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바 책임을 다하십시오(33)

복음............... 조회 수 529 추천 수 0 2005.07.11 19: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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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 바 책임을 다하십시오(33)

본문: 마 25: 14-30

영국의 웨일즈라는 시골에 사는 과부가 어느 날 밤, 자기 아기가 위독하다고 10km를 걸어와 의사에게 왕진을 청했습니다. 의사는 처음에는 가봤자 가난한 과부에게서 사례 받는 것도 문제고 또 안 간다면 아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바꾸어 이해타산보다 의사로서의 책임과 인도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준비하고 시골길을 걸어 급히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의사의 도움으로 아기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아기가 바로 장성하여 영국 수상이 된 로이드 조지입니다. 의사의 책임감이 영국의 수상을 살린 것입니다. 반대로 무책임이 낳은 재앙 몇 가지를 보면
1923년 영국에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있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들이받아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서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 캘리포니아호가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사고현장으로부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타이타닉호 무선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요청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호에도 무선사 한 사람이 타고 있었으나 그는 무전기를 꺼놓은 채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호는 대형참사를 까맣게 모른채 항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만약 무선사가 무전기를 켜 놓았더라면 '타이타닉 참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선사 한 사람의 무책임이 엄청난 희생을 낳은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문호 칼라일이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가 하는 일이 미천하다고 낙심치 말라. 그대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집안을 정리하는 단순한 일일지라도 마음먹고 그 일을 잘하라. 만일 그대의 책임의 범위가 넓고 관계되는 일이 많으면 더욱 그리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대에게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가 있으면 그들에 대한 그대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기억하고 그들로 하여금 실망케 말지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세상의 여러 가지 불행이 생기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또한 영국의 시인 키플링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연장을 잡아 눈앞에 있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정 큰 인물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작은 생명 하나를 살리는 것을 생의 최대 목표로 여기고, 지금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를 위하여 생명의 소식,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하늘의 큰 자요, 위대한 자입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링컨 대통령은 세상을 떠난 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업적만큼이나 신앙심이 뛰어났고 신앙인품이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뛰어난 신앙 인격으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편지가 최근에 공개됐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게티스버그 전투 때 마이드 장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리면서 짧은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마이드장군! 이 공격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습니다. 만약 작전이 실패한다면 장군께서는 이 모든 실패의 원인이 링컨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십시오!”그렇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의 리더십은 책임을 지는 리더십입니다. 이 시대의 크리스천은 우리 교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크리스천이 책임 지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 우리의 교회와 사회가 달라집니다.
1865년 4월14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 부부는 극장 2층의 귀빈석에 도착했습니다.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로 환영했고 링컨도 손을 흔들어 답례했습니다. 연극 공연 중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 링컨이 부인 메리 토드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유럽 여행을 한번하고 그 다음으로 축복 받은 땅 가나안 지역 성지순례를 해보고 싶소. 특별히 예루살렘 땅을 걸어보고 싶구려. 그 곳은 예수님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주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지 않소. 주님이 직접 우리의 죄 짐을 짊어지시고 고통의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의 언덕, 거룩한 땅, 예루살렘….”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총성이 극장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것은 부주의한 경호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암살자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에게 접근해서 그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입니다. 경호원의 무책임이 위대한 대통령의 생명을 잃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 전할 책임이 있고(고전9:16 딤후4:2), 파숫군은 경고의 책임이 있고(겔33:1-6),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할 책임이 있고, 학생은 공부할 책임이 있습니다. 각자의 맡겨진 일에 대한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선생님에게 벌 받았어." "뭐라구? 그런 경우가 어디 있니? 내가 내일 학교에 찾아가 너희 선생과 얘기를 좀 해야겠구나. 그런데, 너가 하지 않은 일이 뭐였는데?" "숙제."
성경에 보면 자기 책임을 회피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책임을 하와에게 돌리고 하와는 뱀에게 전가시킵니다.(창3:12-13) 둘째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복을 빼앗긴 원인을 동생 야곱에게 돌리고 아버지께 하소연합니다.(창25:29- 34, 창27:36) 셋째는 빌라도가 죄 없는 자의 피 값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돌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줍니다.(마27:23- 26)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어떤 사람이 외국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던 것입니다. 이 세 종은 제각기 헤어져서 자기의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장사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아마 주인이 조금 주어서 그랬는지 그 돈을 그대로 땅 속에 파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주인이 돌아와서 맡겨 두었던 재산을 가지고 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더 붙여 가지고 주인에 내어놓았습니다. "주인님! 당신이 주신 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또 다섯 달란트의 이를 남겨 갖고 왔습니다."하고 자랑스럽게 내어놓았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받아 들고 너무 기뻐서 말하기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하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도 똑같이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땅에 감추어 두었던 돈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내어놓으면서 하는 말이 "주인님!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받은 즉시 나가서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하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주인은 엄히 책망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거두는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마땅히 은행에라도 넣었다가 이자라도 받게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맡겨 두었던 달란트를 내쫓아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주인은 바로 우리 인생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종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에게 각각 책임과 사명의 달란트를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명, 직장과 가정에 대한 사명, 교회에 대한 사명, 또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사명 등 여러 가지 주어진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여 거기에 최선을 다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섯 달란트를 받았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두 달란트를 받았으면 거기에 대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다섯 달란트를 남겨 오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어에도 보면 "Do your best!"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의 역량껏 힘을 다해서 책임을 감당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처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 그런 사람에게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해군 제독이었던 넬슨은 싸움에 나갈 때마다 "영국은 제군들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할 것으로 믿는다."라는 신호기를 달았을 정도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군인이었습니다. 1770년 르코시마 전쟁 때, 그는 오른쪽 눈을 잃어 버리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1789년, 젠투빈샌트 해전에서 그는 또다시 오른쪽 팔을 잃어 버리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싸움에 임할 때는 항상 꿋꿋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1805년, 트라팔가 앞바다에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와의 접전에서 적의 함대를 거의 침몰시켰으나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쓰러졌으면서도 싸움의 결과를 걱정하여 부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누가 승리하고 있는가?"
부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승리는 우리 쪽입니다."
그는 부하의 말에 웃음을 띄며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내 직분을 다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넬슨은 국가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이행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책임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속한 직장이나 가정에서 나의 위치를 발견하고 나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최선을 다할 때 그 직장은 더 좋아질 것이요,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역량이 모자라면 할 수 없지만 나의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은 그가 처한 곳에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비결도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이 각 기관과 맡은 분야에서 기도하고 열심을 다 하니까 부흥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중에 "나하나 쯤이야!"하면서 맡겨진 책임에 무관심하다면 교회는 부흥될 수 없고 축복해 주실 리도 없습니다.
교인 가운데는 세 가지 종류의 교인이 있는데 꼭 있어야 할 교인이 있고, 있으나 마나 한 교인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꼭 없어야 할 교인, 즉 있어서는 안 될 교인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꼭 있어서는 아니 될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꼭 있어야 할 교인, 없어서는 아니 될 교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꼭 있어야 할 교인은 곧 사명 의식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의 사명, 혹은 기도의 사명, 어떤 이에게는 심방의 사명, 물질이 넉넉하면 물질 봉사의 사명, 교육의 사명 등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들은 각자가 나는 어떤 사명이 있는가를 깊이 깨달아서 책임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사명은 생명보다 귀하고 신앙 생활은 직장 생활보다 귀한 것입니다.
