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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사랑하는 회원님들, 평안하시지요?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글로써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삶에 많은 귀한 선물이 되고 있어요. 새삼 감사를 드리고 사랑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을 모두 사랑합니다.
오랜 만에 간단하게 메시지를 하나 전할까 해요. 그것은 치유에 대한 것이죠. 회복과 치유.. 제가 참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이 세상에는 많은 증상들이 있어요. 원하지 않지만 겪고 있는 많은 상태가 있죠. 싫어하는 데, 벗어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그러한 것들을 누구나 한 두 가지 씩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한 증상들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증상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겠죠? 만약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다면 사람들은 증상에서 벗어나게 될 거에요. 하지만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지 않은, 근원적인 것이 아닌 표피적인 것이라면 자유함을 별로 누릴 수 없을 거에요.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탐식에 대한 것이에요. 과식.. 탐식..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데, 자기가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것.. 오늘날 그러한 문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심각해져서 많은 분들이 그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탐식은 흔히 비만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오죠. 음식 먹기를 좋아하는 데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다보면 비만의 문제가 따라오게 되어요.
왜 탐식은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비만은 오는 것일까요? 왜 많이 먹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일까요?
어떤 질병이나 증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누구나 다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잘못된 지식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책도 보고, 여기저기서 관련 자료도 많이 찾고 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죠. 탐식이나 비만의 문제에도 많이 알려진 상식이나 이론이 있어요.
유익하고 좋은 것들도 있고 더러 왜곡된 지식도 있을 거에요. 각 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겠고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겠죠.
저는 그런 계통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외적인 측면보다 내면적인, 영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조금 생각해보고 싶어요. 일반인들, 불신자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주님을 갈망하는 신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다 그렇지만 탐식, 비만.. 그것도 역시 문제의 근원은 그 영혼, 그의 심장에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 사람의 심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이죠. 심장에 기쁨과 만족이 없는 것이에요. 심장에 슬픔.. 고통.. 외로움이 가득한 상태에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비만은 곧 슬픔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애정결핍이고 사랑의 결핍이에요. 본인이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탐식의 증상을 가진 사람은 그 안에 슬픔이 있어요. 고통이 있어요. 속에서 자기 영혼이 울고 있어요.
그 슬픔은 채워지지 않는 가슴, 채워지지 않는 애정에 대한 슬픔이고 굶주림이에요. 끝없는 허전함이에요.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 가슴을 채워줄 대상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죠. 애인이나 배우자나 부모나.. 어떤 대상이 자기를 채워줄 것이라고 여기고 찾아요. 그러므로 그 가슴의 슬픔이 사라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공간은 오직 주님이 채우실 수 있기 때문이죠. 주님의 임재, 주님의 말씀만이 그 심장을 가득 채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모르니까 이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며 슬퍼해요.
이것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우자에게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일생을 분노로 살지요. 그들은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사람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의 가슴을 채울 분은 오직 한분이에요. 다른 이로 채우려고 하면, 이상형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과는 좀 더 빨리 비참해지는 것이죠.
탐식의 사람들, 비만의 사람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고 애정 용량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마음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죠. 속이 아주 여리고 상처를 잘 받아요.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은 강퍅한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러나 이 사람들은 마음이 아름답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고 애정이 많아요. 용량이 많아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이든 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이들에게 작은 돌봄이나 선물을 받으면 감격해요.
그런데 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속이 기대만큼 채워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외모로 판단하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아프고 상처받고 외롭고 슬퍼져요. 그래서 속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속에 직면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도피하려고 해요. 그 도피중의 하나가 먹는 것이죠.
위장이 가득 채워지게 되면 심장의 허전하고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감각을 잊어버릴 수 있어요. 위장이 가득 채워질수록 심장의 감각이 죽어버리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할 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것이 영적인 자살 행위인 줄을 모르구요..
아니 알지도 모르죠. 어느 정도는 알 거에요. 이렇게 먹는 것이 자기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는 안 먹겠다고 다짐을 하지요. 먹고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온갖 결심을 하죠.. 그리고 다시 실패하고 울고 싶고.. 그렇게 비참한 반복을 되풀이하죠.
