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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하는 사람

디모데후 이상호 목사............... 조회 수 2264 추천 수 0 2011.08.24 21: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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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딤후1:15-18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유쾌하게 하는 사람 
딤후 1:15-18                                                     
 
오늘 읽은 딤후 1장에 보면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목회상 매우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좋은 일에도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환영하는 사람이 있고, 배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좋은 말을 들으면서 일을 하면 신바람이 나고,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서 일을 하면 맥이 빠지고 그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15절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일을 네가 안다고 했습니다. 아시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주가 아니고 그 당시에 에베소를 중심해서 중동지방을 아시아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있으면서 그 근처에 있는 지역을 전도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이 바울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버리지 아니하고 바울의 마음을 자주 유쾌하게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똑같은 복음을 전하고 똑같은 수고를 했지만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이 바울을 섭섭하게 하고 버렸습니다. "나를 버렸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던 사람이 예수님을 안 믿게 되었다 배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유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 그것을 보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면 자기도 핍박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사업하는데 인간교제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을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도 바울을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을 따르면 불이익을 당해야 되고, 핍박을 받아야 되고, 손해를 봐야 합니다. 손해 안보고 예수님을 믿으려면 바울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을 버렸습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면 고난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려면 내가 고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핍박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제자가 되려면 나와 함께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바울이 당하는 것 같은 핍박과 고난을 함께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핍박과 고난과 불이익을 그 사람들이 원치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울을 버리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따르다가 떠나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오네시보로의 집은 그러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네시보로의 집이란 말은 그의 가족, 그의 일가, 그의 친척 모두를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다 바울을 따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16절에 보면 오네시보로가 바울을 자주 유쾌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말씀입니다. 오늘의 주제입니다. 유쾌하다는 말은 마음이 즐겁고 아주 상쾌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뜻은 더울 때 냉수를 마시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혹은 환자가 약을 먹고 낫는 것 같은 기분을 말합니다. 아주 마음이 시원해지고 통쾌해지는 것 아주 기분이 좋은 것을 말합니다.

