도 더 못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세상 적인 술 문화에 빠지면서 결국은 하나님을 참으로 유치하고 세상의 문화보다도 더 못한 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끔 자동차를 보면 트렁크나 운전석 옆자리에다 북어 대가리나 실뭉치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새 차부터 가지고 다니는 모양인데, 2,3년 동안 그 북어를 가지고 다니니 그 북어가 다 썩어서 냄새가 나고 벌레가 나는데도 안 치워요.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어머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것 치우면 어머님이 노발대발하시기 때문에 갖고 다니는 거예요.” 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북어 대가리보다도 못한 분으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신다고 하는 이 사실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북어 대가리가 나를 지켜주겠지” 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을 북어 대가리만도 못한 분으로 만드는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짓 아니에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 청소년들이 세상의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와 맞 바꿔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내가 백일주를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술 한 잔보다도 못한 분으로 전락시키면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마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겠다고 하면 신앙을 버리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그렇게 못된 분으로 만들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까? 십계명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 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그 형상보다도 못한 분으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세상의 문화에 젖어들면 우리는 또 다른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에요.
우리 한 번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 우리 기독 청소년들은 세상의 문화에 대항해서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나타내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학기, 입학기만 되면 신문지상에 무슨 이야기가 오르내리나요? M.T. 갔다가 술을 많이 마셔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 소식이 일 년에 한 두 차례는 실립니다. 아마 많은 핑계가 있겠지요. 선배들과 후배들이 모여서 기쁨으로 술 한 잔을 마시면서 배포를 가지고, 호연지기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말하겠지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유치한 세상 적인 변명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너무나도 많이 빠져든다는 것이에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서 세상의 문화에 접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기독인들이 그 세상의 문화에 빠져듭니다. “목사님, 안 마시니까 어울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안 마시니까 바보, 쪼다같고 연약하고 배포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마셨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까? 물결을 따라 내려갑니까? 거슬러 올라가지요? 물결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이지요. 우리 기독청소년들이 세상의 문화가 어떠하든지,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하든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또 내게 맡겨진 귀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술 문화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 술을 마심으로 무언가 위안을 얻고 무언가 하나 된다고 하는 유치한 발상을 나는 우습게 여긴다. 이렇게 좀 자부심을 가지고 거절하고 술 문화를 거슬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서 나가면 그 신앙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죽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아야지요. 이를 악물고 살아야지요. 참으로 세상의 이 거친 풍파와 세상의 문화 속에서 우리 한 번 멋지게 서 봅시다.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가서 누가 부적을 붙이니까 잘된다더라 하니까 나도 붙여보고, 누가 백일주를 마시니까 시험을 잘 보았다더라 하니까 나도 한 번 마셔 보고, 세상의 헛된 문화들을 쫓아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온전하게 주님이 주신 참된 평안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을 마음 속에 새기고 세상의 문화를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참으로 내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에게 늘 관심을 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이 귀한 사명을 가지고 세상을 앞서나갈 수 있는, 세상의 술 문화를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굳건하게 서 나가는 큰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우리 고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최문진 목사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http://je333.ce.ro
http://sermonhouse.ce.ro
본문: 레위기 10장 8-11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명령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우리나라의 문화 가운데 술 문화만큼 엉망진창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그 사람의 주량에 따라‘배포가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좀팽이, 능력 없는 사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큼 음주운전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음주운전을 하지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음주문화가 여성들에게까지 점차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성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나고 술로 인해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술로 인해 왜곡되어진 문화들이 기독학생들에게까지 점점 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 백일 전에 먹는다는 백일주, 이성 친구를 만난 지 100일 기념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100원씩 걷는 등의 유치한 문화들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우리 교회 청소년들에게까지 아무런 여과 없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중고등부를 담당했을 때 일입니다. 중3 아이들이 고입 시험을 보기 백일 전에 술을 마셨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백일주를 누가 마련했느냐 하면 다름 아닌 같은 교회 내의 고등부 선배들이었답니다. 선배들은 당연히 선배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시험 잘 보라고 술자리를 턱 만들어 주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배려와 아량에 감사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그 술자리에 갔다는 게예요.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야,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런 모습을 가질 수가 있을까…’ 오늘 우리가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목사님,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술 가지고 고리타분하게 이야기하십니까? 그리고 성경에 보세요. 