TV나 기사에서 읽은 사람들의 성공담을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어요. 그러다가 다시 실패하고 포기하다가.. 그런 식의 비극적인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인생을 보내요. 참 허무하죠. 본질적인 싸움이 아니라 표피적인 소모적인 전쟁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는 것은요.. 본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결단하고 노력해도 그것은 결실을 맺기 어려워요.
심장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하다면, 사람은 결코 다른 군것질을 하지 않아요. 속이 충만한 사람들은 사랑에 집착하지 않아요. 취미에 빠지고 쇼핑에 빠지고 영상문화에 빠지지 않아요. 그것들은 다 속이 비어있는 것에서 나오는 증상이에요.
탐식하는 사람들의 속은 외로움과 슬픔으로 가득해요. 비어있어요. 허전하고 허무해요. 혼자가 싫어요. 고요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요. 그러면 속의 허전함과 외로움, 비참한 상태에 직면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TV를 보던지 인터넷을 여행하든지.. 자신을 잊고 싶어 해요.
분명히 이해해야 해요. 억지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다른 곳으로 도피하는 것은 더 심각한 것이에요. 그것도 역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죠.
비만과 탐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성공적인 열매를 맺는 이들은 드물죠.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식욕이 더 많이 일어나죠. 그것을 참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자기 안에 많이 먹고 싶은 프로그램이 이미 입력되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고 계속 한 없이 클릭만 하면 프로그램이 사라질까요? 제어판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계속 삭제를 누르면 바이러스가 사라질까요?
아니죠. 프로그램을 삭제하려면 근원으로 들어가야 해요. 왜 이 증상이 왔는지, 그 근원에 대해서 알고 들어가야 해요.
그렇지 않고 억지로, 의지로 프로그램을 거스르면 고통이 와요. 프로그램을 바꾸지 않고, 굳건하게 잠겨있는 철문을 열쇠 없이 계속 주먹으로 두드리고 머리로 들이받으면서 철문을 열려고 하는 것은 몸만 상하게 할 뿐이죠. 억지로 하는 모든 것이 영을 병들게 해요. 영의 역사는 아름답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온 몸에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하고 운동장을 빠르게 걷는 이들을 많이 보았어요. 자전거 타기 운동기구를 미친 듯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이며 타고 있는 이를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참 고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무거운 돌멩이를 지고 끝없이 산꼭대기에 올라가고.. 그리고 잠시의 휴식 후에는 다시금 돌을 지고 올라가는 고생의 무한 반복.. 참 비참한 일이죠.
만약에 운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면 그것은 좋아요.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요.
운동을 하고 싶으면 주님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해요. 걸으면서 발바닥에 닿는 감촉을 기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강과 힘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코에 닿는 바람과 그 기운을 기뻐하고 즐기며.. 눈에 보여지는 경치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어놓으면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찬양하고.. 같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웃으면서 사랑의 미소를 보내고.. 즐기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요.
하지만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가져오죠. 고양이가 고양이를 낳듯이 억지로 고통스럽게 시도하는 하나의 행위는 또 다른 고통의 문제, 고통의 행위를 끌어당기게 돼요.
고통스럽게 공부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그것이 외적으로는 성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고통의 과정에서 내면과 심장을 많이 파괴하기 때문에 나중에 더 심한 고통, 비극적인 증상들을 끌어당기게 되어요.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미래의 고통이 쌓여있어요.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누리는 것을 어릴 적부터 배우지 않으면 그 인생의 미래는 피곤하게 되어요. 그런데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하고 있는 짓은 서로 무한 경쟁을 시켜서 아이의 심장을 죽이고 억압해서 미래를 파괴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죠. 참 비극적인 일이에요. 그러한 흐름에 부모들까지 동조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그저 불쌍할 뿐이죠.
