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를 통해 배울 교훈

복음............... 조회 수 750 추천 수 0 2005.04.10 0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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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를 통해 배울 교훈

본문: 막 14:50-52, 행15:37-39

오늘은 마가라는 사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마가라는 이름의 뜻은 '의젓하다'라는 의미이며 히브리 이름은 요한('비추이다'라는 뜻)이므로 요한 마가라 불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록은 없고, 마가의 모친은 훌륭한 믿음의 어머니인 마리아이며, 마가의 외삼촌은 바나바입니다.(골4:10)
지중해 구브로 섬 출신이며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레위 족속으로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리스도인의 집회장소였습니다. 즉 마가의 가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를 위하여 개방되었던 기도의 집이며 모임의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는 광활한 다락방이 있었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열두 제자를 데리고 그곳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으며(눅22:12-13) 예수님의 승천 후에 120명의 성도와 제자들이 모여 기도회 중에 성령이 임하셨던 곳입니다.(행1:13-15, 행2:1, 행12:12)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모친에 의해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난 마가는 사도였으나, 12명의 제자들 수에 공식적으로 들어가지 않은 보조위치(부교역자)였으며 전도자로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A.D 64-70)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에 베 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나체로 도망하였던 젊은이이며(막14:51-52), 또한 물동이를 가지고 제자들을 안내했던 사람(막14:13)이 바로 마가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A.D 46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시중드는 수종자로 동행했으나 일행과의 갈등으로 인해 마가 요한은 일행에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행12:15, 행13:13)
1차 전도여행에서 도중하차한 것을 이유로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 동행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의견충돌을 일으켜 바울과 바나바가 따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즉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고, 바나바는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갔습니다.(행15:37-39) 이때부터 마가는 로마에서 전도활동을 다시 재기할 때까지 공백기간을 가졌으나 바울과 결별 10여년 만에 재회하여 로마에서 동역하였고, 바울과 함께 전도하다가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골4:10)
바울이 죽은 후에는 베드로와 동역하였으며 이때 베드로를 통해 얻은 증언과 진리를 모아서 책을 펴낼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고 섬세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그의 저서인 마가복음에서 자신을 조금도 나타내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수종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도운 철저하게 숨은 일꾼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매력인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A.D. 64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 마가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와 좋은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
사도행전 12:12절에는 마가의 어머니가 마리아라는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성경에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고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차려서 대접하였고 예수님 부활 후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자신의 집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 후에도 성도들은 이 집에 모여서 정기적인 예배 뿐 아니라 특별 기도회 등으로 (행12:5,12) 모이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 이곳이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된 것입니다.
2) 그의 삼촌 바나바의 신앙
골로새서 4:10절에 보면 바울이 마가를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마가가 영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삼촌인 바나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그는 최초로 자기 밭을 팔아 교회에 헌금함으로서 교회가 구제와 봉사 활동을 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6- 37)

2. 마가는 열심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마가복음 14:51-52 에 보면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마가 요한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다음과 같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그 날 밤 자기 집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이 거행될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 만찬의 심부름을 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찬이 마쳐지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셨고 그는 자기 집에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낫습니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예수님이 군인들에 의해 결박당하여 끌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가는 황급히 일어났습니다. 미쳐 옷을 입지 못하고 홑이불로 대충 가리고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얼마나 급하였으면 옷을 입을 겨를도 없이 결박당해 끌려간 주님의 뒤를 따랐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열심을 내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따름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따를 대상은 그리스도입니다.

