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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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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john316.or.kr |
요한복음(93)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합니다 (요 16:1-11)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합니다 >
사춘기에 들어선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가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면서 이성의 관심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외모가 받쳐주지 않아서 이성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외모의 힘을 포기하고 싸움 기술을 길러 외모가 괜찮은 학생들을 무력으로 무릎 꿇렸습니다.
또한 그는 친구의 폭을 넓히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래 사이에서 폭넓은 친구관계도 일종의 힘이 됩니다. 특히 힘 있는 친구들의 유무에 따라 힘의 균형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도 힘 있고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친구들과의 관계는 다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점점 성숙해지면서 깨달은 사실은 ‘삶의 넓이’보다 ‘삶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삶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합니다. 성숙이란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함을 아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 말씀은 ‘넓은 삶’보다 ‘깊은 삶’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초대형 교회들이 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분립에 힘써 나서야 하는 이유도 성도들을 ‘목자의 음성과 기도소리가 닿은 보다 깊은 삶’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성령으로 다시 오신 것은 성도에게 ‘깊은 삶’을 주시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 성령의 오심이 주는 유익 >
본문 1-4절에서 주님은 먼저 성도의 고난을 언급한 후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면서 주님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떠나시면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왜 ‘성령의 오심’이 ‘주님의 현존하심’보다 더 좋을까요?
첫째, ‘주님과의 만남’의 공간적 제약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속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면 한 번에 한 장소에만 있게 되고, 그러면 주님은 지엽적이고 한 개인 혹은 한 공동체의 주님으로만 계시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으로 현존하면 각 성도에게 전적인 관심을 보이심과 동시에 세계 각 지역의 수많은 다른 성도들과도 개인적인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과의 만남’의 내면적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님이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면 깊은 심령의 만남보다는 주님과의 외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와 이해력을 통해서만 인간의 귀에 들려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으로 현존하면 성도들의 마음과 영혼에 직접 임함으로 보다 깊고 차원 높은 방식의 대화가 이뤄집니다.
특히 주님이 성령으로 오신 ‘은혜의 확장성 원리’에 담긴 실제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보의 삶입니다. 중보의 삶은 성령 충만의 가장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처럼 중보의 삶을 통해 남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해 살기를 힘쓸 때 은혜의 역사가 더욱 확장되고 기도도 더욱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지만 가룟 유다는 그 정도까지 부인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회복되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가룟 유다는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졌습니까? 많은 성경학자들은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던 주님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눅 22:31-32). 그처럼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새벽에 기도할 때 먼저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과 ‘교인들’과 ‘온라인 새벽기도 핵심 성원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가끔 저의 가족과 개인 문제를 위한 기도는 못합니다. 그러면 저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저와 저의 가족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을 위한 중보기도를 통해 내 기도까지 받으십니다.
항상 ‘나만의 특별은혜’가 아닌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우리의 보편은혜’를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더욱 넘치게 됩니다. 남의 자녀를 위해 기도했더니 내 가정과 사업의 문제가 풀리는 신기하고 역설적인 은혜를 맛보며 산다면 그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겠습니까? 항상 성령의 인도를 따라 중보의 삶이 주는 은혜와 축복을 맛보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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