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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말라

시편 복음............... 조회 수 2296 추천 수 0 2011.02.11 17:44:00
.........
성경본문 : 시23: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절망하지 말라

 

본문: 시편23편 1- 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0.000명이 수용되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8.000명의 포로가 죽었는데 그 사인이 영양실조나, 질병이나, 과로가 아니라 오히려 <절망>때문이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린은 유태인이었는데, 2차 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난 후 자신의 저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치 수용소의 잔혹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는 나치의 끔찍한 고문에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무서운 시대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수용소에서 나가 내가 붙잡은 이 삶의 희망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겠다.’

그는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결국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위대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나치독일의 포로 수용소에 600만 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되었을 때, 그들이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 벽에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삭여져 있었습니다.

1) 비록 태양이 우리에게 비쳐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2)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3) 비록 하나님이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본문 4절 말씀을 다시 봉독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참 목자이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양인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될 때 모든 두려움에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로 인해 다툼과 알력이 생길 때도 목자 되시는 주님이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배고픔의 공포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영혼이 자빠져서 도저히 나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이 발버둥질 치다가 맥이 빠지고 지쳐서 죽을 수밖에 없을 때 목자 되신 주님께서는 능력의 팔로 붙드셔서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를 현대어로 사용하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목자 시라면 부족함이 없이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잔잔한 시냇가에서 쉴 수 있고,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될까요? 이것도 양을 직접 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양은 목장에서 목자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습니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철에는 목자의 치밀한 간수가 필요합니다. 양은 털이 긴 짐승이기 때문에 보통 해발 300m 쯤 되는데서 키우는데 여름이 되면 털이 긴 짐승인 양은 체질이 약해지기 쉽고, 여러 가지 해충에 시달리게 되고 병들기 쉽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들을 이끌고 고지를 향해 올라갑니다. 그런데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얼마나 위험하지 모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한 양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어떤 환경에 처할지라도, 절대로 양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양들이 살아가는데는 선한 목자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자기가 직접 목자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어쩌면 그렇게 실감 있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을 몰로 산악지방으로 가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떼를 데리고 여름 목장이 있는 높은 산으로 자꾸만 올라갔습니다. 다윗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아무리 험한 길이지만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범람하는 냇물과 산사태, 독이 있는 풀들과 맹수들,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 깜짝 놀라게 하는 뇌성 벽력 속에서도 익숙하게 길을 인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어떤 악 조건에 처하든지, 내가 어떤 시련을 당하던지, 내가 어떤 곤경에 빠지던지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함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와 하나님과 좀 더 가까운 생활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높은 곳 여름목장에 올라가는 길이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은 양들이 산간 목장을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골짜기를 통해 걸아 올라가야만 합니다. 모든 산에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어떤 골짜기는 깎아 세운 것처럼 가파른 협곡입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디면 몇 십 미터가 되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위험스러운 길목도 있습니다. 그런데 산악지방에 익숙한 목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양떼를 이끌고 어두운 골짜기 옆으로 꼬불꼬불 이어져 있는 작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끈기 있게 올라갑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라는 이 말씀은 역사를 통해서 문자그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의 죽음이란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더 높은 생의 차원에 들어가는 입문에 불과 한 것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영원한 낙원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골짜기의 입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두려워 할 일이 아니라 좀더 환전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보아도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 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 무섭고 어두운 골짜기를 잘 통과했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7살 소년 때부터 예기치도 못했던 어려움의 골짜기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고, 억울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면서도 늠름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13년간이나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고 시련의 골짜기를 묵묵히 걸었더니 종래는 광명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은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통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에 던졌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던지기는 세 사람을 던졌는데 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녔지만 머리털 하나 거슬리지 않고, 옷에 탄 냄새조차도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원수 갚는 것이 두려워 요셉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하셨으니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요셉이 그 말을 전해 듣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형들이 와서 용서를 청할 때 요셉이 한 말을 기억하시지요?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데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가 점을 쳐서 수입은 있으나 그 심령에 평안이 없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점치는 여인의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의 경우 귀신이 나가서 평안한 것은 좋은데 점을 칠 수 없이 되고 점을 칠 수 없으니까 수입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수입을 챙기고 있던 주인이 시 당국에 고발을 해서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고랑에 채워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 편에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성경에 보면 밤중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기고, 고랑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을 지키던 사람이 자다가 개어보니 이런 광경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간줄 생각하고 책임지고 자살하려는 것을 불렀습니다. 간수는 무서워 떨며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때 바울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제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날 밤 그와 그 가정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 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기 '항상'이란 말씀에 뜻이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건강해도 병들어도, 성공해도 실패해도, 젊어서도 늙어서도, 살아있을 때도 죽을 때도 항상 함께 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아무리 어렵고 힘에 겨운 일이 있어도 그것이 막다른 골목은 아닙니다. 우리의 앞날에는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들이 있습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실망과 낙심, 좌절과 미궁에 빠지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습니까? 이렇게 기도하세요. "아버지, 정말 저로서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이 저의 심령을 더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시는 과정으로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어두운 날에 이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바로 그곳에 나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이 내게서 떠나고 주님의 도우심과 사랑을 맛보면서 믿음을 통해 오는 마음의 평온한 안정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친히 관리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확신에 도달하려면 모든 역경을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야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더 많은 인내와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며 우리들의 생활을 더욱 활기 있게 할 수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고 갑니까? 골짜기에 신선하고 맑은 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그때그때 마실 물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원기가 회복되고 생수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역경과 고통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비로소 주님께서 우리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의 갈 하고 지친 심령이 원기를 회복하게 될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히 받고 사단에게 자랑 할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단이 시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단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 다 없어지고, 훌륭한 자녀 10남매가 몰살하고, 심지어 몸에 창질이 생겨 알아볼 수 없게까지 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생수를 마시고, 새 힘을 얻고, 용기와 위로를 얻어 더 힘차게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의 결론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신비입니다.