구약의 위대한 사무엘 선지자는 사사로서 그 나라를 멸망에서 구원하고 종교적인 타락에서 부흥을 일으키고 강대한 블레셋이나 아말렉의 침략에서도 기도와 능력으로 구원해 낸 구국공로자요, 치리자이건만 백성들이 왕을 세워 주기를 바랬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분노하셨고, 사무엘도 괘씸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백성을 괘씸히 생각하여 망할 테면 망하고 될대로 되라고 하지 않고, 사무엘상 12장 23절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과연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인 것입니다.
요셉도 그는 가정에서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했고, 애굽에 끌려가서 사환으로서도 정직하게 책임을 다했고 나중에는 총리 대신이 되어서도 자기의 책임을 다한 훌륭한 인물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책임을 다하지 않고 노력 없이 어떤 대가를 받으려 할 때 그것이 곧 불한당이요, 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다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장해 주시고 또 그 상급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도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책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몇 가지 주의할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주인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에게는 주인정신 있고, 손님에게는 손님정신이 있습니다. 주인정신은 무엇이고 손님 정신은 무엇입니까? 주인정신은 책임정신이요, 손님 정신은 방관정신입니다. 책임과 방관의 자세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습니다. 방관은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무책임한 구경꾼의 자세입니다. 방관은 책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방관은 손님의 입장에서는 것이요, 구경꾼의 자세요, 제3자의 위치에서는 것입니다. 책임이 무엇입니까? 내가 맡아서 해야할 일입니다. 어떤 결과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느끼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기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둘러서서 구경만 합니다. 그러나 그 집주인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뛰어들어 불을 끄고, 물건을 꺼내고, 집안 식구의 생명을 구출합니다. 방관과 책임이 이렇게 다릅니다. 손님정신과 주인정신이 이렇게 틀립니다.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하는데, 대답한다는 뜻이 있는 말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르면 대답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에게는 부름의 원리와 대답의 원리가 있습니다. 아들이 나를 부르고, 아내가 나를 부릅니다. 민족이 나를 부르고, 조국이 나를 부르고, 정의가 나를 부르고, 사명이 나를 부르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십니다. 왜 나를 부릅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부르는 것입니다. 청년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청년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대답해야 합니다. 부르시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것은 맡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르면 대답해야 합니다. 12사도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의 부름에 대답하고 나섰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진리의 부르심에 대답했습니다. 나이팅겔은 사랑의 부르심에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부르면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해서 나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용감하게 대답하는 것이 책임감입니다. 책임은 인격의 엄숙한 응답입니다. 응답하려면 성실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실과 용기의 덕이 없는 사람은 불러도 응답할 줄 몰고, 책임을 느낄 줄을 모릅니다. 책임은 인격의 척도요 표준입니다.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다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임사회의 책임적인 인간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모여야 책임 사회가 됩니다. 무책임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책임하다는 것은 사람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요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맡은 사람의 자세는 주인정신의 자세요, 주인 정신은 책임정신입니다. 주인은 강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영국 속담에 '하인 열 사람의 눈보다 주인 한 사람의 눈이 밝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의 시력은 1.2고 하인의 시력은 0.2가 되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책임의식 문제입니다. 책임을 느끼면서 보는 것과, 책임의식 없이 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요, 사람이 사람의 구실을 못한다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부지런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책망하실 때에 "악하고 게으른 자"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남이 놀 때 노력하고, 잠을 잘 때에 일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남보다 더 부지런해야 그 책임도 감당하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수도 있고 천부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아끼고 절약해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지런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인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에게서 책망이 오지 않더라도 성령으로부터 양심에 책망이 옵니다. 어떤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느낌을 영적으로 감지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 영의 음성을 듣고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게 될 때 그는 마음에 평안이 오고 또 힘이 되기도 하고 축복도 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야 함으로 충성할 수 있고 책임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교회의 어떤 봉사를 하거나 혹은 헌금을 드리더라도 내게 기분이 좋고 유익하면 일을 하고 비위에 틀리면 그만 둔다고 하면 그는 책임을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누가 알아주고 칭찬이나 해주면 열심을 내고 알아주지도 않고 오히려 수욕이 돌아오면 집어치운다고 하면 그도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혼자 다하는 것 같고 안 보면 그만 둔다면 그런 사람 역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어떤 작은 일에라도 내 양심껏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벳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뒤에는 새끼가 울부짖지만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좌우로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법궤를 싣고 목적지로 가서 자기 몸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었던 것과 같이 우리는 공정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자세로서 책임을 완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희생적이어야 합니다
옛날 로마의 한 도시였던 폼페이(Pompey)가 화산이 터지는 바람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후에 여러 사람들에 의해 그 유물들이 화석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갖가지 모양의 화석 중에는 어떤 군인이 성문을 지키다가 많은 사람들이 그 성문을 통해 도망가고 있었으나 그는 성문을 지키는 자기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뜨거운 화산의 용암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서서 타 죽은 체로 화석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 군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희생적인 마음이 있어야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바라 교회에 가면 묘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개(犬)의 묘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주인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고 살고 또 주인의 말을 잘 듣던 개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주인이 죽어서 무덤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날부터 그 개는 자기를 사랑해 주고 아껴 주던 주인이 죽은 것을 슬퍼하면서 그 주인의 무덤에 앉아서 무려 14시간이나 덥든지 춥든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무덤을 지키다가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묘지에 안장을 해주고 충견비까지 세워 주어서 그것을 보며 지나는 사람에게 큰 감명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개의 충성과 책임감과 희생적인 정신은 어떤 사람보다 몇 배나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을 할 때에 교회학교 교사면 교사로서 추위도 참고 시간의 희생을 해가면서 열성을 다해야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보람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성가대원이 되었으면 배가 좀 고프고 피곤해도 참고 또 비위가 맞지 않더라도 희생을 각오해야 책임을 감당할 수 있고 칭찬 받는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비결도 좀 멸시를 받더라도 자주 심방을 하고 귀찮을 정도로 쫓아 다녀야 하고 남몰래 기도도 해야 부흥도 되고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헌금이나 물질을 드리는 것도 내가 좀 못 먹고 못 입더라도 하나님께 바쳐야 할 때는 바친다는 희생적인 정신이 있어야 바른 성도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 교회적으로도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개척교회도 많이 도와야겠고, 선교사도 파송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교회만 운영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희생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 속에서 부흥되고 또 책임을 감당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인 다니엘 웹스터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저명한 인사 스무 명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서로들 담소를 나누는데, 웹스터만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웹스터 씨, 당신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모두 주목한 가운데 웹스터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저는 참으로 엄숙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을 장차 올 그 날에 모두 다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금년에는 좀 더 성실하게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깨닫고 충성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고 축복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오! 하나님, 오늘 나의 맡은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을 내게 허락하시고, 그것을 보다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실함과 책임감을 허락하시며, 비록 나를 지켜보고 칭찬하거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열심히 노력하게 하옵소서. 자신을 높이는 만큼이나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시며, 나와 함께 생활하고 같이 일하는 자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므로 저들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므로 내가 가는 곳마다 행복감이 더해지게 하옵소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하나님이 저를 영적 제사장으로 세우셨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소서. 저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기회와 책임

