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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924 추천 수 0 2011.03.09 12: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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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5:27-32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누가복음 5:27-32)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

 저는 가끔 미국 설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습니다. 지난 1월 2일에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분이 요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님이니까 사방에서 수많은 전화가 옵니다. 너무 바쁘니까 대부분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데 오직 두 명의 전화만은 아무리 일정이 바쁘고 심지어는 회의 중에도 모든 일을 멈추고 받습니다. 그 두 명의 전화는 자신의 아들과 딸로부터 온 전화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 우주를 다스리는 크고 바쁘신 하나님이지만 사랑하는 자녀가 기도로 전화하면 꼭 받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그처럼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직통으로 연결된 핫라인이 있습니다. 그때는 중개인이나 교환원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기도’는 주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없는 삶만큼 손실이 되는 삶은 없습니다. 성도가 기도로 하나님께 전화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그 전화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그 사랑이 있어야 우리도 행복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1980년대 초 대학 3학년부터 유학을 준비하면서 무섭게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토플 점수는 높아도 영어실력 자체는 탁월해지지 않았고 미국에 유학 중에도 영어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원서를 봐도 막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귀국해서 신학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네트영어를 개발했습니다. 그때부터 “영어공부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36세 이전에 네트영어 없이 죽도록 영어를 공부할 때보다 36세 이후에 영어를 쉬엄쉬엄 대하면서도 네트영어로 인해 영어 실력이 훨씬 진보했습니다. 그처럼 네트영어와 기존 영어의 공부 방법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절실히 체험해서 그 유용성과 탁월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특별히 저의 두 딸이 네트영어의 탁월성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탁월성을 깨닫지 못하고 가볍게 받아들이면 너무 안타깝고 속이 탑니다.

 이제 2019년에는 약 5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네트영어 사전이 나옵니다. 현재까지 약 28%를 네트영어로 정리했습니다. 이제까지 정리한 것을 누군가 10억을 준다고 해도 절대 팔지 않습니다. 20억, 30억, 40억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습니다. 50억 이상을 준다고 하면 마음이 흔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처럼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아직은 절대 공개할 수 없는 자료를 지구상에서 오직 두 명에게만은 무상으로 줍니다. 바로 저의 두 딸입니다.

 며칠 전에는 그 자료를 두 딸이 참고하라고 컴퓨터에 깔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그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면 얼마나 마음이 타는지 그때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최고의 것을 주려고 하는데 자녀들이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면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자녀를 통해 이뤄지기를 원하는 어떤 바람과 기대가 있는데 그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

 며칠 전 저희 교회 근처의 한 초대형교회 목회자가 추문에 휘말려 결국 교회를 사임했습니다. 추문의 내용은 그 목회자가 한 여성도와 가깝게 지내고 그에게 지급된 1년간의 총 지급액이 6억 원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 유학 중인 3자녀들은 한국에 오고갈 때 교회 돈으로 보통 비행기 요금의 3배인 비행기 1등석을 타고 다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인의 정서와는 한참 거리가 먼 얘기들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목회자들조차 “그 추문이 사실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의 벌어짐에는 초대형교회로 우르르 몰려간 성도의 책임도 큽니다. 성도의 소중한 십일조가 어떤 목회자에게는 ‘절실한 헌금’이 되지만 어떤 목회자에게는 ‘사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유행의 바람’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바람’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바라고 기뻐하실까요?

1.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

 주님은 다수의 무리에 관심이 없고 소수의 제자 삼는 일을 중시했습니다. 본문에는 주님이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레위는 마태복음을 쓴 마태의 다른 이름입니다. 당시에 세리는 세금을 걷어 로마에 바치는 관원이었기에 유대인들은 세리를 동족을 착취하는 반역자요 죄인의 대명사로 여겼습니다. 성경을 보면 죄인을 지칭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직업이 ‘세리와 창기’입니다.

 그런 세리 레위를 예수님은 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면 레위가 지나가시던 주님을 보고 먼저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운명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 부르심은 레위를 전혀 다른 새 삶으로 인도했습니다. 만일 그 부르심이 없었다면 레위는 영원히 욕을 먹고 버림받은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상 우리도 세리 레위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 부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처럼 주님은 종종 부족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왜 주님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부족한 사람을 부르실까요?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처럼 이유를 몰라도 영접과 헌신과 주일성수와 선교와 봉사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때 그 인생은 축복으로의 대 변환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2. 포기할 줄 아는 사람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레위는 본문 28절을 보면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때 레위는 재산, 세상적인 인맥, 그리고 세리란 직책을 다 버렸습니다.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당시 세리는 비록 욕을 먹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포기하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기에 레위에게는 굳은 각오와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이 순종해서 무엇인가를 버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손해보다 더 큰 유익을 주십니다.