리빙스턴이 어느 날 숲 속을 걷다가 사자의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채 겨우 구조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한 후,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가장 보람 있는 일에 내 생명을 바치겠다." 그는 아프리카로 들어가서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리빙스턴은 고난을 당하여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큰 일을 해냈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어느 날 밤, 길 위에 늘어진 커다란 뱀을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을 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뱀이 있던 곳에 가보았더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썩은 새끼줄이었습니다. 썩은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해 크게 놀랐던 것입니다. 인간의 실패와 비극은 보통 막연하고 불확실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위기를 극복한 사람은 한결 보람 있는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절망'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에게는 '큰 뱀'도 '썩은 새끼줄'로 비쳐집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 너무도 잘 알려진 말이지만 누구나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실과 절망의 상태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꿈과 희망의 사과나무를 심으면, 새싹이 돋아나고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그 열매를 얻게 됩니다.

잭 캔필드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이 있습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 보면 서로 친한 친구사이인 암전문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간단한 대화 한 토막이 실려 있습니다.

한 의사가 자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돼. 자네나 나나 전이성 암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만큼 똑같은 스케줄에 따라 똑같은 용도로 처방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22%밖에 성공하지 못하고 자네는 74%나 성공을 하지? 같은 전이성 암을 치료하는데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야. 자네,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

그러자 그의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자네나 나나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만큼 처방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전이성 암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은 에토호사이드(Etoposide), 플라티눔(Platinum), 온코빈(Oncovin), 하이드록쉬리아(Hydoxyurea), 이 네 가지 뿐이야. 나도 자네가 처방하는 그대로 환자에게 처방하고, 똑같은 약을 주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아마 틀림없이 그 약을 줄 때 환자에게 '이 약은 어제도 먹은 에푸(EPOH)라는 약입니다.'라고 말할 거야" 그가 그 약을 에포(EPOH)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네 가지 약 이름의 첫 자를 따면 'EPOH'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아마도 자네는 이 에포(EPOH)를 열심히 드시라고 말하며 약을 줄 거야. 하지만 나는 통계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별로 많지 않은 환자들이지만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바꾸어서 약을 주네. '여기 당신의 호프(HOPE)가 있습니다. 이 약을 열심히 먹으세요. 그러면 당신도 희망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것이라고는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은 희망이 없이 약을 처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희망을 주면서 약을 처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판이하게 나타났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처방 할 때는 10명중에 7명이 죽어 나갔는데 비해 똑같은 처방을 하는 데도 희망을 주었을 때는 10명중에 7명이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갖느냐 버리느냐 하는 것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절망의 모퉁이는 소망의 길로 통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왜냐하면 절망의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셔서 결국에는 소망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불가사의한 분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괴로워 할 때는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맬 때에도 침묵을 지키십니다. 그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지 주님이 우리를 내어버리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힘이 탈진하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이르게 되면 우리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우리를 소생시키는 어떤 동기를 심어 주십니다. 바로 이 순간이 절망이 찬송으로 바뀌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 남단에 희망봉이 있습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르뮤 디아스인데, 그는 1488년 그곳을 발견하고는 이름을 '폭풍의 곶'이라고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심한 폭풍을 만나 위험한 지경에 빠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 해 후인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르투갈 왕 조앙 2세의 명을 받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폭풍의 곶을 돌아 마침내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자 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희망의 곶'이라는 새 이름을 내렸습니다. '폭풍'에서 '희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무슨 일이건 그 일 자체에 희망과 절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위기가 닥치거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희망 쪽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자세에 따라 절망도 희망이 됩니다.