술 마셨다고 지옥 간다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물론 술을 마신다고 해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술을 마심으로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유치한 논쟁이 아니라, 그 구원의 문제를 뛰어 넘어 좀 더 고차원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질 만한 근거로서의 금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술을 마시지 말아야 되는가, 왜 술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이유를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부심, 사명의 측면에서 다가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공무수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단속의 기준은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 먹는다고 사람이 뿅 가고 이상해지는 것도 아닌데 왜 단속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까? 그 수준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운전하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운전하는 데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측정해 보면 그 정도로도 상당히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수행 중인 공무원들이 근무시간에는 술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술을 권하더라도 올바른 경찰관이라면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공무수행 중에 술을 마시면 경찰관으로서 제대로 공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술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도 공무수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60만이 넘는 큰 민족으로 만드신 후에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애굽에서는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여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산에 불러모으고 나서 왜 불렀는지 그 부름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들을 부르신 목적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로 제사장 나라를 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가서 해결함을 받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또 다른 백성 사이에서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면 누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인지가 자명해집니다. 그것에 모이지 아니한 이방 민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렀다' 라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제사장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짊어지고 가야할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름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직무입니다. 그저 내 자신의 문제, 이성의 문제, 학업의 문제, 가정의 문제만을 짊어지고 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도 짊어지고 나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봅시다. 왜 제사장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8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의 사망을 면하라' 즉 공무수행 중에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 거예요. 왜? 10절에 보니까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즉 술을 마시면 이와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부심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 그런데 우리 사랑하는 고등부 친구들. 솔직히 한 번 우리 신앙을 돌아봅시다. 우리 주변의 친구들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고 기도해 보신 적 있어요? 같은 고등부 회원들 중에 연약해 보이고 어려움 가운데 처한 친구들 있잖아요? 믿음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어려움을 주고 친구들 있잖아요? 맨 뒤에 앉아 예배를 방해하고 때로는 그저 왔다 가는 불 신앙적인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이 분명히 이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해 보신 적 있어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이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러한 제사장으로 삼기 위함인데, 우리들은 그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늘 내 것에만 내 삶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지요.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여러 가지 많은 사역을 행하셨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전정화 사건인데요.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면서 그것을 휘두르시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해 주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고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을 내어쫓았습니다. 인자하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참으로 모순된 모습입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신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뭐라고 말씀하신 지 아십니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너희가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예수님이 분개하여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쫓으신 곳은 성전 바깥뜰인 이방인의 뜰로써 이방인이 유일하게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까지 점령한 채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제사 드리기 편하게 그 뜰마저 빼앗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강도라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어요? 과연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내 마음 한 부분을 늘 그들을 위해 비워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늘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앞서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고민만이, 그런 기도 제목만이 심령의 중심에 있지 않아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직분의 사명, 이것은 바로 제사장이라는 것이에요.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는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이 귀한 사명을 맡았는데 술을 마심으로 이 귀한 사명을 내 팽개칠 수 있습니까? 그 귀한 사명 저버리고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그저 한 잔 두 잔 마시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이 보신다면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겠습니까? 육사 생도들은 아무리 비가와도 절대로 뛰지 않습니다. 우산도 안 씁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개봉관 아닌 삼류 영화관에는 가지 않습니다. 왜요? 육사 생도라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자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살아가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살아가고 뭐 어떻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고 아무런 자존심과 자부심과 사명의식 없이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이죠. 여러분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확실히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부심을 가지고 있나요? 믿지 않는 친구들과 모였을 때에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하는 자부심이 여러분의 마음에 불끈불끈 솟아오르나요? 다 잊어버리지 않아요? 친구들과 연예인 이야기하고 세상 이야기하고 학업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도 다 잊어버린 채 그들과 희희낙락하며 이야기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누구라고요?