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음 | 2010.11.06 00:44:0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9:1-3
설교자
한태완 목사
참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9:1-3절

 

제주도에 가면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인 ‘분재예술원’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 주석 장쩌민이 30분을 머물려고 그곳에 왔다가 1시간30분 동안 머물며 성범영 원장의 분재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중국 고위 관리들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일본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가 다녀간 흔적도 있습니다.

분재한 나무는 보통 나무보다 3∼4배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분갈이에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분갈이를 하면서 뿌리를 잘라주는 것입니다. 뿌리를 잘라주면 나무는 자기 몸의 진액을 짜내어 또 뿌리를 내립니다. 그 뿌리가 분 안에 가득 채워지는데 2년이 걸립니다. 그러면 또 인정사정 보지 않고 뿌리를 잘라줍니다.

이 뿌리를 ‘고정관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2년 정도 반복된 생활을 하다 보면 고정관념의 틀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고정관념 속에 빠져들면 새로운 것을 보거나 듣기가 힘들어집니다. 고정관념은 꼭 깨어져야 할 우리의 적입니다. 계속해서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자가 미래의 주역이 됩니다.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행크 루이세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모든 농구 코치들은 두 손으로 하는 슛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루이세티는 주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 손으로 하는 슛 동작을 개발하여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인간은 지식의 세계를 통하여 사물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비전을 품는 신앙이 곧 개혁하는 신앙입니다.

사람은 고정관념 때문에 스스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시간의 속도만큼 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지식도 순식간에 변합니다. 하물며 고정관념이야 얼마나 위험하고 고리타분한 것입니까?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평생을 그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고정관념들이 뇌간의 무한한 잠재능력들을 나오지 못하게 가두고 있습니다. 그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이 습관처럼 튀어 나오게 됩니다.

전화기의 자동 응답 ARS처럼 말입니다. 성공한 많은 위인들이 종종 언급하는 이야기 중에는 ‘벼룩이야기’ 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벼룩 두 마리가 있다. 이들을 유리컵 안에 가두어 둔다. 그러면 금새 튀어 도망을 간다. 다시 주워서 더 높은 컵에 가두어도 녀석들은 역시 단번에 뛰어 넘는다. 그런데 이번엔 유리컵에 유리뚜껑을 올려둔다. 유리로 만든 뚜껑을 모르는 벼룩들은 높이 올랐다가 머리를 맞고 떨어진다. 그러나 한동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튀어 오르다가 마침내는 포기를 한다. 그러다 한참 후에 유리뚜껑이 제거된다. 벼룩들은 여전히 튀어 오르지만, 예전에 유리 뚜껑이 있는 그 선 아래까지만 오른다. 그들이 더 높이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면서, 작은 도약에 만족하면서 감옥에 갇혀 산다.

이 실험은 처음부터 훨씬 낮은 유리컵을 사용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제 자신에게도 물어봅니다. ‘나도 한 마리의 벼룩이 아니었을까?’ 하고. 한 두 번의 작은 시도를 해보고 중단한 일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심한 ‘제3의 벼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뛰다가 실패한 두 마리의 친구벼룩을 바라본 후에, ‘그들도 안되었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하고 상상만으로 기대치를 낮추는…제3의 벼룩! 인간에게는 정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믿고 있지만, 우리 역시도 ‘안된다!’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그 잠재능력을 묶어두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첫 번째로 할 일은 정직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하려면 먼저 자신이 우물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혹시 우리는 컵 속의 벼룩처럼,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리 뚜껑에 부딪힐 것이 두려워 높이뛰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용기를 내어 컵 밖의 넓은 세상으로 박차고 나와 보지 않으시렵니까? 잠들어 있는 95%의 새로운 나에게 과감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해진다는 고정관념과 공부는 IQ에 달려 있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나의 가난과 질병 등의 고통은 운명이고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하고 실패의식 속에서 고민하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목수의 아들이 물고기를 잡는 전문가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전문성을 내려놓고 순종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겸손한 순종이 실패의 고리를 끊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편견과 오해로 형성된 사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성적 추문에 대한 세상의 야릇한 관심이 빚어낸 편견일 뿐입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극중 대표적인 아리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또 다른 한 남자로 여긴다”는 애절한 노랫말이 나옵니다. 이는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편견에 따른 것입니다. 최근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비슷합니다. 모니카 벨루치의 막달라 마리아를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과 동일시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천주교회의 전통 즉, 인간적인 전설을 따른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가 돌아온 창녀라거나 간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 결과일 뿐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이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선임 사도 정도의 위치입니다.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소리쳤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미 십자가 사건을 보고 줄행랑을 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좇아 다녔지만 십자가 곁까지 동참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행렬은 물론이고 주님 처형 이후로도 가장 오랫동안 십자가 아래서 머물렀습니다. 그랬던 막달라 마리아가 이제 부활의 첫 목격자로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남성 중심사회인 당시 막달라 마리아는 당당히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랐고 십자가 사건과 장례식,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야말로 이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만나 따라다녔습니다. 막달라란 갈릴리 호숫가의 고을이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세초 교회가 그에게 붙여준 애칭은 새겨들을 만합니다. ‘아포스톨라 아포스톨로룸’(사도들 중의 사도).