 또한 레위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곧 다른 세리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벌여 그들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29절). 그처럼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레위는 나중에 마태 사도가 됩니다. 레위는 본명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의 마태는 사도명입니다. 그는 무명의 세리였지만 누구보다 유명한 사도가 되었고 그의 책은 신약성경의 맨 앞을 장식하는 마태복음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신앙생활에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를 깨닫습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3.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처럼 구원의 기쁨을 넘치는 잔칫상에 갑자기 재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가 베푼 잔치에 참석한 것을 보고 말합니다. 본문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좋은 것을 나쁘게 보면서 판단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복이 없는 모습입니까?

 가끔 보면 하나님의 뜻은 살피지 않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라고 남을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질책한 제일 이유는 그들의 형식주의가 아니라 형식주의를 앞세워 남을 판단하고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적인 편견과 판단을 버리고 항상 겸손한 신앙으로 찬송가 가사처럼 “내가 공을 세우나 은혜 갚지 못하네.”란 자세로 서십시오.

4. 세상 속에 들어가는 사람

 로마의 부역자로 낙인찍힌 세리들과 어울리는 주님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당신 스승은 왜 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본문 31-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주님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주눅 들어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벗이 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상처입고 오그라든 마음에 하늘의 숨결을 불어넣어 힘든 사람들이 삶을 경축하며 살게 하는 것이 주님의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엄격한 종교인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어울리셨습니다. 그처럼 낮은 자와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높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한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시골 목회를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 가서 얼마 후에 양복을 벗고 수수한 평상복에 털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처음 부임할 때 양복을 입고 다녔는데 마을에서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자기 혼자였습니다. 그런 모습으로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함을 깨닫고 어느 날부터 양복과 구두를 벗어던진 것입니다. 같아짐이 없으면 이해함은 불가능하고, 마음과 영혼을 얻는 일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또한 주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한 것은 서로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또한 죄인의 세상을 피하지 말고 죄인의 세상에 들어가서 죄인을 이끌어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된 영성의 의미를 잘 알려줍니다.

< 건강한 기독교 영성 >

 요새 많은 성도들이 영성을 오해합니다. 영성이란 좋은 이상을 내면화시켜 그 이상을 따라 사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영성에는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는 ‘거룩한 이상’이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이상대로 살려는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 하고, 셋째, 그 이상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엄격한 자기훈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건강한 영성이란 어떤 영성을 말할까요?

1) 평화의 영성

 오늘날 많은 상처는 가족에게서 비롯됩니다. 왜 가족이 서로 상처를 줍니까?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해도 너무 고뇌하지 마십시오. 사실 가족이 남보다 더 상처를 주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그를 안 만나면 되지만 가족은 계속 같이 있으면서 사랑을 나누려는 기대치가 높기에 상처당할 확률도 자연히 커집니다. 그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가족들로부터 받는 상처로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가족관계란 한 몸 관계이기에 자신이 상처받으면 상대도 반드시 상처받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상대를 긍휼히 여기고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씀과 성령으로 그 상처를 극복하십시오. 상처 극복은 쉽지 않지만 극복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준비됩니다. 반면에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 마음의 상처가 육신의 병으로 발전되고 그 외에 수많은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잘 극복하고 이웃에게 평화를 전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십시오.

2) 참여의 영성

 본문에서 주님이 “내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말씀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한 세상을 외면하고 버리는 것은 영성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속세를 떠나 수도하는 종교가 아니고 세상에 참여해 함께 고뇌하는 종교입니다.

 이제 산속의 기도원에 가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세상에서 빛을 발하십시오. 성과 속을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영성을 가지면 분리하는 삶이 영성인 줄 알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습성이 생기게 되고 특별한 신앙행위를 해야 신령한 줄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만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모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분별은 좋은 것이지만 분리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명예욕을 버리고 작고 비천한 일에도 기꺼이 참여하려는 참여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진짜 신령한 사람입니다.
 
