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습니까?

운영자............... 조회 수 1108 추천 수 0 2001.11.07 08: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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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았습니까?




본문: 로마서 10장 9-10절




< 영생의 입문과정은 죄인임을 깨닫는 것 >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과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똑똑하고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 은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입으려면 자기의 죄인됨을 먼저 용감히 인정해야 합니다. 흔히 "비겁한 선인보다 용감한 죄인이 새 사람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비교적 의인이고, 비교적 훌륭하다는 생각부터 깨뜨려야 합니다. 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문제들은 그 생각을 깨뜨리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문제가 없으면 좋지만 문제 때문에 죄인됨을 깨달을 수 있다면 문제도 필요합니다.


어떤 분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고등학교 때에는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 "예수님은 약자를 위한 혁명가였다"는 사상에 심취하면서, 걸핏하면 죄를 얘기하고 원수 사랑을 얘기하는 목사님 얘기가 지루하게 들렸고, 역사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 등을 생각할 때 개인의 죄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것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편협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말로만 듣던 뇌성마비였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엄청난 문제 속에서 그의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한 영혼이 정말 중요하구나!"하는 것과 인간의 죄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비로소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예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받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영접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것을 보면 복음은 참 쉽습니다. "주님만 믿으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복음이 너무 쉬워서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려워 보입니다. 그냥 구원을 받기에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내가 꼭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의로운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구원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품에 뛰어드는 사람을 더 원하십니다. 몇 년 전에 한 다세대 주택 3층에서 프로판 가스가 터져 불이 났습니다. 그때 그곳에 5살 짜리 아이가 불을 피하지 못해 베란다에 갇혀 있었습니다. 불길이 심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불을 잡고 아이에게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아이가 겁에 질려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급히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빠야! 빨리 뛰어내려!"하니까 그때서야 아이가 뛰어내렸습니다. 믿음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님 품으로 주저 없이 뛰어 드는 것입니다. 불길 속에서 아직도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확실히 주님을 영접하여 지옥의 불길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 마음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이제는 그것을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한 10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의 영접도 중요하지만 입술의 시인도 중요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할 것이라."


그처럼 입술의 시인이 중요한데, 그러면 입술의 시인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요? 4가지로 그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어떤 핍박과 어려움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의미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은 입을 열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초대교회 때는 입술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시인하면 잡혀 죽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입술로 시인하면서 사자밥이 되었고, 평생 지하무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분위기에서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 고백은 오늘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의 신앙고백과는 아주 차원이 다릅니다.


그 고백은 생사를 가르는 것이었고, 결국 구원의 유무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심정으로 주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은 모험입니다. 전도도, 헌금도, 충성도 다 모험의 길입니다. 나의 안락함과 나의 안전함을 내걸지 않는 신앙은 진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쓸지라도 주님을 끝까지 붙들고 살겠다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쓸 때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찬양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3번 반복) 뒤돌아 서지 않겠네."


믿는 사람 중에 주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실제적인 삶에서는 마음과는 달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생각으로도 바치고, 마음으로도 바칩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치는 모험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주는 행복과 하나님이 주는 영광스러운 축복도 누리기 힘듭니다. 로마서 6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이 사실을 믿기에 자존심을 죽이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과 이미 죽었다면 더 이상 죽을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살 일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다른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원들도, 이번 테러리스트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영생을 소유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999년 봄, 미국 덴버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총격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생 2명이 학교에서 자기들을 왕따시킨 친구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선생님 그리고 총을 쏜 학생 2명이 함께 죽었습니다. 그때 한 범인이 캐시라는 여학생에게 총을 겨누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그 순간에 "믿지 않아."라고 말하면 살 수 있었지만 "그래 믿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겨누면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없어!"