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나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우리가 제사장이라는 귀한 사명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술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거절해야지요. 왜? 내가 술을 마시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것과 세상의 속된 것을 분별해서 가르칠 수가 없어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고 좋고 하다 보면 내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참된 모습을 증거하지 못하는 그런 삶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술은 구원과는 관계가 없어요. 아무리 마셔도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천국 가는 데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성경에 술 마신다고 지옥 간다는 얘기가 있느냐, 없느냐? 이렇게 유치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가 술을 마시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혹시라도 술을 마셨다면, 그 술을 마시는 동안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내가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술에 대한 가치관이에요. 이러한 가치관을 가질 때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소명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답게 참으로 술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세상의 술 문화는 너무나 유치하고 세상 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백일주를 마시면 시험을 잘 보게 되나요? 백일주를 한 잔 마시고 몸에서 열기가 팍 오르면 그 열기를 가지고 백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게 되나요? 요새 보니까 또 부적을 갖고 다니는 친구들도 적잖이 있는 것 같은데, 뭐 장난삼아 심심풀이로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니면 여러분이 아무런 문제없이 만사형통 잘 되어지던가요? 제가 그 백일주를 먹은 친구에게 물어 보았어요. “왜 먹었냐?” 그랬더니 “네, 다른 친구들 다 먹는데 저만 안 먹으니까 혹시 나만 시험 잘못 보는 게 아닌가 싶어서 찝찝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억지로 먹었어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술 한 잔보다 못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혜가 그 백일주라고 하는 술 한 잔을 마시는 것보다도 더 못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세상 적인 술 문화에 빠지면서 결국은 하나님을 참으로 유치하고 세상의 문화보다도 더 못한 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끔 자동차를 보면 트렁크나 운전석 옆자리에다 북어 대가리나 실뭉치를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새 차부터 가지고 다니는 모양인데, 2,3년 동안 그 북어를 가지고 다니니 그 북어가 다 썩어서 냄새가 나고 벌레가 나는데도 안 치워요.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어머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것 치우면 어머님이 노발대발하시기 때문에 갖고 다니는 거예요.” 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북어 대가리보다도 못한 분으로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지켜 주신다고 하는 이 사실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북어 대가리가 나를 지켜주겠지” 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을 북어 대가리만도 못한 분으로 만드는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짓 아니에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 청소년들이 세상의 문화를 하나님의 문화와 맞 바꿔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내가 백일주를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술 한 잔보다도 못한 분으로 전락시키면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마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겠다고 하면 신앙을 버리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그렇게 못된 분으로 만들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까? 십계명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형상을 만들지 말라, 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그 형상보다도 못한 분으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세상의 문화에 젖어들면 우리는 또 다른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에요.
우리 한 번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오늘 우리 기독 청소년들은 세상의 문화에 대항해서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나타내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능력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학기, 입학기만 되면 신문지상에 무슨 이야기가 오르내리나요? M.T. 갔다가 술을 많이 마셔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 소식이 일 년에 한 두 차례는 실립니다. 아마 많은 핑계가 있겠지요. 선배들과 후배들이 모여서 기쁨으로 술 한 잔을 마시면서 배포를 가지고, 호연지기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말하겠지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유치한 세상 적인 변명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너무나도 많이 빠져든다는 것이에요.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서 세상의 문화에 접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기독인들이 그 세상의 문화에 빠져듭니다. “목사님, 안 마시니까 어울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안 마시니까 바보, 쪼다같고 연약하고 배포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마셨습니다.” 여러분,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까? 물결을 따라 내려갑니까? 거슬러 올라가지요? 물결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물고기는 죽은 물고기이지요. 우리 기독청소년들이 세상의 문화가 어떠하든지,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하든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또 내게 맡겨진 귀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술 문화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 술을 마심으로 무언가 위안을 얻고 무언가 하나 된다고 하는 유치한 발상을 나는 우습게 여긴다. 이렇게 좀 자부심을 가지고 거절하고 술 문화를 거슬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서 나가면 그 신앙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죽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은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아야지요. 이를 악물고 살아야지요. 참으로 세상의 이 거친 풍파와 세상의 문화 속에서 우리 한 번 멋지게 서 봅시다.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가서 누가 부적을 붙이니까 잘된다더라 하니까 나도 붙여보고, 누가 백일주를 마시니까 시험을 잘 보았다더라 하니까 나도 한 번 마셔 보고, 세상의 헛된 문화들을 쫓아서 이리 저리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온전하게 주님이 주신 참된 평안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을 마음 속에 새기고 세상의 문화를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참으로 내가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연약하고 부족한 자들에게 늘 관심을 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이 귀한 사명을 가지고 세상을 앞서나갈 수 있는, 세상의 술 문화를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굳건하게 서 나가는 큰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우리 고등부 친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최문진 목사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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