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승리

한승지............... 조회 수 1023 추천 수 0 2002.12.18 17: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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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승리



본문 : 골로새서 : 2장 11 절- 15 절



오늘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의식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 지 않는 사람이라면 전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 어야 한다는 이런 일 때문에 직장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는 없습니까? 내 주변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눈동자들에 의해서 내 행동과 내 삶이 비판받는 이유 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기독교 언론인 중에 멀컴 리이치 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이 우리 믿는 사람을 유 별나게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상 단순합니다. 그 이유란 세상이 믿는 사람들에게 유별난 기 대를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믿는 사람 의 삶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의 표지에 관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다운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흔히 주체의식이란 말을 씁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주체의식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했습니다. 나를 그리스도인답게 만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법은 도대체 무엇입 니까? 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이 되면 예배당에 나와 예배 드리고, 그 밖에 교회의식에 참여하고,성경구절 몇 구절을 알고, 찬송 부를 줄 아는 것을 말합니까? 아니면, 그보다는 다른 어떤 삶의 의식이 우리 의식의 밑바탕에 흘러가고 있어야 합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작업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습 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 그들은 드디어 감격 속에서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삶 의 방식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두 가지 예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 예 식 중의 하나가 할례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식의 중요성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식은 구약성경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다른 옷을 입힌 격으로 신약에 서 전개되는 똑같은 사상의 지속이라는 데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의 할례와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신약의 의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에게 할례식을 행했습니까? 하나님이 할례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 하는 정신적 의식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식을 예식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예식의 밑바 닥에 흐르는 정신, 다시 말하면 그 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진정한 교훈이 무엇 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실 예식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예식은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교육의 한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례는 두 가지 의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행한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서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하십니다. 할례가 언제 처음으로 행해졌습니까? 창세기 17장 9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 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 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9∼11)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언약에 대한 하나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이 할례 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 아닌 사람이 구별되었고, 이 표시를 통해서 그들 자신 이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 난 지 8일만에 이스라엘 백성 중 남자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표시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표시를 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 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을 그 표시를 볼 때마다 계속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함으로 나는 하 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한 것입니 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이 할례는 신약성경에서는 세례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골로 새서 2장 11∼12절을 함께 읽어 보실까요?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 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영적인 할례, 다시 말하면 세례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난 사실에 관한 하나의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 다. 우리가 세례를 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을 받아 새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내 가슴에 일깨우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네 자신을 일깨우라. 너는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 이다 라는 의식을 자꾸만 상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서 주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의식을 갖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 님의 자녀라면 주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의식 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할례를 받았던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를 생각해 보면 귀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 님은 어떤 때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그의 자녀를 가르치고 교훈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길갈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길갈이라는 곳 바로 앞 에 있는 도시가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팔레스타인 땅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도성입 니다. 이 가나안 땅을 지키고 있는 여리고 성의 적군들은 그들을 향해서 나아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 지켜보는 현장 여리고에서 보면 길갈이 내려다보입니다.이 길갈의 들판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다 할례를 받으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적인 외과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 7∼8절에 보면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 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 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라고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우리가 적군의 입장에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 방이 모두 다 수술을 받고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습니다. 이거 얼마나 공격하기 좋은 기회입니 까? 여리고 성의 공략을 앞둔 이 중대한 역사적인 시점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외과수술을 시행하 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할례를 받고 여리고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길갈에 쭉 누 워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수술을 받고 아파서 누워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을 쳐다볼 때마다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가령 이렇게 이스라엘 군대가 할례의식을 행 하고 다 누워 있을 때 적군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꼼짝하지 못하고 죽는 게 아닙니까? 