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피난처(32)

복음............... 조회 수 1000 추천 수 0 2004.08.16 13: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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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피난처(32)



본문: 시46: 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사람들은 보다 안정된 삶, 소위 ‘안전지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경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늙어도, 퇴출되어도, 권력에서 밀려나도 막강한 경제력만 있으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금고를 사고, 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위험의 표적입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중 시해된 분이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주위에는 국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육군참모총장 대통령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있었으며 말 그대로 안전하다는 안가(安家)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안전지대(safe zone)를 찾지 말고 신앙지대(faith zone)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시 4:8)



샌 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는 다리를 공사할 때의 일입니다. 다리가 너무나 높고 위험하므로 기술자들의 마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밑을 보게 되면 현기증이 일어나 불안과 공포심이 생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사 도중에 다섯 명이나 다리 아래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에서는 기술자들의 안전을 지켜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들 중의 하나가, 공사가 진행되는 아래쪽에다가 철사로 만든 그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공사장 아래쪽에 그물을 치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그물 위에조차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쳐져 있으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놓고 일했기 때문입니다. 떨어져도 바다에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생긴 것입니다. 부들부들 떨리던 다리가 떨리지 않게 되고,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공포감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부터 일도 잘 할 수 있었고, 다치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 안전 그물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내 생을 지배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며,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고 하는 이 믿음이 안전 그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전 그물로 알고 그를 믿는 사람에겐 마음의 고통과 불안이 사라집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로마의 바티칸박물관 안에는 역대의 로마지도를 시대별로 그려놓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 그 중 나란히 그려진 두 지도를 비교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의 지도에는 폼페이시가 표시되어 있는데 바로 뒤의 지도에는 폼페이시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땅속에 묻혀버린 폼페이시는 훗날 수세기가 흐른 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통해 수많은 시체와 당시의 생활상이 드러났는데 흥미로운 것은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천차만별이었다는 점입니다. 몇 구의 시체는 깊은 지하실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곳으로 피하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몇몇은 건물의 가장 높은 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안전에 대한 욕구와 불안이 있습니다. 어쨋든 폼페이시의 거주민들은 모두 화산재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혹 당시의 재앙을 피했다손치더라도 결국 지금은 한줌의 티끌조차도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는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피난처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토끼는 토끼 굴로 뛰어들고 사슴은 늪지대의 울창한 보호막으로 달아납니다. 두 살짜리 어린아이는 아빠의 바지 가랑이에 매달립니다. 여러분은 위험을 느낄 때 어디로 피합니까? 모든 연약한 짐승들은 어미의 품을 떠나 자기의 삶을 살 때 제일 먼저 둥지와 피난처부터 만듭니다. 자기들이 작고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위험과 적으로부터의 위협이 많기 때문에 그들은 지혜롭게 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로 피합니까? 교만한 인간은 세상의 물질과 권세에 자기를 의지합니다만 보호를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다람쥐는 작고 연약한 짐승이지만 결코 맹수에게 잡히지 않습니다. 다람쥐는 기발한 호신책을 갖고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몸집이 큰 동물이 습격해오면 다람쥐는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무리 사납고 강한 동물이라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다람쥐를 잡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작고 나약한 다람쥐에게는 거대한 바위산이 천연의 요새인 셈입니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시104:18)

세파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단 하나의 확실한 피난처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만큼 과연 우리에게 편안한 자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세상은 변하는데 안전한 자리란 가능한 것일까요?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까지 가장 철통같은 영공을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였다고 합니다. 최첨단 레이더 장치와 적기를 정확히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를 출발, 소련연방으로 들어와 크렘린궁 상공을 돌다가 붉은 광장에 착륙했을 때 전 세계는 웃고 말았습니다. 러시아의 철통같은 영공이 한 청년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바라보는 성도들의 삶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는 분이 있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달려와 부르짖는 사람은 조금씩 그 형편이 나아지지만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기 혼자 해결해보려는 사람은 애쓰다가 지쳐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막상 어려움에 직면하면 의지할 데를 찾고 무엇인가에 기대려고 합니다. 그것은 가족일 수 있고, 친척일 수 있고 또 물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한 사람은 해답이 있고 소망이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은 고생을 자초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미국이 자랑했던 펜타곤 건물이 공격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의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은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곳입니다. 선지자 요나의 경우를 볼 때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갔을 때 극심한 풍랑을 만났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뢰의 대상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철수가 열 살 되던 생일에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집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빈민촌의 허술한 판잣집에서 살던 그에게는, 넓은 방이 세 개나 있고, 부엌에 수도도 있고, 유리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집은 마치 궁궐과 같았습니다. 그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첫날밤을 지낼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에게는 그 집이 피난처요, 위로요, 안전을 뜻하였습니다. 비가와도 지붕에 물이 새는 법이 없었고, 바람이 불어도 결코 방안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집 바로 옆에 목재소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화재 경보기가 아침잠을 깨웠습니다. 옷을 주워 입고 손에 닿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집어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얼마 후 집을 보니 몇 시간 전만 해도 피난처요, 위로요, 안전이었던 집이 지금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물질이 참된 피난처도, 안전도, 위안도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없어질 물건에 우리의 희망을 거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혼율 급증은 가장 신뢰할 만한 제도인 가정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안전한가? 교회 성장이라는 신화를 일구어낸 한국 교회지만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철통같은 신앙구호가 선포되는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안 맞으면 시기와 험담으로 서로의 마음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신앙의 힘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비로소 안전한 자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소년시절부터 골리앗과의 싸움을 비롯하여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신앙으로 무장된 다윗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이제는 편안하다고 여길 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 여인을 강탈하는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신분이 안전해도 심령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었는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시 도피생활을 떠난다. 바로 이 때 다윗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산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형통한 왕궁에서가 아니라 고난의 두려운 밤을 지내며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신앙고백을 잉태한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자리는 권력의 자리도, 왕궁도, 부의 지위도 아닌 하나님 안에 있다는 발견,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자리나 건물을 지키려 하지말고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곱씹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안에 붙어 있으려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세워 가십니다.

