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속에 있는 필연

복음............... 조회 수 551 추천 수 0 2005.10.04 07: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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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속에 있는 필연

1948년 10월 초에 한 젊은 목사님이 오래 된 교회에 부임했다. 이전에 그 교회는 웅장함을 자랑했지만 그가 부임할 당시에는 낡고 초라했다. 그래서 그는 부임하자마자 교회수리 작업에 들어갔다. 그 해의 성탄절 전야예배를 아름답게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3달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낡은 지붕에서 비가 흘러내렸다. 벽이 스펀지처럼 빗물을 빨아들였다.

얼마 후에 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 난 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탄절까지 강단의 벽을 보수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지난 3달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날 오후에 그는 중고등부에서 주관하는 자선 바자회에 참석했다.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낡은 식탁보 하나가 그의 눈을 잡아당겼다.

금색과 아이보리색으로 혼합된 4.5미터짜리 식탁보였다. ‘저 식탁보로 강단의 벽에 뚫린 구멍을 막으면 되겠군.’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식탁보를 샀다. 하루 뒤, 성탄절 이브에는 내내 눈보라가 내렸다. 그는 교회의 문을 잠그고 나오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한 중년여성을 보았다. 그런데 버스가 오려면 최소한 30분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더러 교회로 가서 몸을 좀 녹이자고 권했다.

그녀는 그 지역의 유명한 부잣집에서 유모를 구한다기에 면접을 보러온 타지역 사람이었다. 그녀는 전쟁 피난민이었고 영어도 서툴러서 그 유모 자리를 얻지 못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교회의 뒤쪽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도하고 있었고 그는 일어나 구멍 난 벽에다 그 식탁보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로 달려오면서 외쳤다. “목사님, 제 겁니다. 제 식탁보가 틀림없어요.”

그가 깜짝 놀라자 그녀는 그 식탁보의 한 쪽 구석에 수 놓여 있던 자신의 이름을 찾아서 보여 주었다. 그녀는 이전에 자신의 남편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았는데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나치에 반대하다가 스위스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둘이 함께 가면 위험하다고 남편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그녀만 먼저 스위스로 떠나게 됐다. 나중에 그녀는 남편이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무척 감동을 받고는 그 식탁보를 그녀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더 아름답다면서 사양하고는 떠나갔다. 성탄절 전야예배가 드려질 때 그것은 촛불 아래서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전야예배가 아주 감동적으로 드려졌다. 예배 후 성도들은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때 한 노신사가 황홀한 듯이 그 식탁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노신사는 교회를 나가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하네요. 오래 전에 저도 저런 식탁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제 아내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그 식탁보를 사용하곤 했지요. 빈에서 살 때였지요.” 갑자기 그의 온 몸에서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그 날 오후에 만났던 그 중년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노신사는 신음하듯이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내 아내가 살아 있다니...어떡하면 만날 수 있지요.”

그 노신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는 그녀가 면접하러 들렀던 그 부잣집에 전화해서 그녀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다. 그는 낡은 차를 몰고 그 노신사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나왔다. 그 날 밤에 그는 두 부부의 눈물겹도록 행복한 재회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징검다리를 만드는 돌덩이 하나하나는 우연히 거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쭉 이어져 있는 징검다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하나님은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엮어서 아주 필연적인 사건을 만드신다. 우연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우리가 잘 살피기만 하면 우연 속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김종춘 목사(크리스천투데이)

외손녀 이름짓기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지을 때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변을 쓰고 가운데 혹은 끝에 돌림자를 쓰는 것은 오행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행의 오운육기 원리를 기본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이다. 고신대에서 한의학을 가르치는 김양규 장로의 책을 읽으니 그것은 진화론과 같다고 한다. 문제는 바리새인의 유전처럼 오행의 원리라는 게 유전이 되어서 크리스천이라도 그 원리에 눌려 있다는 것이다. 장로님이었던 시아버지도 내가 결혼할 때 날을 택일하고 내 아들딸인 손주들 이름을 작명소에서 지어오셨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결혼할 때 이사할 때도 좋은 날을 따지고,호랑이띠 여자는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띠 타령을 했던 것이다.

지난 6월25일,딸 아이가 예쁜 손녀를 출산했다. 첫딸을 낳고 기뻐하며 어떤 이름을 지을까 궁리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상기’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서로 상(相)에 기억할 기(記),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믿음의 6대 손으로 태어났으니 조상을 기억하고,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고,많은 사람의 도움과 축복 속에 태어났으니 이웃의 고마움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그 기억을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라는 뜻이다. 손녀에 대한 기도제목이 ‘상기’라는 이름에 담겨 있다.

남자아이도 아니고 여자아이 이름이 상기가 뭐냐,자라서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 말대로 상기가 남자아이라면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겠지만 여자아이기 때문에 그 뜻을 궁금해 할 텐데,그때마다 자기 이름에 담긴 뜻을 설명한다면 저절로 전도가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생일이 6월25일이니 ‘상기하자 6·25!’ 얼마나 기억하기 좋은 이름인가! 6·25는 슬픈 전쟁이다. 믿음의 6대가 내려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렀겠는가.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항상 새 이름을 주셨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바뀌었고,큰 자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작은 자 바울로 바뀌었다. 성경적인 이름은 겸손한 이름이다. 하나님을 만난 간증과 내가 경험한 은혜를 기억하고,내 자녀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원을 이름에 담을 때 하나님은 그 이름대로 인도하실 것이다. 새 생명으로 우리 가정에 맡겨진 상기가 이름처럼 하나님을 기억하고,그 기억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도록 축복하며 기도드린다.
/김양재(우리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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