캄캄한 밤에는 내 몸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늘의 별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 갈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질 때 우리는 눈을 들어 우리의 선한 목자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

왜 우리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하십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이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물은 골짜기를 통해서 흐르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도 하나님의 생명은 고통스러운 경험의 골짜기를 통해서 축복의 강물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이끌고 골자기로 가는 이유는 골짜기에 아주 좋은 목초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짜기를 지내는 동안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골짜기를 걷는 동안 목자를 더 의지하게 되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면서 그 골짜기에 싱싱하게 자란 아무런 공해도 없는 풀을 뜯어먹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폭풍우가 생길는지 모릅니다. 맹수가 우리를 공격할는지 모릅니다. 빗물이 범람해서 우리를 떠내려가게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바로 거기에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사실을 과거의 경험으로 믿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며 이웃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모양은 다르나 누구에게나 인생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골짜기를 걸어가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이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니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 1:8)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 기도: 소망의 하나님, 저희들이 어떤 고난과 문제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사방이 막혔을 때 하늘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하는 저를 긍휼히 여기사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답을 주시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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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4 사무엘상 교회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 삼상15:10-16  하원양 목사  2011-02-13 2029
4733 요한일서 사랑을 알면 목숨을 내놓는다 요일3:16  강종수 목사  2011-02-13 2221
4732 시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23:1-6  한태완 목사  2011-02-13 2401
4731 시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시25:1-22  한태완 목사  2011-02-13 4864
4730 시편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시24:1-10  한태완 목사  2011-02-12 5038
4729 시편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이시니 시28:1-9  한태완 목사  2011-02-12 5414
» 시편 절망하지 말라 시23:1-6  한태완 목사  2011-02-11 2296
4727 시편 감사와 기쁨과 찬송 시100:1-5  한태완 목사  2011-02-11 3089
4726 베드로후 비만과 다이어트 벧후1:5-7  한태완 목사  2011-02-10 3851
4725 시편 고난과 승리 시22:1-31  한태완 목사  2011-02-10 3743
4724 시편 승리 주심을 감사 시21:1-13  한태완 목사  2011-02-09 2111
4723 에배소서 좋은 인간관계 엡2:1-10  조용기 목사  2011-02-08 2274
4722 히브리서 꿈, 희망, 용기를 갖고 살아라 히11:1-6  조용기 목사  2011-02-08 2174
4721 마가복음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12-14  조용기 목사  2011-02-08 2473
4720 히브리서 네 믿은 대로 된다 히11:1-3  조용기 목사  2011-02-08 2461
4719 시편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 시20:1-9  한태완 목사  2011-02-08 2317
4718 시편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 시19:1-14  한태완 목사  2011-02-07 2333
4717 시편 구원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시18:1-50  한태완 목사  2011-02-07 2673
4716 시편 주의 구원과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 시17:1-15  한태완 목사  2011-02-07 2711
4715 요한복음 영적으로 기쁨이 충만하자 요15:10-11  강종수 목사  2011-02-06 2087
4714 시편 존귀한 자의 고백 시16:1-11  한태완 목사  2011-02-05 3123
4713 로마서 조화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롬5:1-11  김삼환 목사  2011-02-05 2281
4712 사무엘하 배은망덕 삼하20:1-22  한태완 목사  2011-02-05 1944
4711 사도행전 되게 하는 사람 행9:23-30  서문수 목사  2011-02-05 2298
4710 히브리서 믿음과 의심 히11:1∼6  한태완 목사  2011-02-05 2498
4709 시편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시15:1-5  한태완 목사  2011-02-05 3123
4708 시편 무신론자의 어리석음과 악행 시14:1-7  한태완 목사  2011-02-05 2055
4707 욥기 두 손에 꼭 쥔 것. 욥23:10-14  하원양 목사  2011-02-04 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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