"아냐 있어! 너도 믿어야 돼!" 곧 이어 캐시는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의 크리스천 십대들이 캐시 버넬 T셔츠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 T셔츠에는 "그래. 믿어!(Yes, I believe in God)"라는 캐시의 고백이 쓰여졌습니다. 그 T셔츠를 입고 소년소녀들이 전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미국의 한 신문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캐시가 미국 교회에 불을 질렀다." 지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의미 없이, 절박함 없이 하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나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명예와 출세와 안락을 위해 주님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신앙인의 모습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의미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은 신앙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말입니다. 한번 입으로 시인해보십시오. 그러면 보다 더 참여하게 되고, 신앙도 자라게 됩니다. 요즘 들어 교회에 매이기를 싫어하는 정체 불명의 교인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분들을 'UFO(미확인 비행물체) 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의 결론은 행복과 축복인데, 그렇게 지내면 어찌 행복과 축복이 있겠습니까?


떳떳이 교인임을 드러내고 신앙생활 할 때 신앙도 자라고 축복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참여해야 그 공동체의 기둥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참여해야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놀이도 아니고, 사치도 아닙니다. 나의 행복과 축복의 기본 요소입니다.


이제는 신앙을 드러내시고, 교회의 일에도 참여하시고, 적극적으로 헌신해보십시오. 축복을 원하면서도 진정한 축복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어느 날,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여러분! 많이 버십시오,"


그러자 앞자리에 있던 한 부자가 "아멘! 아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습니다. 목사님이 계속해서 "그리고 많이 저축하십시오" 하니까 또 "아멘!!"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목사님이 "그리고 나서는 많이 나누어주십시오."라고 하니까 갑자기 그분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말씀이 잘 안들린다는 표정을 짓더랍니다. 오늘날 많이 교인들이 복은 원하지만 그 복을 나누어주는 모습이 매우 약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의 신앙을 드러내어 성도의 책임을 다해보십시오. 이웃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에서도 나의 신앙을 당당히 선포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신앙을 선포하며 사는 것입니다.


계속 스스로를 향해서 "나는 주님의 자녀이다!"라고 입으로 시인해보십시오. 그러면 의식화가 이루어지고, 그래야 자신의 삶에 적극적 헌신이 나타날 것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쉽지만 의식 수준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왜 사람들이 주일에 받은 은혜를 며칠도 지탱시키지 못하고 옛날로 돌아갑니까? 신분은 변했는데, 아직 주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확고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생각나고 성질이 날 때마다 "나는 주님의 자녀야."라고 고백하고, "나는 덤 인생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지"라고 자신을 의식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을 영접했어도 주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게 됩니다.


영국에 줄리안 모리스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 미아가 되어 거지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자신이 갑부집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도 밤만 되면 거치 차림으로 집집마다 생필품을 팔러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날 몇몇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의 모습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 같은데 삶의 현장에 가면 너무 좌절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의식을 가지고 항상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부자인데도 의식이 가난하면 그 부를 누릴 수 없고, 거지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시인하며 왕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삶은 점차 능력 있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답게 말을 하겠다는 의미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에는 우리 입술을 그리스도인답게 사용하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의 결정적인 차이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어 능력입니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능력이요,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어 능력을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사용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난 다음에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언어입니다. 나의 언어에서 짜증을 내는 요소가 빠졌는지, 쌍 시옷이 빠졌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입술로 시인하고 나서 무엇보다 우리의 언어가 변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입에 상스러운 '말'은 사라지고 거룩한 '말씀'이 많이 담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언어를 문화의 척도라고 합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언어를 보면 교양과 비교양, 유식과 무식이 다 드러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어는 능력의 척도입니다. 그 언어 쓰는 것을 보면 신앙과 비신앙, 진짜 능력과 가짜 능력이 다 드러납니다. 마귀는 우리의 어떤 것에도 겁내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말씀 앞에 겁을 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한다"고 합니다. 부끄러운 질책입니다. 말만 하고 실천이 없기 때문에, 말에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욕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잘한다"보다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답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언어가 발라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혀가 붙들리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만 가득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만 높아져서 성령을 받은 체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기쁨과 감사와 격려의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안양에 사는 한 안수집사님이 전화를 해서 한참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분의 말이 참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은 영혼을 살려줍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어떤 분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한 가지 부정적인 말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40가지 따뜻한 말을 들어야 그 한 가지 말이 준 상처를 지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항상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주려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말만 잘하는 분들이 아닌 말씀의 능력이 넘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 전도하는 입술이 되겠다는 의미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이 가진 중요한 의미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에게 있는 가장 확실한 구원의 증표는 전도하는 태도입니다. 로마서 10장의 주제는 바로 "구원은 복음 전파를 수반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본문 다음의 14절, 15절, 17절 모두 복음 전파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할 때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직접적으로 시인할 수도 있고, 때로는 찬송의 고백을 통해, 때로는 물질의 고백을 통해 시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인 방법 중의 하나는 전도를 통하는 방법입니다.