운동을 해서 몸매를 바꾸려는 것은 근원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살이 찌고 비만이 되는 것은 운동 부족이 원인이 아니고 많이 먹기 때문이에요. 지나친 식욕이 근원 문제에요. 지금 눈에 보이는 살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속에 가득한 탐식, 식욕을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죠. 아무리 살을 억지로 처리해도 식욕이 처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살은 또 생기니까요.
그런데 운동을 많이 하면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것 같아요? 아니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면도를 하면 털이 완전 소멸되겠어요? 아니면 속에서 또 나오겠어요? 물으나 마나죠.
천정이 새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으면 천정의 구멍난 부분을 수리해야 하는데, 떨어지는 빗방울을 걸레로 한 없이 닦고 있으면 언젠가는 천정의 구멍이 막힐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죠.
그렇지 않아도 식욕이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해서 식욕을 더 많이 일으켜놓고 먹지 않고 참으며 초인적으로 인내해서 버틴다는 것.. 참 피곤한 방식이죠. 그렇게 해서 성공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억지로 견디는 것은 또 다른 증상을 가져오게 되어요. 또 다른 형태의 탐닉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것은 몸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떨어지는 빗방울을 계속 닦았더니 이 쪽은 깨끗해졌는데 이번에는 다른 쪽에 떨어지는 것이죠. 그러니 근본적으로 구멍을 막아야 해요.
비만의 원인이 운동부족과 많이 먹는 것이라면 좀 더 근원에 가까운 원인은 운동부족이 아니고 많이 먹는 거에요.
인간의 모든 문제는 먹는 데서 시작되었어요.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먹는 문제 때문이지 운동부족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에요.
인간은 생명나무를 먹지 않고 선악과를 먹었어요. 주님을 먹지 않고 세상을 먹었어요. 심장에 주님을 채우지 않고 인간으로 채우고 세상으로 채웠어요. 그러므로 먹는 것,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운동, 움직임은 열매이고 결과입니다. 먹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지 화장실에 먼저 가니까 나중에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과 회복의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금식으로부터 시작하셨지 조깅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셨어요. 문제가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먹는 문제의 처리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어요. 문제는 식탐이지 운동부족이 아니에요.
운동에 대해서, 먹는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요. 하지만 자세하게 이야기하려면 책 한권이 필요하겠죠. 그러니 여기서는 근원적인 이야기만 간단하게 터치하고 싶어요. 그것은 비만의 문제, 탐식의 근본 원인은 심령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며 심장의 슬픔, 고통이라는 것이에요.
내 심장, 내 영혼을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데서 이 문제의 해결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어요. 꾸짖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게을러서 안 움직이지, 의지가 약하니까 그렇지.. 이런 식으로 꾸짖는 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남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본인 스스로도 그런 식으로 자기 정죄에 빠지는 이들이 많아요. 그건 참 곤란한 일이죠.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사람을 비난하면 그 사람이 죄에서 해방될까요? 오늘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무섭게 꾸짖고 경고하면 그들이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습관적인 죄에 빠진 사람들을 엄히 꾸짖고 심판이 두렵지 않느냐고 겁을 주면 그들이 해방될까요? 병든 사람을 채찍으로 때리면 그는 뛰어 일어나 걸을까요? 배고픈 사람을 때리면 배불러 지나요?
잠시 억지로 회복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요. 형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놀라서 일어날 수도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러한 식의 해결책은 오래 가지 않아요. 잠시 긴장해서 죄를 누를 수는 있지만 계속 긴장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그들은 곧 다시 죄에 빠지게 되어요.
그러므로 억지로 죄를 누르지 말고 근원의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해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해야 해요. 어디서 죄가 시작되고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고.. 그런 식으로 근본적인 이해와 처방과 적용이 있어야 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몰라서 넘어지고 헤메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넘어지고 헤매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야지 자책해서는 안 돼요. 죄나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자학하거나 자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뿐 절대 자유롭게 할 수가 없어요.
이를 악물고,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죄를 이기겠다고 하는 사람들,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씨름하는 이들은 반드시 다시 그 죄를 짓게 되어요. 해방은 안식에서 오는 것이고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지 긴장에서 오지 않아요. 이를 악물고 밤을 새면서 수학을 정복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반드시 시험을 망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죄를 끊겠다고 금식하고 결단하고.. 난리를 치는 이들이 승리할 것을 저는 별로 기대하지 않아요. 그들은 전투의 원리를 잘 모르고 싸우는 것과 같으니까요..