어떤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 일에 자신을 드린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 결과가 어떨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잘될지 잘 안될지. 그래서 책임을 지는 일은 항상 모험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 모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책임을 남에게 떠 넘기기도 합니다. 자기의 삶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계몽주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는 책임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으로. 그래서 되도록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을 지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맡기셨습니다. 이브에게 아담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번성하고 충만하고 다스리는 책임을 가진 자로 지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임지는 상황으로 던져졌고, 그 일을 잘 감당할 때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며 그렇지 못할 때 그에 따르는 책망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자유는 남을 섬기고 남의 짐을 지기 위한 자유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뜻하신 삶이요 바른 모습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자는 기회를 놓칩니다. 복 받을 기회, 복을 나눌 기회,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할 기회.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주께서 허락하신 그 산지를. 그리고 감당할 믿음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사랑도 주시옵소서. 그래서 신을 벗어 주기 보다 신을 신고 험한 길도 가게 하옵소서.’주께서 허락한 책임을 잘 감당함으로 기회를 늘 복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할 때, 어떤 형태로든지 징계를 받게 됩니다. 나는 나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0 현재 내가 마땅히 해야 될 일들 중에서 혹시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0 나는 내가 속해있는 현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마땅한 직무를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주님의 일꾼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내 직무를 다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인가?
0 나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열심히 장사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0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할 때, 어떤 형태로든지 징계를 받게 됩니다. 나는 나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0 힘을 올바르게 쓰지 않으면 무익한 힘 자랑이 될 뿐입니다.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을 가치 있게 쓰고 있습니까?
0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요구하시는 사명과 책임은 무엇입니까?
0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왜 나를 보내셨습니까?
0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기도 생활과 사랑의 실천, 남을 대접하는 일들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3. 예화(1): 전도하지 못한 책임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가 8년 동안 옥고를 치른 마르틴 미네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가 옥고를 치른 후 위대한 [전쟁백서]를 발표했는데 그의 책 가운데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어느 날, 미네르 목사가 일곱 번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심판대 앞에 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도 그 대열에 서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이상하게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면서 자꾸 변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히틀러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네르 목사님에게 하신 말씀이,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네 책임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네르 목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네가 8년 동안 히틀러 정권에 대해 항거만 했지 한번이나 그에게 전도했느냐? 네가 히틀러에게 전도했더라면 그가 무서운 폭군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전쟁을 일으킨 죄 값이 바로 네가 전도하지 않은 데 있다" 고 지적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가슴을 치고 통곡하면서 "이 전쟁을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 고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로 쓴 책이 바로 [전쟁백서] 입니다.