3. 겁쟁이의 모습을 떨쳐 버린 자랑스런 성공자
‘비추이다’라는 이름의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지만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행 12:12). 마가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이어서 그의 집을 기도처로 삼았는데, 그의 집을 방문한 사도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마가의 신앙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하였습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언제나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특히 외삼촌인 바나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골4:10). 또한 마가는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가가 자신의 영적 아들임을 증언했습니다(벧전 5:13).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은 청년 마가는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단지 경건한 분위기 속에 젖어서 살았을 뿐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한 청년 마가는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던 마가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두르고 있던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하는 추태를 보이고 만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마가는 스승 예수님이 잡혀가고, 환경이 바뀌니까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120명과 함께 마가 자기 집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마가의 연약한 신앙은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선교사로 세움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던 마가는 구브로를 거쳐 밤빌리아의 버가까지 동행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공포에 질려서인지, 곤란을 극복할 수 없었음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급진적 이방 전도를 찬성할 수 없었음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아마도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는 선교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마가 때문에 바울과 외삼촌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마가는 오랜 연단기간을 거쳐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공헌을 세우고, 위신을 회복하였습니다. 바울은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딤후 2:1)라고 언급했습니다. 겁 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주안에서 그 믿음이 장성해지자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는 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는 제2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당시 로마인들과 오늘날 우리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네로 황제가 통치했을 때에 로마에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죽인 네로의 폭정은 64년경 로마 대화재로 극에 달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순교했습니다. 마가는‘불같은 시험’속에 있는 로마 기독교인들을 위해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마가는 자신에게 유익한 자였다”고 마지막 서신서에서 고백했습니다. 끝까지 고난에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고난 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는 복음서입니다. 마가는 말년에 알렉산드리아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와 같았던 겁쟁이의 모습을 떨쳐 버리고 자랑스런 성공자가 된 마가가 보여준 승리는 성령과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소유해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마가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마가에게는 훌륭한 믿음의 어머니 마리아와 성령충만한 외삼촌 바나바가 있어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바울과 베드로의 수종자로서 훈련을 받아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한 어린이와 불신자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주변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2. 전도여행에서 수행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마가는 도중하차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올바른 신앙교육을 받아 자라났기 때문에 다시 재기하여 이방전도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3. 마가나 디모데처럼 모태신앙인 성도는 오랜 종교적인 삶과 의식 등의 타성으로 마음밭이 묵은 땅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4.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마가는 자신의 가진 것을 믿음의 형제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행4:36-37) 특히 마가 다락방 기도회에서 120명의 성도가 성령을 체험하는 이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자칫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한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 더 커다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5. 마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훌륭한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관용과 격려는 한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6. 열심을 갖고 따라나선 마가였지만, 중도에서 되돌아오는 경솔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실수 그 자체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행19:36)
비록 마가는 실수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및 바울을 도와 함께 사역했으며, 마가복음을 저작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삶의 척도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극복했는가에 있습니다.
마가는 인간적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심과 사랑이 있었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따르다가 군병 하나가 마가를 이상히 여겨 잡으려고 했습니다. 순간 마가는 두려웠습니다. 그는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사랑하여 따랐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주님 따르기를 포기하는 경우를 봅니다. 진실하고 온전한 신앙은 변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변하는 것은 온전한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히3:14절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처음 시작한 것을 확실히 끝까지 잡는 것입니다. 마가의 약점은 시작은 잘했으나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싶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앞 뒤 가리지 않고 벗은 몸으로라도 따라나서는 열심 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런 마가의 약점은 바울과 선교 여행을 동행하였을 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 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갔습니다.
사도행전 13:5절에 보면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종자는 받들어 섬기는 자 또는 협조자라는 뜻입니다. 알포드라는 신학자에 의하면 마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를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세례 베푸는 일을 도왔으며 전도 여행의 경비를 관리하고 전도사역의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을 맡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를 수종자로 두고 바울 선교팀은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루기아에서 배타고 구브로 섬에 도착하여 살라미에서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구브로 섬을 중앙으로 약 180km를 횡단하여 남서쪽에 위치한 바보라는 도시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하였습니다. 바보에서 구브로 총독을 전도한 바울 일행은 사기가 충만해져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라는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마가 요한이 일행에서 이탈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마가 요한이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이유를 성경은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의하면 여러 가지 이유들을 설명합니다.
1) 처음부터 구브로 까지만 동행하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2) 삼촌 바나바를 따라왔는데 바울이 선교의 주도권을 잡고 바나바가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3) 고향을 그리는 향수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그리고 용기 부족 등을 꼽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 사건은 은혜 가운데 선교활동을 하던 바울 일행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5:38절에 보면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할 때 마가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하는 바나바의 말을 용납치 않고 심한 의견 대립을 벌이다가 결국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여 따로 따로 전도 여행을 하는 것을 보면 마가는 바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즉 선교의 대열에 끼였다가 도중하차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교팀 전체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가를 대단히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7. 그럼에도 마가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쓰십니다. 실수하고 실패한 사람 마가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쓰셨습니까?
1) 바나바와 함께 쓰셨습니다.
2차 전도 여행시에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제멋대로 행동한 마가를 다시 데려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한 번 실수했지만 그에게 한 번 기회를 주자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심한 의견 대립을 보이다가 서로 갈라서서 전도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행15:39) 그리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갈리기아로 떠났습니다.
2) 바울과 함께 쓰셨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못마땅해 했지만 오래 동안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마가가 한 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바나바와 더불어서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딤후4:10절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그를 영접하라고 편지하고 있음을 봅니다.(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3) 베드로와 함께 쓰셨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와도 깊은 동역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전 5:13절에서 베드로는 마가를 가리켜서 "내 아들 마가"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복음서 중에 두 번째 책인 마가 복음을 이 마가 요한이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실패와 실수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악점에도 불구하고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한 번의 실수와 실패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입니다. 쉽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쓴 식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보로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의 고대 유적지를 발견했을 때에 찾아낸 작은 씨앗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학자들은 발견된 것들 중에서 흠이 없는 작은 씨앗 하나를 흙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물을 주며 관찰했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서 싹이 텃습니다. 자라서 그곳에서 목련화가 피었습니다. 현대의 목련화와는 꽃잎의 수가 다른 고대의 목련화가 피었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꽃씨는 수 백년을 땅 속 깊은 곳에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수 백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꽃씨는 생명의 기운을 찾게 된 것입니다. 무던히 길고 긴 세월동안 기다렸던 그 씨앗이 마침내 싹이 났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 보잘 것 없지만 그 곳에 싹을 티울 수 있는 생명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으나 어떤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냥 수백 년이라도 묻혀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작은 씨앗 말입니다. 인간은 본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6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받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을 겪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바로 오늘의 마가입니다. 어떤 책에서 실패에 관해 아주 좋은 명언들을 모아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다시 출발해야 할 좋은 이유를 갖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 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할 뿐이다.' 그렇습니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계획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879년에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성장하면서 남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고 지적 성장이 늦어 아버지에게 큰 걱정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정신적인 진료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 아이가 배우는 것이 더딘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1895년도에 스위스 쥬리히 대학 시험응시 했으나 낙방했습니다. 그러나 일년 후에 다시 시험을 치른 결과 합격의 영광을 맞이했습니다. 그 후부터 그 청년은 배움의 발동이 걸리기 시작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대학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이슈타인 박사입니다. 그는 실패가 자기 인생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실패와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용기를 냅시다. 바울의 곁을 떠났던 사람 그래서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었겠지만 그의 믿음은 실패했으나 실망하지 않는 믿음이었기에 결국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가 실패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실패 때문에 오히려 더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주신 약속들을 다시 붙잡고 기도합니다. 내가 지칠 때에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주님께서 보여주실 결과들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며, 주님께 속하여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마가처럼 실패하였어도 다시 일어나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및 토의
0 마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 보세요
0 나는 마가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마가는 좋은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적 환경은 어떠합니까?
0 마가는 실패하고 실수하였으나 다시 일어났습니다. 나는 실패하고 실수했을 때 어떻게 합니까?

