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 성도가 힘써야 할 것

복음 | 2010.11.05 14:44:0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행2:40-47
설교자
한태완 목사
참고

성도가 힘써야 할 것

 

본문: 사도행전2:40-47

 

초대교회가 힘썼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둘째,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힘썼습니다.

셋째, 주안에서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

넷째, 떡을 떼며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복음 전파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섯째,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성도가 무엇보다도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하며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왜 '모이기를 힘쓰는 삶'이 중요합니까? 모임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중심적 세계관'이 깨지는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고독의 영성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영성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영성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은 성숙하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님의식을 가지기보다 주인의식을 가지십시오. 구경꾼이 되기보다 일꾼이 되십시오. 감독만 잘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배우와 모든 스텝들이 다 잘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 깊이 빠지면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발만 걸치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몸은 편하겠지만 그런 모습이 어찌 복된 모습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특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전 아랍을 상대로 이긴 제 3차 중동전쟁은 6일만에 끝났습니다. 얼마나 빨리 이집트 소유의 거대한 시나이 반도를 점령해 버렸는지 점령 속도가 탱크를 타고 지나가는 속도보다 빨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6일만에 아랍 연합국을 항복시킬 수 있었습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6일 안에 전쟁을 끝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런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생사가 위태한 일이 있어도 주일만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힘써 지키는 성도를 힘써 지켜주실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둘째는 성경말씀을 읽고 배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41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날에 삼천 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엄청난 사람들이 다 진짜 제자였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1절에 나오는 '제자'는 원어로 그냥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한 무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루살렘 교회는 힘이 약화되고 오히려 이방 지역의 교회들이 더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후의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인 숫자가 늘어났다고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진리지만 성경은 다수를 부정적으로 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숫자 놀음의 환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엉터리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숫자 아닙니까? 다수 좋아하다가 망한 기록이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사기치는 사람, 돈 떼먹는 사람, 복음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 선거철에 나타나는 사람, 바람 피는 사람,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 등 온갖 군상들이 숫자의 그늘 밑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 다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되고, 소신이 있는 소수가 되십시오. 쉽게 살려면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면 소수의 서러움도 감내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변화시키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보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제자를 더 원하십니다.

진짜 축복이 무엇입니까? 무리에 속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성도였습니다. 뜨거운 가슴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냉철한 머리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많이 알려고 힘써야 합니다. 공부도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한 학생이 항상 시험 점수가 엉망입니다. "공부 좀 하라!"고 했더니 "복음 전파하고 철야 기도하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만한 학생을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문제를 받아보고 아는 것이 없으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노라!(고전 2:2)"고 썼습니다. 교수님은 "잘 알았노라!"고 하며 빵점을 주었습니다.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사명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인격도 되어 있고, 태도도 되어 있고, 바른 신앙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성경 지식이 많아야 된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삶이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삶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패션으로 삼지 말고 교회생활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셋째는 주안에서 서로 교제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고 구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 35)

42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떡을 뗐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며 지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자들을 도왔습니다. 그처럼 선교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솔직히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특별히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사나?" 하고 걱정하며 미래를 대비해서 저축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남을 위해서 존재할 때 참 교회가 되고, 교인도 남을 위해서 존재할 때 참 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손을 피해 도망쳐 아둘람 굴에 숨었을 때 그에게 4백 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삼상 22:2).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입니까?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다윗 혁명 정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약해 보이는 사람을 살펴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진정 행복의 조건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빌레몬1:6)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7)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며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것이며”(사58:10)

넷째는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본문 40절에서 베드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 시민권자가 된 성도가 바로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은 잘 전하지 않고 나쁜 소식을 즐겨 전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졸다가 나쁜 소식이 들리면 눈이 번쩍 뜨이는 성도들이 많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장 16∼17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

여러분! 복음 전파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다섯째는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누구든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로 인해 힘들어 합니다.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만 없으면 살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입니다. 한나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한나에게는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한마디로 한나는 무능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한나가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후에는 아들 셋과 딸 둘을 더 낳았습니다. 무능한 여인이 유능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난 아무 것도 못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능해도 하나님께서는 유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능하신 정도가 아니라 전능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입니다. 무능한 여인 한나는 기도하다가 유능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찬송가 263장 1절 가사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우리가 참으로 힘써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에 힘써서 능력의 사람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세를 만난 우리가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힘쓰고, 주안에서 서로 교제하기를 힘쓰고, 구제하기를 힘쓰고, 복음 전파하기에 힘쓰고, 기도하기를 힘쓰므로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게 하시고,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힘쓰게 하소서. 그리고 주안에서 서로 교제하기와 구제하기를 힘쓰게 하시고, 서로 떡을 떼며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 전파하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그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기도에 힘쓰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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