* 예화(2): 리더의 책임

리더십은 귀한 소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다. 리더는 따르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기회와 그럴 수 있는 영향력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조직을 잘되게 하려는 열정을 잃고 대신 자신이 얻을 것에만 한눈을 팔게 되면 더 이상 참된 리더가 아니다. 리더의 삶에 교만이 뿌리내린 한 가지 확실한 징표는 아랫사람들을 더 이상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리더가 아랫사람들의 고생에 무심하다면 그것은 교만으로 마음이 둔해졌다는 징표이다. 직원들에게는 재정 삭감과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계속 알짜배기 혜택을 고루 누린다면 그것은 리더십의 권위를 잃는 것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업적에 매달리느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팽개치는 리더는 리더십의 소명이 합당치 못한 자다. 교인이 아파하는데도 마음이 동하지 않거나 양 떼 중 하나가 낙오하는데도 득실을 따지는 목사는 영적 리더십의 특권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나 마찬가지다.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농부들에게 빵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럼 케이크를 먹게 하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역사는 이런 매정한 리더들이 결국 몰락하는 것을 보여 준다. 리더가 사람들을 향해 마땅히 품어야 할 긍휼의 마음은 사도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다. 어려움이 많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는 이렇게 썼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 11:28, 29). 참 리더는 따르는 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 예화(3): 맡겨진 몫과 책임