세상에, 억지로 해서 잘 되는 것은 별로 없어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이들은 대부분 다시 반복하게 되어요.
베드로가 말하기를 [내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한 다음에 어떻게 했죠? 아주 곱배기로 세번이나 부인했어요. 죽기는 고사하고 그 근처에도 안 갔는데도, 조그만 여자애가 물었는데도 아주 겁을 먹고는 부인하고 저주하고 난리가 났죠. 열심히 눈을 부릅뜨고 결심하는 이들은 다들 비슷한 열매를 맺어요. 주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기 결심을 의뢰하는 이들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구원과 해방은 좀 더 높은 곳에서 오는 것이에요.
움직이기 싫어하는 것은 악한 것이 아니고 아픈 거에요. 게으른 것이 아니고 아픈 거에요. 병아리를 키울 때 보면 건강한 애들은 빨리 움직이고 놀죠. 하지만 아픈 애들은 꼬박꼬박 졸아요. 그 병아리를 군기 빠졌다고 뺑뺑이를 돌리면 건강해질까요? 아니요. 오히려 빨리 죽어요.
겉보기에 살이 많으니까 건강한 것 같지만, 그런 분들은 속이 여리고 약해요. 속이 아프고 무기력한 분들이 많아요. 속이 아프니까 의욕이 없어요. 즐거움이 없고 의욕이 없으면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해와 용서가 사람을 회복시키지 다그치고 때리는 것이 사람을 일으키지 못해요.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힘과 용기를 공급해야지 힘이 없다고 빌빌거린다고 다그쳐서는 안 돼요.
남들은 몰라서 그런다고 쳐요. 자기까지 자신을 정죄해서는 안 돼요. 자기는 자신에게 힘을 주어야 해요. 자기 속의 영혼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어야 해요.
이야기를 간단하게 마무리할게요. 요점은 탐식과 비만의 문제가 위장의 문제가 아니고 심장이라는 거에요. 그는 위장이 빈 것이 아니고 심장이 빈 것이에요. 그는 심장에 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심장을 채우지 않고 위장을 채우고 있어요.
심장을 채우면 위장의 탐식이 사라지게 되어요. 가슴에 만족이 오게 되면 필요한 이상의 음식은 땡기지 않아요. 먹으려고 해도 불편해서 못 먹게 되죠.
가슴에 감각이 생기면 위장도 제 기능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고급한 만족을 경험하면 저급한 만족을 구하지 않아요. 저급한 욕망에 빠져 있는 것은 고급한 욕망, 영의 충족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랑을 가득 경험한 사람이 불량한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아요. 그러나 학대 속에서 매몰찬 분위기 속에서 자라고 너무나 외로운 사람은 어떤 악한 사람이 그를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바로 유혹에 넘어가게 되어요. 처녀들은 순결을 쉽게 잃어버리게 되죠. 자기가 아름답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는 여자아이들은 애정을 받기 위해서 쉽게 자기 몸을 버리기도 해요. 너무 비참한 일이죠.
배고프면 불량음식에 빠질 수 있어요. 배부른 사람이 불량 음식을 먹을까요? 아니면 영양실조로 극도로 배고픈 사람이 그러한 유혹에 넘어갈까요? 대답은 보나마나죠. 그러니 나쁜 음식을 억지로 빼앗는 것보다 진정한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근원적인 해결책인 거에요.
많이 먹는 것은 단순히 육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은 영적으로도 많은 증상을 가져다주어요. 필요이상의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자라서 질병이 되기도 하고 육신의 정욕을 일으키기도 해요. 그래서 성욕도 왕성해질 수 있어요. 몸이 있는 곳에 영혼이 있듯이 쓸데없는 살이 있는 곳에는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욕망, 쓸데없는 충동, 영, 질병, 증상들이 따라다녀요.
