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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강변에서 흘린 눈물

시편 복음............... 조회 수 3121 추천 수 0 2011.01.15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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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37: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바벨론 강변에서 흘린 눈물

 

본문: 시 137편 1- 9절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예루살렘에 가보면 ‘통곡의 벽’ 이라는 기도 장소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 통곡의 벽에는 주야로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간 결과 하나님의 징벌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본 시편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고통스러운 역사를 배경으로 지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시온' 즉 '예루살렘' 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또 그들은 고국을 잃어버린 원인이 된 우상 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깊이 회개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는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수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한테 선택을 받은 민족이었지마는 그들은 계속해서 이웃나라에게 침략을 당하고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가서 고생스러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시인은 바벨론과 에돔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원하면서 고향 예루살렘을 몹시 그리워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 라는 시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처럼 구구절절이 가슴에 닿게 묘사한 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멀리 타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습니다. 당시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꿈같은 일이었고, 월급도 장관월급보다 많았기에 16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 가서 몇 년을 일하다 보니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걸려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향수병이 심해서 정신착란증을 보인 사람들만 20여명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가졌던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을 들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을 때 고향인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셔보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마셨던 시원한 우물물의 맛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다윗의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베들레헴의 물을 가져옵니다(삼하 23장). 이렇듯 고향은 인간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멀리 떨어진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육신의 고향으로서의 예루살렘을 그리워한 것도 있겠지만, 그들은 영적인 측면에서 예루살렘을 더욱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즐거이 지냈던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이 땅을 살아갑니다(빌 3장).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본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그리움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인 그리움은 때로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어 현실적인 생활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적인 그리움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건하게 만들고 세상의 것에 미련을 갖게 하지 않아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값진 것이고, 천국을 그리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서 지어 불렀던 시가 나옵니다.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이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 손이 그 재주를 잊을 지어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치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본절은 예배 때나 종교행사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를 바벨론 사람들의 유흥이나 궤락을 돋구기 위해서 결코 부를 수 없다는 시인의 강한 신앙고수 결심의 표현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도쿠가와 바쿠후 시절에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신부들이 일본에 들어와 포교 활동을 할 무렵 규슈 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정부 당국은 기독교세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 예수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사진을 밟고 넘어가면 예수를 배신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그 사진을 밟지 못하고 모진 고문을 겪었다고 소설은 묘사합니다. 이 소설은 참 신앙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상은 교묘하게 하나님을 조소하며 모독하는 자신들의 대열에 동참하라는 유혹의 손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는 ‘그 정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목숨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공리주의를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만을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태를 잘 파악하여 현명하고 결단력 있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피맺힌 원한을 엿볼 수 있고,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절대로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민족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보세요.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기고, 사람들은 징용되어서 이름도 모르는 탄광에서 죽어 나가야 했고, 꽃다운 나이에 끌려 나가서 정신대라는 미명 아래 아직도 울부짖는 저 할머니들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시편 137편을 대할 때마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하곤 합니다. 나에게도 종종 눈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산의 유대인들이 흘리는 눈물과 내가 흘리는 눈물이 같을 수도 있고, 또 다르기도 합니다. 만약 내 눈물이 단지 나의 개인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혹시 나의 개인적인 기대와 바램과 전혀 다른 것이 주어졌을 때, 그러니까 '나'(ego)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 때 흘리는 눈물이라면 그것은 유대인들의 것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영적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슬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 포로가 되어 이방에 왔고, 그러나 귀향(歸鄕)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결국은 하나님께로 다시 올바로 설 수 있는 기회의 문은 닫히게 될 것에 대한 통곡입니다. 바사 곳곳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옵니다. 금식하며 부르짖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굵은베를 입은 채 재에 뒹굴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가장'(로쉬)은 머리로 신체의 으뜸이 되는 기관인데 '기쁨의 머리'란 기쁨 중의 으뜸이 되는 기쁨, 즉 가장 큰 기쁨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가장 큰 기쁨에 놓는다는 것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조건들 중에서 예루살렘을 통하여 얻는 기쁨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겠다는 의도를 나타냅니다. 또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는 혀를 사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겔3:26)

부연하면 자신의 고향을 기억하는 일을 중단하게 만드는 무익한 목적에 혀를 사용할 경우, 그의 혀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강도가 높은 결의적 고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조국을 사랑하는 시인의 신앙에 입각한 애국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 7- 9절은 하나님 나라의 원수에 대한 저주입니다. 여기서 바벨론뿐만 아니라 에돔을 저주한 이유는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그들이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고, 민족이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바벨론을 위해 찬양하고 노래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을 위해, 인간 우상을 위해 노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즉 바벨론은 이스라엘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신앙을 훼파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런데 한때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의 흔적은 오늘날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기초까지 헐어 무너뜨리도록 바벨론을 부추기던 에돔도 A.D. 70년 로마의 침략으로 그 민족이 사라져 버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폭력으로 득세하려는 국가나 단체나 개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말세의 징조를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3:1- 3)하였습니다. 즉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와 돈을 사랑하며... 폭력적입니다. 여기에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폭력은 반 신앙적이요, 반 하나님적인 행위입니다.

이 시는 읽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했던 처절한 상황을 마치 자기의 체험인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한데, 죄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은 우리들에게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줍니다.(사3:9, 호13:9)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우리는 현실의 아픔과 개인적인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회복시켜 줄 것을 믿고 의지하면 고통 넘어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아름답게 승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자랐습니다. 기도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찾던 어머니, 그분의 기도가 심는 것이었다면 눈물은 물을 주는 것이었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 눈물로 뿌린 기도의 씨앗이 자라 자녀들의 대(代)에서 거두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고전3:6-8).

이사야 6:13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붙잡아 주신 줄을 믿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이는 얼핏 자신의 포로 신세를 한탄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뜨거운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러한 마음을 배웁시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나라와 교회와 하나님을 더 생각하며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도록 합시다.

 

*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게 하옵소서. 이 나라의 기초가 그리스도가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평화와 사랑이 풍성한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바벨론 강가에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기억하고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곤란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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