폭풍이 심할 때는 배를 어느 한 곳에 단단히 붙들어 매두어야 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묶여 있는 한 그 어떤 폭풍도 당신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입니다.(시91:2-3) 여러분은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 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집중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놀드 베크비의 '재생'이란 책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각가는 일편의 조잡한 대리석을 정교한 조각물로 만들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그 조각물은 여전히 생명 없는 차디찬 돌맹이일 뿐입니다. 또 미술가는 관의 뚜껑을 가장 아름다운 색채로 장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관의 내부는 하등의 변화를 주지 못하며 죽음이 그대로 지배하고 있느니라. 나환자는 왕자의 옷을 걸치고 다닐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환자일 뿐이요. 그 몸에는 더럽고 무서운 반점이 남아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세상에서 안식처(피난처)를 찾으려고 해도 예수님 이외에는 안식처가 없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명언입니다.

전남 고창에는 모양성이란 옛 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년 음력 정월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기 힘에 넘치는 돌을 머리에 이고 십리도 넘는 이 모양성 주위를 한바퀴 돈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양성 주위를 한 바퀴 돌면 평안과 행복이 온다고 믿고 그렇게 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인생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달퍼 이렇게 라도 해서 그 액을 좀 면해 보려는 가냘픈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산꼭대기에는 초막 한 칸의 초라한 집이 한 채가 있습니다. 그 집에는 날마다 찬송이 흘러나오는 데 이 집은 언제나 찬송을 부르며 비록 가난하게 살지라도 기쁨과 감사와 찬송 속에 만족스럽게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진정 예수님만이 인생의 피난처요 안식처이십니다.

구약에 보면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도피성’이라고 하는 따로 설치된 성읍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레위 지파의 감독하에 있었던 것으로 요단강 동 서편에 여섯 개가 있었습니다(민 35:6?14, 신 4:41∼43). 피고가 공정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이 도피성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개념의 영향 아래 오늘날 교회는 성역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고 주관하시는 곳, 세상의 죄인들을 향해 문을 열고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의 위험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 성경 공부를 금지시켰습니다. 만일 성경을 공부하다가 잡히면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아키바 랍비는 계속 성경 공부를 시켰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아키바 랍비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배고픈 여우가 강 옆을 걸으며 보니 물 속에는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어부들이 그물을 들고 자기들을 잡으러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맛있는 생선요리를 기대하며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육지로 올라올래? 내가 안전한 곳을 가르쳐줄게. 어부들이 한 명도 없단다” 이 말을 들은 물고기들이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여우야, 너는 우리에게 이 물 속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물고기에게는 위험하여도 물 속이 좋은 것처럼 우리는 죽어도 성경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아키바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몸이 안전하다고 정말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안전한 곳에 거해야 합니다. 일명 영혼의 피난처, 안식처가 보장되어 있을 때 그곳이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속담 중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얕은 수로 남을 속이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떤 이는 엉덩이를 밖으로 내밀고 머리만 숨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안전치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이런 식의 피난이 있지는 않는지요. 아마도 이것은 회피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도망하듯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내게 다가오는 여러 문제들과 난관들, 여러 도전들을 향해 맞닥뜨릴 수 있도록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근거를 두지 않고 피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무장해제를 당할 수밖에 없고 싸울 만한 준비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삶의 피난처가 그분이 되어야 함은 그분 안에서 불안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의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품는 보호를 경험하는 하루가 됩시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이 피난처이십니다”라는 표현이 8번 등장합니다. 구약 곳곳에 보면 ‘피난처’라는 단어가 26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2-3)

"주는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란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이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사25:4)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3-4)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5:1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 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 2)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편18:30)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란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시32:7)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1)라고 하였습니다.

이밖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신33:27)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22:3)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욜 3:16∼1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베드로전서 5:10)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하였습니다. 보호자 되신 예수님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잠14:26)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완전한 곳에 피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경우에는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남 침례회 신학교 총장이었던 W. H. 윗씨트 박사는 바른 주장을 하다가 교단 정치에 밀려 신학교 총장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억울하다는 말 대신에 그는 설교를 이렇게 끝냈습니다.