그 중에 하나가 이성에 대한, 애정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음식을 많이 먹어서 비만 상태가 되면 고유의 성적 특징이 약해져요. 그래서 본인은 이성을 갈구하지만 이성이 보았을 때는 그가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동성으로 보이게 되요.
예를 들어서 비만한 여성은 남자들이 보았을 때 여성으로 느껴지지 않고 친구같이 느껴져요.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있고 우정을 나눌 수는 있지만 이성으로 느껴지지는 않게 되어요.
날씬하고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들은 이성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경향이 많이 있어요. 이들은 사귐을 가져도 사랑에 빠지기 보다는 남자를 종으로 부리는 것을 즐기는 편이죠.. 이들은 관계 중심 보다는 행동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사람과 사귀다가 헤어져도 상처를 그다지 많이 받지 않아요.
반면에 탐식과 비만의 상태인 여성들은 관계중심인 경향이 많고, 이성과 애정을 원하지만 찾기 어렵기 때문에 우울해지게 되고 어떤 기회가 생길 때 집착에 빠지기 쉽죠. 기대와 설렘, 그리고 실망과 상처.. 그리고 낙담과 포기.. 다시 작은 희망.. 그러한 과정들을 수도 없이 겪게 되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경향이 많다는 것이에요.
탐식과 비만은 그 외에도 아주 많은 문제를 가져와요. 그것은 영의 감각을 둔하게 하기 때문에 은사적인 경험은 많이 해도, 몸이 뜨겁고 불이 붙고 음성을 듣고.. 하는 몸에 임하는 현상은 많이 겪어도 심령 깊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의 터치를 잘 알기 어려워요.
영이 둔하기 때문에 반대로 자아의 감각이 아주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 깊이 상심하고 상처를 받고 소심하고 바깥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본인 자신은 감정의 기복이 극단적으로 심해지게 되어요.
살이 많은 이들은 정이 아주 많아서 섬기는 것과 희생하는 것과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작 사람들에게는 무시를 많이 당하고 자기가 한 만큼의 보답을 거의 받지 못해요. 그러한 것들이 나중에 깊은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하죠.
그 외에도 사소한 취미에 극단적으로 집착하게 되기도 해요. 먹는 문제는 정말 많은 문제를 가져다주는 것이죠.
탐식이나 비만은 아닌데, 비슷한 증상을 가진 분들이 있죠. 전혀 살찌지 않았는데 항상 자기는 살이 쪘다고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가 뚱뚱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음식을 피하는 사람들이요.. 주로 여성들이 많이 그렇죠..
이것은 비만은 아니지만 그 영의 상태는 비슷한 거죠.. 외모는 비만이 아니지만 그 마음이 비만 상태에 있는 거죠.. 이것도 그 심령의 상태는 비슷해요.. 자신감의 부족, 공허감, 슬픔, 애정 결핍감.. 역시 속이 텅 비어져 있는 거에요..
또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아무튼 탐식과 비만에 대한 저의 처방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증상으로 시달리는 분들이 있으면 이것을 잘 이해해서 실제로 적용했으면 좋겠어요.
첫째, 문제가 자기의 심장,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해요. 자기 안에 많은 슬픔과 고통, 외로움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그리고 그 심장의 중심은 오직 주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해요. 지금껏 그 심장, 영혼의 중심에 사람의 애정을 넣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주님께 죄송하다고 고백해야 해요.
외로운 사람, 슬픈 사람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해요. 우리가 삶에서 겪는 아픔과 고통들은 대부분 우리가 주님께 했던 일이라는 것이죠.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은 자기가 그 일을 당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배신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외로운 사람은 자기가 먼저 주님을 외롭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 외로워요..] 하면 주님은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나를 외롭게 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너를 짝사랑하고 있었는지.. 너는 알고 있니?] 하실 거에요.
주님께 나아가세요. 그리고 심장에 집중하세요. 심장에 가득한 슬픔과 외로움을 피하지 마세요. 거기에 직면해야 해요. 도피하고 있으면 문제는 그대로 있고 세월만 낭비하게 되요.