그 러니 그들의 생명이 정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의 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중요한 역사적인 시점에서 인상 깊은 한 경험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는 교훈을 받 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행동하고 싶어하는 자기중심적인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기 보다는 내 잔꾀를 의지하고, 내 생각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엎어지고 넘어져서 좌절과 갈 등과 혼란 속에서 무수한 인생의 경험의 골짜기를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새로운 백성의 모습으로 새로운 땅에 살아야 할 이스 라엘 백성들의 위대한 역사적 행군에 앞서 자기 백성들을 다 눕혀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저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것 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께서도 그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 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할례나 세례를 통해 받는 표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 와 함께 그 죽음에 동참하고 그 부활에 동참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나의 옛사람은 죽 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해서 부활의 생명을 받는 사람으로서 이제 하나님만 의 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이처럼 할례는 육체적인 행위였지만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그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인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 데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주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에서 돌이켜 그들의 마음에 영적인 할례를 받으라고 경고했습니다. 신명기 10장 16절에 그러므로 너희 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고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30장 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 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외친 말씀을 들어보세요. 예레미야 4장 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 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 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했습 니다. 그렇습니다. 할례는 주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마음의 할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 거짓교사들이 주장해 왔던 대로 예수를 믿어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할례가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적인 할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 하셨을 때 주님은 죄에 대해서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6장 10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옛 성품은 우리가 더 이상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제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죄의 옛 성품이 뿌 리째 뽑힌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요한 1서 2장 1절 이하를 보세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 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 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 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 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 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 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 라 아무리 죄의 세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주님께 순복하고 성령의 능력을 따라 행하면 부 서지고 맙니다. 바울은 여기서 세례 란 말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물질로서의 물은 그 리스도와 함께 사람을 장사지낼 수 없으며, 또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에 잠기는 세례는 이런 영적인 체험의 상징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그는 즉시 성령 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연합은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죽으 셨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었고, 주님께서 장사 지낸 바 되었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장사 되었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살아났고 옛 생활의 수의를 뒤에 남겨 놓았 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킨 것은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와 함께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 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적인 적용을 명확하게 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 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할 수가 있습 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경험하였고, 따라서 다시 죽은 율법의 것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고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주신 말씀 14절을 보세요.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 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율법 을 십자가로 가져가 그것들을 못박아 버렸습니다. 율법은 확실히 우리를 거스립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율법의 거룩한 요구에 맞춘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않았다 하더라도 율법의 의로운 요구는 그 마음 의 양심에 다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그의 피를 흘리셨을 때 주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불순종한 죄인들의 이 엄청난 빚을 다 갚으신 것입 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재정에 관한 기록이 장부에 기록되어 그 기록을 지울 수 있었습니 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연상하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부채를 청산하실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신 것입니다. 만일 재판관이 죄있는 사 람을 그냥 놓아주었다면 그 재판관은 그 법의 가치를 형편없게 만들고 그 피해자 측에 아무런 보 상도 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 죄 값 을 다 치르시므로 자신의 율법의 거룩함에 어긋남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빚을 갚으신 것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는 우리를 정죄했던 그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습니 다. 로마서 7장 5-6절에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 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 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좇아 행할 때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가 성취되므로 우리는 무법한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우리에게 노 예의 공포에서가 아니라 사랑의 동기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15절에 보세요.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하였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와 율법만을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에 대해서도 처리하셨습 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이제 이 세 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죽으심은 사단에게 큰 승리를 안겨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회복할 수 없는 사단의 큰 패배인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세 가지 위대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단과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완전히 제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5절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리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 스스로 자 신을 해하려고 마음먹지 않는 한 우리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그의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 를 대적하는 때는 오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자가 아무리 으 르렁거리고 무섭게 보인다고 해도 발이 묶여 있습니다.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 씀 따라 살면 우리를 절대로 절대로 해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사단의 속임수와 사악함을 노출시켜 적을 밝히 드러내셨습니 다. 15절에 밝히 드러내시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입증하실 뿐더러 악마의 사악함을 밝혀 추방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로마의 장군은 많은 포로와 전리품과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고 큰 승리를 거두어 개선할 때마다, 로마의 승리로 알려진 축하 퍼레이드로 환영 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이 관습을 암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고 위대한 개선 행렬로 영광 중에 돌아오셨습니다. 물론 사단이 강한 것 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넉넉히 이 기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단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 안에 살 때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주님처럼 십자가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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