“나는 남북전쟁 때에 남부군대의 기마병으로 복무했습니다. 밤중에 적진의 정보를 수집해 가지고 오다가 적군의 기마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숲 속으로 재빨리 숨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나를 숨겨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피신시키기도 하시고,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피신시키기도 하실 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피신시키기도 하십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위더스픈 박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제대로 감사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제가 마차를 타고 오는데, 말은 도망가고 마차는 바위에 부딪혀 깨졌는데 이것 좀 보세요. 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거든요.” 위더스픈 박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마차를 타고 수백 번 그 바윗길을 왕래했지만 한 번도 말이 도망치거나 마차가 깨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보다 몇 천 배는 더 감사해야겠군요.”

오늘날 우리는 죄악과 질병과 전쟁의 불구덩이 속에 살며 슬퍼하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만 오면 이런 악한 것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그리고 그를 의지하면 영원히 안전합니다. 우리는 암울하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외치며 분명한 신앙을 고백합시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과 사랑에 대해서 확신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요란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젖 땐 아이의 평안을 누리며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한 사람이 부자가 되려는 큰 꿈을 안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오스트리아로 돈을 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과 딸은 행복했습니다. 몇 개월 후에 그만 그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두 아이만 외롭게 남았습니다. 그 이웃사람이 어린 두 아이를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증기선 선장이 그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친구들을 뉴욕에서 만나 그 아이들을 기차에 태웠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피곤하고 집 생각이 나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나되는 어린 소녀가 두 팔로 감싸 안으며 말하기를 “울지마, 동생아. 오늘이 마지막 밤이란다. 아침이 오면 아빠를 만나게 된단다” 하고 위로했습니다.

여러분, 외롭습니까? 세상이 너무 슬프고 괴롭습니까? 친구가 실망시켰습니까? 눈을 들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침이 되면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영원한 안식이 찾아옵니다.

* 기도: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 주님은 폭풍 가운데 피할 곳이 되십니다. 뜨거운 폭염과 태양볕 아래 피할 그늘이 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던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그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 이 시간도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반석이요 도피성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거미줄의 능력 (피난처)



마크 윌러는 북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인 학대를 피해 도망하고 있었던 프레드릭 놀란이란 분의 간증을 전해 주었습니다. 프레드릭 놀란은 자신을 붙잡으려하는 사람들에게 언덕과 골짜기로 쫓기고 쫓기다가 더 이상 숨을 곳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친 나머지 붙잡힐 각오를 하고, 한 쪽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며,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몇 분이 안 지나서 그 조그마한 거미가 동굴 입구에다 멋지게 거미줄을 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잡으러 쫓아왔던 사람들이 도착해서 프레드릭 놀란이 동굴 안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입구에 쳐 있는 거미줄을 보고서, 거미줄이 뜯겨짐이 없이 동굴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위험에서 구출함을 받고, 동굴에 나와서 그는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가느다란 거미줄도 두터운 방벽이 되고,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두꺼운 방벽도 한갓 거미줄이다".



2. 묵상 및 토의

0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주를 의지하고 담대할 수 있는가?

0 나는 주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의 손길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0 주님이 나의 피난처요 보호자이심을 아는가?

0 나에게는 영혼의 도피처가 있는가?

0 나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듯이 주님만을 의지하는 신앙이 있는가?

0 나는 나의 짐을 주께 맡기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오래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피하고 야단법석이었는데 나이 많은 한 부인성도는 자기 집에 조용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끝난 후 사람들은 그 노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의자에 기쁜 얼굴로 앉아 계실 수가 있습니까?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토록 흔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생각과 그러는 가운데서도 나를 그의 손안에 안전하게 붙들어 주신다는 생각으로 기쁨에 잠겨 무서워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 예화(2): 안전지대



사람들은 보다 안정된 삶, 소위 ‘안전지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경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늙어도, 퇴출되어도, 권력에서 밀려나도 막강한 경제력만 있으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금고를 사고, 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위험의 표적입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중 시해된 분이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주위에는 국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육군참모총장 대통령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있었으며 말 그대로 안전하다는 안가(安家)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안전지대(safe zone)를 찾지 말고 신앙지대(faith zone)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시 4:8)



4. 찬송: (79장) 피난처 있으니



피난처 있으니 환란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5. 성경 말씀

0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5:11)

0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 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0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시32:7)

0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시96:7)

0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 니(시121:5)

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됨이 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0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7)



예화포커스(1- 50권)

목사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엮은 예화 백과사전이다. 추상적인 진리를 구체화하는 데 유용한 예화 중에서도 아주 감동적이고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가려 실었다. 이 예화집은 가정, 감사, 건강, 교회, 믿음, 교육, 소망, 사랑, 성공, 용서, 찬송, 행복, 등 각 주제별(전 50권)로 되어 있으며, 성경말씀, 명언, 묵상자료 등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본서를 통해 목회자들은 은혜로운 설교를 하게 되고, 성도들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새사람이 되어 늘 샘물같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 지음, 좋은땅, 각 권 값4,300원

주문: 전화: (02) 386-8660, 팩스(02)386-2961

교보문고, 영풍문고, 기독교 서점에서도 판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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