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성선 선생 추모 예배

한태완............... 조회 수 549 추천 수 0 2009.01.30 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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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성선 선생 추모 예배  

본문: 행13: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오늘은 고(故) 김성선 어른의 1주기 추모예배를 맞이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찬송가 221장을 함께 찬송하겠습니다. 

1.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중한 짐을 벗어 버렸네 죄 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2. 그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니 나 가는 길이 형통하겠네
그 요단강을 내가 지금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3. 내 주린 영혼 만나로써 먹여주시니 그 양식 내게 생명 되겠네 이 후로 생명 양식 주와 함께 먹으며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후렴]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이어서 예배를 위해 김경희 집사님께서 대표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은 취업을 위해 한국은퇴자 협회라는 곳에서 결혼주례자 교육을 일주일간 받았는데 그곳에 함께 교육을 받은 분들이 자기 소개를 하는 데 모두가 과거에 장군, 신문사 사장, 교장 등의 화려한 경력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나의 직분을 지금도 나인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또 얼마전에 모 기도원에 가서 수련회에 참석하였는데 그곳에서 자기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부분 자기는 00 회사 사장입니다. 00 고등학교 교장입니다. 00 대학교 교수입니다. 등으로 현재의 나의 직분으로 자기 소개를 하였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자기 소개를 하는데 현재 백수인 나는 ‘어떤 사람입니다’라고 할 말이 없었고, 그렇다고 과거 교사였다고 이야기하자니 그건 이미 그들이 다 아는 바이고 과거를 돌이켜 보니 나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탐심과 나태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만이 떠올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태완입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어색하게 내 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학생들이 나는 00 고등학교 2학년 몇 반의 아무개 여학생입니다. 라는 식의 글을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대답이 맞을까요. 그 학생은 조금만 지나면 3학년이 되고, 또 1년이 지나면 여학생이 아닌 숙녀가 될 사람이 많은데도 자기 소개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많은 교장을 만나보았는데 그들 중에는 교장 퇴임을 얼마 안남겨 두고도 자기가 죽을 때까지 교장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즉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하고 있는 일은 내가 아니고 잠시 맡아서 하고 있는 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미인이다." 이렇게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점점 늙어가면서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질 때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나는 엄마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도움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월이나 외부 조건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영원히 불변하는 나 자신의 진정한 신분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사회적 위치, 겉모양, 능력 등이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변하는 것들이요, 세상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나는 누구입니까?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나의 신분이나 현재의 나의 지위나 소유한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자신이 죽정이인지 알곡인지, 양인지, 염소인지 구별될 날이 옵니다.
 즉 우리는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게 될 날이 오고 자신의 생을 평가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에 보면 한 사람이 타국에 갈재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는데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또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가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회계하는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삶을 결산할 때에 과연 나의 삶은 어떻게 평가될 것 같습니까? 다시 말하면 내가 고인이 되었을 때 나의 후손이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어떠한 삶을 살았노라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까? 저는 오늘 추모예배를 드리는 고인을 살아생전에 몇 번 뵈었으나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오늘 이 시간 고인의 삶을 생각해보고 내 자신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제가 그동안 8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저서 중에 “성경의 인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생애와 그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등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에 앞으로의 남은 삶을 꼭 본받아 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고 하면 허물과 죄가 별로 없는 요셉이나 다니엘 같은 인물이 아니고, 비록 죄와 실수가 많았지만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을 본받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들에게 한글로는 한승진이지만 영문으로는 다윗이라고 이름하고 부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기뻐하고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다윗은 작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많은 양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형제들은 이 일을 동생에게 맡기고 등한히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맡겨진 양들을 생명을 걸고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깨서 자신의 양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부유하여 지고 권세자가 되면 돈과 권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안일과 쾌락주의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되어 큰 궁궐에서 살면서 자기의 거쳐는 화려한 데 하나님의 성전은 초라한 생각에 잠을 못자며 괴로워하고 성전 지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성경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하였습니다. 저는 다윗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저처럼 이런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다윗은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필사적인 위협과 추격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 하여 두 번이나 살려주었습니다.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은 하나님이 왕이나 제사장,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인정하신 권위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임을 알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하늘이 나에게 보내 주신 분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고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들이 비록 나에게 잘못하더라도 부모를 원망하고 거스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권세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래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용산 철거민 사망 등으로 인해 과격한 촛불시위 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세도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권세자들의 잘못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권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정당한 방법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불법행위 등은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하고 있을 때 자기를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 시므이를 자기 부하 아비새가 목을 배려는 것을 다윗은 만류하고 용서하였습니다. 주님은 다윗처럼 원수까지도 용서해주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넷째, 다윗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지은 많은 시편을 보면 대부분이 주님을 찬송하는 글입니다. 그 중 하나를 찾아보면 시편 57편 9절에 “주여 내가 만민중에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수금과 비파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송하며 춤추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찬송하게 하려 하심입니다.(이사야 43: 21) 하나님은 찬송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또한 찬송은 곡조가 있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아무 말을 안하고 지내는 것을 기뻐할 부모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의지하고 따를 때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자신에게 기도로 아뢰고 찬송할 때,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다섯째, 다윗은 비록 실수하고 넘어졌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하여 때로는 죄를 짓고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를 구하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애통하며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도록 합시다.

여섯째,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장애물과 환경에 얽매이거나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믿음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어떠한 장애물에도 굴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존귀하고 가치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세상에는 돈보다 가치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건강, 시간, 명예, 지혜, 믿음. 소망, 사랑, 생명 등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배를 발견한 농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그래야 그 보물이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저의 보물입니다. 저는 예수님과 아무리 많은 돈과 결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있는 것을 위해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일 처음 부르신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습니다. 어부들이 가장 소중한 것은 배와 그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쫒아가기 위해 그것들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더 가치있는 것을 얻기 위해 과거에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손들에게 남겨할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흔적은 부유하고 높은 벼슬이 아닙니다. 자손들에게 남겨줄 흔적과 유산은 물질이 아니라 신앙의 삶과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생애를 이야기 할 때 그분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 할 수 있는 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남은 생애를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주님,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작은 일에도 충성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주님을 항상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오늘 추모예배를 드린 이 가정위에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위에도 예수 잘 믿는 가정, 복 받는 가족들 되게 하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중에 기쁨과 평안을 누리기를 기원하며 우리 가족, 친족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9. 1. 30일(금) 추모 예배시 한태완 목사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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