* 실패하고 실수하였어도

기도의 성자로 알려진 조지 뮬러는 전도에도 열정을 가진 사역자였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그의 전도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친구 5명을 전도하기 위해 부단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전도할 때마다 비아냥과 조롱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뮬러는 전도하는 번거로움과 전도 실패에서 오는 두려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때를 잃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4명의 친구는 하나님께 돌아왔지만 나머지 1명은 무려 50년 이상을 전도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도 뮬러가 죽을 때까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구원받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전도는 인간이 하는 것이지만 그 전도의 주권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도를 중단하거나 힘을 잃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전도하다가 열매가 없다든지 또 상대방이 내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비록 실패하였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아시고 인정하십니다.
1950년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자신의 주요 고객들을 초청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돈을 지급하려는 순간 사무실에 지갑을 놓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음식값을 지불하지 못해 고객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는 변호사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봉변당한 것을 털어놓으며 말했습니다.
“현금이 없을 때 음식값을 대신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두 사람은 장시간의 연구 끝에 먼저 결제하고 나중에 상환하는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 카드(Diners Card)입니다. 다이너스 카드는 이름 그대로 맥나마라가 저녁(Dinner)을 먹다가 곤혹을 치른 후에 만든 카드라는 뜻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와 실수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습니다. 예수의 12제자들은 모두 허점투성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허점투성이 제자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성경의 인물
성경에 나오는 왕에서 노예, 예언자, 거짓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약 400명의 인물들을 정렬하고, 관계 성구, 배경해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새기도록 구성한 인물 백과사전.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고, 투쟁하고, 실패하고 성취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부록: 성경에 나오는 전 인물<약2500명> 수록)
한 태 완 목사 著, 좋은 땅 (주문전화:386-8660), 정가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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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교사와 목사가 되었고, 예화포커스(전 50권), 성경의 인물, 사랑의 빛 (전 20권), 기쁨의 샘(전 4권), 사랑덩어리, 당신을 사랑하오 등 기독교 서적을 100권 가까이 저술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저의 설교집을 출판하고자 합니다. 출판에 협조하실 분은 꼭 연락바랍니다. 아울러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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