자기 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축복 받았음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자기 입으로 자기의 축복을 시인할 때 그것이 진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전도는 구원의 확실한 증표이기도 하지만 축복의 확실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서도 사람들에게 한번도 하나님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분 정말로 구원받은 분입니까?"라고 하는 반문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진짜 천국 백성이라면 항상 복음 전파에 대한 환상과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통로로서 내가 섬기는 교회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내가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한 것으로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 구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영혼 구하는 문제에 최대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 간증입니다.


여름 수련회 마지막 날 밤 설레는 기대를 가지고 캠프파이어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련회장에서 교인 아이 한 명이 없어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수련회 마지막 날 밤이 캠프파이어 대신 아이 찾아 헤매는 밤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찾기 위해 갖가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첫 번째 정보는 이 아이가 꾸중을 들으면 무작정 앞으로 걷는다는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도로에 차를 배치해 차를 서서히 운행하며 아이를 찾도록 조치했습니다. 두 번째 정보는 이 아이가 예배처는 항상 산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청년들로 수색대를 조직하게 하여 동서남북에 있는 산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세 번째 정보는 이 아이가 낮에 개울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놀았다는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고기 잡다가 잠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개울가로 수색대를 급파했습니다. 네 번째 정보는 오후 7시쯤 다른 교회 버스 한 대가 서울로 출발했다는 정보였습니다. 그 차에 탔을지 몰라서 한 사람을 서울로 급파하고 그 교회에 연락 요청을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정보가 적중하여 그 아이를 서울에서 간신히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 하나 때문에 캠프파이어는 취소되었고, 전 교인이 밤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짜증과 불평보다는 아이를 찾은 묘한 행복감이 넘치는 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행복감 속에서 그때 그 목사님이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찾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한다"는 진리였습니다. 여러분! 영혼 구원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후 순위로 미룰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이제 복음 전파의 꿈을 꾸시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영혼 구원에 나서보십시오. 영혼을 얻고 난 뒤에 만족감과 보람과 행복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과 흡사한 큰 기쁨이 여러분들의 삶에 주어질 것입니다.




< 복음 전파는 우리의 가장 우선적 소명입니다 >


그리고 복음 전파하는 것, 즉 전도와 선교는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성경의 안디옥 교회가 계속 성장하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장소를 넓히는 문제였습니다. 그 문제로 아마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라!"고 하시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필요하다면 건축도 해야겠지만, 먼저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분은 복음 전파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항상 남에게 전도를 미룹니다. 축복은 내 것이고, 전도는 남의 것이라고 하면 정말 축복이 내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나도 동참해야지" 하는 자세로 전도에 참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복음 전파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나중에 하겠다고 전도를 미룹니다. 아닙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좋은 일은 일찍 할수록 인생의 낭비가 줄어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얼굴에서 찾지만 성경은 전도하는 발에서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아름다움도 건물의 아름다움보다 전도하는 교회냐에 달려있고,


성도의 아름다움도 학력, 재산, 얼굴에 달려있지 않고 전도하는 발에 달려있습니다. 주보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 발도 아프고 가끔 처량하고 외로운 느낌도 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전도하는 발을 가장 아름답게 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최선을 다해 전도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특히 가족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신앙을 가지고 평생 서로 존경하며 살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 선물이 있기에 우리들은 심지어 죽을 때도 찬란한 기대를 가지고 죽습니다.


"주님! 제가 왔습니다." 하고 기대에 차서 천국 문을 여는 것이 성도의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며, 구원의 하나님은 얼마나 소중한 분입니까?


항상 구원받은 자로서 소중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




청량고등학교 교사 (등대교회 협동목사)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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