심장에 집중한 채로 주님께 고백하세요. [주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주님.. 제가 주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여기를 채우려고 했어요. 주님. 죄송해요.. 주님만이 저를 채워주실 수 있어요.. 그러니 주님.. 저를 채워주세요.. 오직 제 안에 주님이 가득하시기를 원해요..]
그렇게 계속 반복해서 고백하세요..
눈물이 나면 울어도 되요. 가슴에 가득히 쌓인 아픈 것들을 다 내보내야 해요. 막혀 있는 것들, 억압하고 있는 것들이 시냇물이 흐르듯.. 다 흘러나가야 해요..
둘째, 자기의 영혼에게, 심장에게 이야기하세요. 심장에 집중하고 이야기하세요. 시편에 보면 시편 저자가 영혼과 대화하는 내용이 많이 나오죠? [찬양하라. 내 영혼아, 깨어라 나의 영혼아,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라..] 그런 말씀이 많이 나와요. 시편의 저자와 같이 영혼과 대화를 해야 해요..
사람의 영혼은 심장에 있어요. 그러니 심장에 집중을 하고 조용히 말하세요..
[내 영혼아..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그분이 너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신다. 그분이 너의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고 하신다. 영혼아..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렇게 계속 들려주세요.. 심장은 그러한 말씀을 받게 되면 감격하고 울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되어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오래 굶주리다가 자기에게 필요한 양식을 먹으면 심장은 감격하게 되어 있어요. 심장이 곧 영혼이니까요..
그리고 그동안 심장을 돌보지 못했던 미안함을 표현하세요. 화초를 키울 때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 화초가 아름답게 잘 자라죠. 그러나 관심을 갖지 않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화초는 말라죽어가게 되어요. 심장도 마찬가지죠. 잘 돌보아주고 말씀을 먹여야 해요..
말씀을 읽고 QT를 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심장이 말씀을 먹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은 머리가 먹는 것이 아니고 심장이 먹는 거에요. 머리는 먹고 소화하는 기능이 없어요. 이해하는 기능밖에 없어요. 그러니 머리에 아무리 많은 지식을 채워도, 아무리 깊은 진리를 깨달아도 삶은 변화되지 않아요.
그러므로 심장에게 말씀을 들려주어야 해요.. 그의 반응을 살펴야 해요.. 그런데 그동안 심장을 의식하지 않고 심장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생각과 충동에 따라 살았던 삶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해요..
[나의 영혼아.. 미안해.. 그 동안 너를 너무나 오래 동안 외롭게 했어..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렇게 반복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해요..
[미안해.. 내가 너를 정죄했어.. 너를 다그치기만 했어..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어.. 너를 많이 학대했구나.. 용서해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고 나의 친구야..]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해요.. [네 안에 슬픔이 많구나.. 하지만 이제는 슬퍼하지 마.. 주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나도 너를 사랑해.. 괜찮아.. 괜찮아.. 이제 걱정하지 마..]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심장에서 고통이 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해요.. 심장은 내 안에 있으면서도, 겉사람의 나와는 다른 속사람의 나, 진정한 나이면서도 전혀 이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지금까지 진정한 나를 내버려두고 거짓 나, 껍데기인 나를 진정한 나인줄 알고 살았던 거에요..
기도와 대화가 계속되면 심장이 차츰 평안을 경험하고 기쁨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회복의 신호죠.. 계속 그렇게 기도와 대화를 반복하세요.. 속에서 뭔가 감동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아마 슬픔과 고통과 고독이 더 심하게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것은 영혼이 깨어나는 표식이에요. 영혼은 오랜 세월동안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깨어나게 되면 많이 아파요.. 하지만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느끼고 있으면 서서히 그것들은 사라지기 시작해요.. 서서히 심장은 기쁨과 평안함을 느끼게 되죠.. 심장이 회복되면 모든 것이 다 변화되기 시작해요. 삶이 새롭게 되는 것이죠.