고대교회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적지 않은 여자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 루디아 뵈뵈 등. 점차 교회가 제도화되고 로마의 정치적 구조 영향을 받아가는 동안 남성 중심의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여성을 깎아내리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제도의 로마화’입니다. 이에 따라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한 창녀라는 초상화 속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많은 제도와 의식이 역할상의 차이를 넘어 성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견은 강화되고 새롭게 생성되기까지 합니다. 교회는 남녀 누구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으로 당당히 살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은 누구의 죄로 맹인이 된 것인가? 를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장애자가 된 것은 죄의 대가라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처음에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환상을 보고 비로소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맞이하게 되고, 백성들도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놀라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세례를 베풀라’ 합니다.

 

어느 날 사냥꾼이 사냥을 하다가 매의 알을 주웠습니다. 집으로 그 알을 가져와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 속에 매의 알을 함께 두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매와 병아리가 함께 부화했습니다. 암탉의 보살핌으로 아기 매는 병아리들과 즐겁게 살았습니다. 암탉도 다른 병아리들처럼 아기 매를 가르쳤고, 아기 매는 병아리와 함께 닭의 여러 가지 생존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가끔 매가 지날 때마다 아기 매는 “나도 하늘을 날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날아볼 테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암탉은 아기 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타일렀습니다. “꿈 깨라, 아가야. 넌 병아리야. 날 수가 없단 말이다.”

다른 병아리들도 덩달아 “맞아, 맞아. 우리는 병아리일 뿐이야. 저렇게 높이 나는 건 불가능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아기 매는 자신도 영원히 저렇게 높이 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기 매는 매가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나는 병아리일 뿐이야. 나는 저렇게 높이 날 수 없어.”

결국 아기 매는 죽는 날까지 한 번도 날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고정관념이라도 영향력은 실로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다보면 고정관념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주님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자신을 발견하여 고정관념을 깨십시오.

고정관념은 창의성과 개척정신을 방해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크리스천은 불신자가 지니지 못한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격조 높은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13장 58절에 보면 고향 나사렛에서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그 동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은, 예수가 메시야라고 소개받았을 때 말하기를, "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였습니다(요1:46). 이렇듯, 나사렛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은 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 ...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마 13장 54절)

" ...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아무개 아무개 아니냐 ... 그런 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마태복음 13장 55- 56절)

이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나사렛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나사렛에서는 인물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사렛 동네에서는 인물이 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습니다. 고정관념은 믿음의 적입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에 다윗은 고정관념 둘을 깨뜨렸습니다. 1) 어리니 이길 수 없다는 고정관념입니다. 2) 싸우려면 남들 다 하는 대로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이 고정관념들을 깨뜨리고 주님을 모시고 골리앗 앞에 나가 싸웠습니다. 우리도 고정관념을 버립시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합시다.

"주님, 내게 오시옵소서. 나와 함께 하시옵소서." 그러면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을 영접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고정관념을 하나 하나 내버립시다. 심령을 가난하게 마음을 청결하게 합시다. 그러면 주님이 내게 오시고 나를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십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였습니다. 나도 나의 고정관념에 붙잡혀 예수님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이요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진리이신 주님! 우리가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헛되고 어리석은 생각과 잘못된 지식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과 사랑을 오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리석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깰 수 있도록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예화: 크리스천을 향한 고정관념

 

고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이 돈독하여 늘 서로를 아끼던 세 명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교회를 가게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친구는 그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천국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

“성경에 써있어.”

“성경은 기독교인들만 믿는 거잖아!”

그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물었습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어? 내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와 별로 차이점이 없던데?”

역시 그는 이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감정만 상한 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비기독인들은 ‘기독인들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때때로 크리스천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사회 안팎에서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적인 자세를 유지하십시오.

* 기도: 주님!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 묵상: 믿지 않는 이들과 생활이 차별화 되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묵상: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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