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반마리

운영자............... 조회 수 506 추천 수 0 2001.08.30 22: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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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 반마리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직업인 나는 10년 전, 20년 전에도 카피라이터였다. 30년 전에는 카피라이터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지만, 그때도 여후(如後)히 나는 미래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그 바로 전 3년 간은 충무로의 배고픈 삼류 시나리오 작가와 방송 구성 작가였다. 그 무렵의 어느 초겨울 해질녘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연출부원 두엇과 근처 인현동 시장골목 순대 리어카에서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순대와 오뎅, 그리고 통닭을 기름에 튀겨 파는 엉성한 포장마차형 리어카였다.


그날 초저녁을 지금까지 각별히 기억하는 것은 통닭튀김 반 마리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포장마차에 통닭튀김을 먹으러 들어온 한 청년 때문이다. 고무 밧줄이 친친 감긴 낡은 짐자전거 뒤에 애인인 듯싶은 처녀를 태우고 온 청년이었다. 찬바람에 새빨개진 얼굴을 한 청년이 조심스런 말투로 주인에게 물었다. “저… 통닭….”


눈치 빠른 주인이 반색을 하며 냉큼 대꾸했다. “암, 방금 튀겨 낸 거 있지. 헤헤헤….” 왠지 주저스런 눈빛이 된 청년이 주인에게 물었다. “저… 반 마리, 반 마리도 되나요?”


당시 내가 본의 아니게 저들을 관찰하게 된 건, 아마 틀림없이 통닭 반 마리라고 하는 다소 쉽지 않는 구매단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인이 승낙을 하자 비로소 표정이 밝아진 청년이 천 조각을 들치고 밖에다 외쳤다. “들어와, 어서 들어와!” 순박하게 생긴 처녀가 쑥스럽다는 몸짓을 하면서 조심스레 들어왔다.


이윽고 통닭튀김 반 마리가 쭈그러진 알루미늄 쟁반에 담겨 나왔다. 먼저 온 우리 일행을 의식한 듯 청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서 먹어. 많이 먹어. 나는 하나도 배 안 고파.” 다리가 한 개뿐인 통닭 반 마리였다. 처녀도 속삭였다. “같이 먹어야지 어떻게 나만 먹어?” 그러나 청년은 결코 져줄 기세가 아니었다. “자기 생일이잖아? 자기가 많이 먹어야지.”


아, 그것은 통닭 반 마리로 하는 생일파티였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해져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청년은 시장물건을 배달하는 사람이었을 테고, 처녀는 근처 봉제공장 공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으나 지금도 거리를 걷다 보면 통닭 파는 가게를 자주 대하게 된다. 진열장 속 풍경으로 쇠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노란 통닭들이다. 더러는 내가 통닭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춥고 배고프던 젊은 날, 인현동 시장골목에서 본 그 ‘통닭 반 마리’ 청년이다.


좋은생각/이만재




예화포커스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육, 교회, 믿음,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효도,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 태 완 목사 편저, 좋은 땅 (전화:386-8660), 각 권 값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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