사랑이 일어나고 기쁨이 일어나고 감사가 일어나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가까운 사람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해요.. 심지어 자기를 욕하고 공격하던 사람들도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해요. 인생이, 삶이..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해요.. 가슴이 달콤하고 행복감이 느껴지기 시작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있을 하루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이 설레게 되어요.. 그러한 것들이 심장이, 영혼이 깨어날 때 일어나는 변화들이에요..
우리 모임에서는 각 자의 심장, 각 자의 영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자주 대화를 하고 격려하도록 권하고 있어요. [사랑둥이] 라고 붙인 사람도 있고 [순종]이라고 붙인 사람도 있고 순결, 아름다움.. 용기.. 그런 식으로 붙인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그들과 대화를 하고 말씀을 먹이면서 이들은 많은 변화와 자유를 경험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것은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주여..] 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또한 [내 영혼아..] 하고 자기 영혼을 불러 격려해야 해요. 마귀가 역사할 때는 [귀신아! 사탄아!] 하고 대적하고 쫓아야 해요. 주의 이름을 불러 높이고 악한 영을 불러서 숨어있는 것을 드러나게 하고 쫓아내며 내 영혼을 불러서 말씀을 먹이고 강건하게 해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장은 전혀 돌보지 않은 황폐한 밭과 같아서 순식간에, 짧은 시간에 급격한 회복이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평생, 몇 십년간 입은 상처가 며칠 만에 치유가 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고 시도한다면 서서히 심장이 일어나는 것을, 마비된 영혼의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어요.
그렇게 영이 회복될 때 주님을 느끼는 감각도 증가하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몸의 감각이나 머리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고, 심장.. 심령의 감각이 깨어나게 되면 서서히 그 살아계신 임재의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하게 되어요.
심장, 영을 회복하는 것이 이런 단순한 몇 가지의 방법으로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기도와 말씀, 깨닫고 적용해야 할 여러 원리들이 있죠. 하지만 이런 단순한 기도를 통해서도 영의 감각, 심장의 감각은 어느 정도 깨어날 수 있어요.
이렇게 가슴의 슬픔과 고통이 어느 정도 치유되면 더 이상 음식이 끌리지 않게 되어요. 심장의 감각이 살아나면 위장의 감각도 같이 살아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음식은 불편해서 먹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심장을 회복시키는 것, 그것은 탐식과 비만의 문제 뿐 아니라 다른 잘못된 습관들이나 끊지 못하는 습관적인 죄들도 사라지게 되어요. 포르노나 음란을 즐기는 것, 충동적인 혈기, 우울증, 두려움.. 그러한 증상들도 결국 원인은 다 심장, 영혼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심장의 회복은 대부분의 묶임이나 잘못된 죄의 습관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죠.
자기 부인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어요. 자기 소원, 모든 욕망을 다 거절하고 사는 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어요. 그래서 기쁨이 없이 창백하고 어둡게 살면서 그것을 진정한 신앙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것은 참으로 오해죠.
겉사람의 나, 육욕적인 나, 이기심이 가득한 자아는 당연히 부정해야 해요. 하지만 내 속사람, 나의 영혼, 나의 본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돼요. 우리는 속사람, 심령을 통하여 모든 사람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자기의 속사람을 부정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어요.
우리는 육중심의 가치관, 육중심의 삶을 부인해야 하지 육체, 몸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돼요. 우리의 몸, 우리의 지체는 아름답고 귀한 주님의 성전이며 도구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사랑해야 해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내 몸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야 해요. 내 몸을 미워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탐식과 비만에 대해서 전문가도 아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런 면도 있어요. 모든 문제들이 다 그렇겠지만, 탐식이나 비만은 영적인 문제인데 그것을 건강이나 외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고 외적인 문제 해결에 치우쳐서 도움이 된다고 하기만 하면 어떤 방식이든 무분별하게 추종을 하는 신자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에요.