3) 가정의 영성

 가정은 진리의 보화가 무진장 숨겨진 곳입니다. 세상적인 영성은 가족을 버리고 출가해서 산에서 수도할 때 이뤄진다고 오해하지만 가정을 떠난 영성은 참된 기독교의 영성이 아닙니다. 가정은 영성을 훈련하는 최고 도장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선한 열매를 맺고 가족들이 인정해주는 영성이 건강한 영성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신부님들은 가정을 이루지 않습니다. 언뜻 보면 그것이 거룩하고 고상하게 보이지만 혼자 살면 부부간의 고뇌도 모르고 자녀를 키우며 씨름하는 고뇌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가톨릭교인은 신부님이 자기 가정문제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너무 원론적인 말씀만 해서 속상하다고 말합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독신을 더 경건하게 보는 시각은 버리십시오.

 최고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자기중심주의가 확대된 개 교회 중심주의와 지나친 교파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특히 경건과 영성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경건과 영성을 자랑하면 그것이 반드시 공동체 분열의 씨앗이 됩니다. 기독교의 가장 소중한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임을 잊지 말고 항상 보다 큰 공동체를 생각하고 남을 앞세워 주십시오. 그때 그 인생이 작품 인생이 될 것입니다.

<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

 지금 한국 교회가 병든 부분이 많습니다. 1970-80년대에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는 좋은 장소에 천막만 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때는 새벽기도 인원도 많았고 기도원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사람들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야 하는데 교회가 겸손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행의 바람’을 따라 살지 않고 ‘주님의 바람’을 따라 사는 건강한 영성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들어가서 거룩한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연약한 우리들에게도 큰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그 주님의 기대를 생각하며 살면 자신의 기대를 초월한 멋진 삶이 펼쳐집니다.

 한 고대 현자의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이제 당신의 사역을 다 끝내셨군요. 당신이 가르친 진리를 세상에 잘 전파하기 위해 이제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예수님이 대답했습니다. “걱정 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몇 명의 어부들과 세리 등을 세워놓고 왔네.”

 가브리엘이 말했습니다. “저도 그들을 잘 압니다. 그런데 다른 계획은 없나요?” 예수님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천국과 믿음에 대해 가르치고 왔네.” 예수님의 똑같은 말을 하자 가브리엘이 또 말했습니다. “주님! 지금은 모든 것이 잘 진행되는 것 같지만 이제까지 주님이 하신 일이 헛되지 않도록 하려면 다른 계획도 세우셔야지요.” 그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했습니다. “다른 계획은 없네. 나는 제자들을 믿네.”

 주님은 제자들을 믿어주시고, 우리도 믿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십시오. 세상으로 들어갈 때는 건강한 모습을 가지고 들어가십시오. 미신과 기복주의를 버리고, 이기주의와 극단주의를 버리고, 외형주의와 과시주의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랑과 용서와 나눔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성도의 진수를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生命)’이란 ‘명령(命令)을 기다리는 생물’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가장 사람답게 됩니다. 공자는 나이 오십을 ‘하늘의 명령을 인식한 존재’란 뜻으로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소명은 사람을 평안하게 만듭니다. 이제 무엇이 되려고 안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십시오. 자신의 모습이 부족해도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부족한 자신을 통해 멋진 일을 이뤄 가십니다. 서양 사람들이 천 조각으로 멋진 퀼트 제품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통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이 그저 사명을 따라 충성할 뿐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선교와 분립교회의 모델이 되고,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면 그 축복을 멋지게 사용하는 모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부터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과 선교사님을 위해 호주머니를 비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고 그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우리 앞에도 영광의 길이 펼쳐지고 영향력도 확대되는 복된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며칠 전 분당 제 1호 교회라는 그 초대형교회 목회자가 돈과 여자 문제로 결국 교회를 사임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의 외형적 추구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습니다. 그 사실을 목회자도 알고 성도도 알아서 초대형교회로 바람처럼 몰아가고 쓸려가는 흐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봐야 합니다.

 그 동안 그 목회자가 전도인지 전투인지 얼마나 전도를 시켰습니까? 그 교회는 인간중심보다는 과업중심의 목회로 부목사가 1년 365일 중에 새벽기도를 하루 빠졌다고 해임하니까 2년 이상 버티는 부목사가 거의 없는 교회로 목회자 세계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또한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확신이 없었으면 ‘사례’의 수준을 벗어난 그런 거액을 챙깁니까? ‘사명’으로 포장된 지나친 ‘욕심’이 지금 한국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사명이 진짜 사명으로 판명되려면 ‘선교와 나눔과 교회분립’은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제 열심히 사십시오.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성공하시고 사업에도 성공하십시오. 특히 남을 돕고 선교하는 일에는 가장 최고로 성공하십시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뤄지는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을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그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줌으로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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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2 요한복음 너희를 보내노라 ..... 요20:19-23  이정원 목사  2011-03-07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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