현대인의 4무주의란 것이 있습니다. 무감동, 무책임, 무관심, 무목적 입니다. 장터에 앉아 동무들에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 치지 않는 비정한 시대입니다. 옆집 노인이 홀로 죽어 여러 날 되었는데도 까맣게 모르는 이기적인 사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반응 없는 군중을 보신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며 연거푸 질책하십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아”하며 이사야는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몫(책임)을 포기한 채 물결 따라 흐르는 맹목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회개의 몫을 찾아야 합니다. 길선주 장로가.. 평양 장대현교회 사경회 마지막 날 밤 “나는 아간입니다. 고인이 된 친구 부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100불을 훔쳤습니다. 내일 아침에 갚겠습니다.”라며 청중 앞에 흐느끼며 자복했을 때 한국 전 국토에 부흥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반면에 회개의 몫을 지불치 않고 외면한 아간은.. 아이성 싸움에 참패를 가져왔고 자신과 가족을 모조리 죽이는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나의 연고로 이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십시오”(욘 1:12)라고 했던 요나의 희생적 결단이 있을 때 폭풍은 즉시 멈추고 선객 모두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회개할 몫이 없으십니까? 길거리에서 잠자려는 나그네를 찾아가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삿 19:20)고 하며 자기집에서 숙식을 책임진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노인을 지금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일생에 의사 한번 만난 일도 없고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사악한 주술사에게 괴롭힘 당하는 미개한 종족들, 굶고 또 굶어 평균 연령 40세도 못 되는 기아에 지친 최빈민국 사람들. 이들을 책임져야 할 몫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에게 외면할 떳떳한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책임지고 구원해야 할 친척이나 친구의 영혼을 구원치 않은 직무 유기죄로 그 피 값을 물라 하실 때에(겔 3:18) 차라리 피 값을 지불할 무서운 각오로 태만할 수 있습니까? 심판날이 다가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 25:26)라는 주님의 책망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그 몫을 분배 받으십시오. 권리의 몫 말고 의무 말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야고보서 4:17~5:3)
'부유함'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릅니다

4. 찬송: (355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5. 책임에 관한 금언

0 인간의 책임은 신의 책임이 감소함에 따라 증가한다.(앙드레 지드)
0 인간이라는 것은 우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안토니 드 생텍쥐베리)
0 어느 누구도 처음에 자유 의사로 받아들인 것이 아닌 한 어떤 책임감으로도 속박 받지 않는다.(벳티)
0 일 다하고 죽은 무덤 없다.(한국 속담)
0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과실은 책망을 받지만, 우리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책망 받지 아니한다.(아리스토텔레스)
0 책임이란 우리가 단지 그 중간만 볼 수 있는 줄과 같다. 두 끝은 보이지 않는다.(머피)
0 책임이 교육을 시킨다.(웬델 필립스)
0 책임은 능력과 힘과 나란히 손잡고 걸어간다.(홀랜드)
0 책임은 의무와 권력이 결합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김경선)
0 모른다는 구실은 결코 오인의 책임을 소멸시키지 않는다.(죤 러스킨)
0 우리 각 사람은 다른 각 개인에게 대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책임적이다.(도스토예프스키)
0 인간은 누구나 그 자신만이 해야할 일이 있고, 밖으로 수행할 임무가 있으며, 그 자신의 영향권이 있다. 그것은 그 자신만의 독특한 분야요 세계이므로 그의 양심 외에는 가르칠 것이 없다.(윌리엄 엘러리 채닝)
0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할 의무는 감당하지 않고, 그들의 해야할 일만 강요하는 자에게는 오해와 고통만 뒤따를 뿐이다.(귀조 부인)

*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쉴 곳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교회에 오셔서 꼭, 행복의 열쇠를 찾으십시오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행17:11)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막8:35)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정의롭고(선행에 힘쓰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기도에 힘쓰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하나 교회 한 태 완 목사
전화: 010-7676-3049, 자택: (02) 959-3049
이메일: jesuskor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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