살을 빼기 위해서 요가와 같은 이상한 운동, 기 훈련, 명상과 같은 어두움의 영이 침투하기 딱 좋은 것을 따라 하기도 하고, 헬스장에 가서 온갖 요란하고 이상한, 영혼에 해가 되는 음악을 들으며 땀을 흘리기도 하고.. 몸을 망치는 이상한 약과 같은 것을 복용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명상원에 가서 살을 빼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뉴에이지적인 분위기의 단식원에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정말 끔찍한 일이죠.. 외모를 위해서 영혼을 버린다면 그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주님께 속한 방법으로 해결을 찾아야 해요. 방법도 시도하지만 기도하면서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것인가를 주의하면서 시도해야 해요.
특히 살빼기와 같은 것은 영의 들어오고 나감과 관련이 많은데, 살은 뺐지만 이상하고 혼미한 영들이 많이 들어올 수 있어요. 외모가 개선되는 대가로 다른 영들을 많이 받는다면, 그래서 주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면, 그것이 해방일까요? 절대로 아니죠.
그러므로 살을 빼던 어떤 목표를 가지던 간에 항상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찾아야 해요. 절식을 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더 가까워지고, 연애를 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더 가까워지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것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이 열리고 심장이 회복되면 공부에도, 직장 일에도, 대인관계에도.. 많은 면에서 풍성함과 아름다움과 지혜가 나타나게 되어요. 사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축복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어요. 깨어진 관계들이 회복되고 용서와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어요. 인생을 즐기게 되어요. 그러니 영이 발전해갈수록 삶의 모든 장면에서 주님을 누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주님을 믿고 알아가는 믿음의 삶은 아름답고 황홀하고 거룩함과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삶이라는 것이에요.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고 세상이 좋아하는 삶과는 달라요. 하지만 분명히 놀랍고 영광스러운 삶이에요. 목숨도 아깝지 않고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삶이에요.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어요. 신령한 삶은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열려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고 전심으로 그분을 향하는 자에게 은총과 능력을 베푸시고 있어요. 비록 그 영광스러운 삶이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전 재산, 목숨을 바쳐서 그 주님을 따르고 싶어하게 되어요.
심령이 열리고 주님의 실제를 누리고 경험하여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러한 신앙, 그러한 기독교를 추구해야 해요..
탐식과 비만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몇 마디 하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군요. 잠간 흥분했나봐요. 아무튼 탐식의 증상은 심장, 영혼의 슬픔과 공허에서 온다는 것, 그 외 대부분의 증상도 영혼의 상태에서 온다는 것을 기억해두세요.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어 그의 임재 안에서 기쁨과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충전이 될 때 더 이상 음식이나 사람의 애정이나 게임이나 TV드라마나 다른 것들로 목말라하고 채우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주님의 충만함을 입고 사랑 안에서 새롭게 되어 이 땅에 목말라 하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빛과 기쁨의 향기를 나누어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스스로 학대하지 마세요. 스스로 형벌을 짊어지고 살지 마세요. 그래서는 승리와 자유를 얻을 수 없어요..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으세요. 더 이상 주님을 고독하게 하지 마시고 당신의 심장, 당신의 지성소에 주님이 좌정하게 하세요.
당신의 심장이 주님으로 미치게 하세요. 사로잡히게 하세요.
절대로 세상 우상을 만들지 마세요.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다른 것을 첫째로 두고 심장에 채우면 당신은 결코 행복할 수 없어요. 그것이 바로 지옥 같은 삶이에요.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못되었으니.. 나쁜 사람이니까..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죄를 짓고 있으니 나는 틀렸다고, 나는 두렵다고 하지 마세요.. 다 회복될 수 있어요.
당신은 원래 못해요.. 그러니 그저 [주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고 나아가세요.. 그 보혈을 온 전신에 믿음으로 뒤집어쓰세요. 주님은 이 우주 누구보다.. 바로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어요..
당신은 회복될 수 있어요.. 믿고 시인하고 나아갈 때 당신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눈을 뜰 수 있을 거에요.
오.. 주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심령을 열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에 당신의 빛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심장을 열고 심장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너무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주님..
여러분.. 너무나 사랑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좌절하지 마시고 승리하세요. 행복한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세요. 우리는 모두 영이 깨어나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살 수 있어요.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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