고전 16:18에 보면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가 나와 저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고 했습니다. 시원케 하였다는 말은 유쾌하게 하였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잠 15:30에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듣는 순간 듣는 사람의 뼈가 윤택해진다고 했습니다. 뼈가 윤택해진다는 반대말은 뼈가 마른다는 말입니다. 뼈가 윤택해진다는 말은 꽉 찬다는 말입니다. 뼈가 꽉 차야 건강합니다. 그래야 신경계통도 관절도 온몸도 다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뼈가 말라버리면 건강에 적신호가 옵니다. 좋은 기별, 좋은 소식이 사람의 뼈를 윤택하게 한다는 말은 아주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영국의 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부인을 보았습니다. 테니슨이 묻기를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봅니다?" 부인이 미소를 띠며 대답하기를 "선생님, 저는 한가지 소식 밖에 모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이 말하기를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들려주는 것은 가장 기쁘고, 가장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고, 이웃 사람의 뼈를 윤택하게 해 주는 소식이고 영혼을 살리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에게 예수님을 증거해서 모시고 옵시다. 이웃을 초청하는 것은 이웃사람의 뼈를 윤택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힘써서 해야 합니다. 들어서 좋고, 만나서 좋고, 생각해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를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걱정거리가 없어집니다. 좀 답답하다가도 그 사람을 보면 내 마음이 탁 트입니다. 생기가 생깁니다.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나를 시원하게 했다 윤택하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아무 말이 없어도 내 마음이 즐겁고 편안합니다. 그냥 가까이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무릎에 앉으면 편안한 것처럼 편안합니다. 이런 사람이 나를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만나나 마나 한사람,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되도록 안 만나는 것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따분해집니다. 그 사람하고 앉아 있으려면 아주 힘이 듭니다. 같이 이야기하려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소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질소 같은 사람도 있고 탄산가스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시원하게 하는 사람, 시원함을 주는 사람, 시원한 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네시보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오네시보로는 어떻게 해서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까? 16하반절에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홀로 사는 가난한 어머니가 어렵게 어렵게 품팔이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 아들을 도시로 보내서 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머나먼 길을 걸어가서 아들이 다니는 학교교문에 서 있었습니다. 여러 시간 서 있다가 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무개야" 하고 반가워 불렀는데 아들은 그때 여자 친구하고 둘이 나오다가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여자 친구가 "저 할머니 누구야?" 하고 아들에게 물으니까 "저거 옛날에 우리 집에 있던 식모야." 하고 아들이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돌아오면서 한없이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효자가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오네시보로는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16에 나는 북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곧 십자가를 말합니다. 십자가는 아주 부끄러운 죄인이 저주받은 죄인이 죽는 형틀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십자가가 영광이지만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당당해야합니다.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바울 당시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할 때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소요를 일으킨 사람으로 로마제국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위험한 인물로 몰아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속으로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죽이면서도 겉으로는 정치적인 문제로 도덕적인 문제로 사회적인 문제로 포장해 가지고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전도하다가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바울이 죄인이라고 생각해도 오네시보로는 바울은 죄인이 아니라고 했고, 다른 사람은 바울이 잘못했다고 해도 아니라고 했고, 바울이 뭔가 잘못해서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도 바울은 진실한 사람이고,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의와 거룩함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해도 오네시보로는 바울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옥중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고 의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고난 당하는 것은 100% 순수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다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해 줄 때 그 인정을 받을 때 기쁩니다. 그래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바울은 유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어떻게 되고 율법을 안 지키고 율법을 배반했고 이런 복잡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중심과 진실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 만났습니다. 17절에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 만났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마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큰 덕입니다. 그 의를 인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감옥에 있는 사람과 찾아간 사람이 하나가 됩니다. 감옥을 찾아가고 병원을 찾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행동적인 선행입니다. 말만하고 기도만 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책에서 감명 깊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미치란 사람이 대학 다닐 때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는데 모리 슈워츠입니다. 그 교수가 루게릭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신경계통에 오는 불치의 병인데 이 병에 걸리면 차츰차츰 근육이 다 풀어집니다. 근육은 단단해야 되는데 자꾸 근육이 풀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일어서지도 못하고 손을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약해져 가다가 결국 죽는 병입니다. 16년 전에 자기를 가르친 교수가 그 병에 걸린 것을 알고 깜짝 놀라서 바로 그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곁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 누어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바쁜 사람이지만 매주 화요일마다 시간을 정하고 찾아갔습니다. 가서는 스승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려운 중에서도 계속해서 자기가 연구했던 것 자기가 늘 느꼈던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걸 다 받아서 적고 녹음도 했습니다. 하루종일 그리고 또 화요일이 되면 시간을 내서 계속 갔습니다. 화요일마다 오는 옛 제자에게 그때마다 자기가 그 동안에 겪고 경험하고 연구했던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정말 기쁘고 참으로 보람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졌던 인생관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열두 번째 왔던 화요일에 교수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발가락을 손으로 자꾸 문지르면서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럴 때 이 교수는 너무도 행복해서 말하기를 "내 아들이 하나 더 있어서 그 아들이 자네 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교수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기자이고 하나는 컴퓨터기술자인데 바빠서 오지 않습니다.

열네번째 방문했을 때는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내 사랑하는 친구"라고 교수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착한 영혼을 가졌네, 나는 자네를 사랑하네." 그리고 헤어졌는데 나흘 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16년 전에 가르쳤던 노 교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외로운 시간에 그 바쁜 시간을 내어 화요일마다 찾아갔습니다. 벗이 되어 주었고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스승이 하는 말을 소중하게 소중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심방 하다보면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을 자주 뵙게 됩니다. 외로운 사람을 방문하고 환자를 방문하는 것이 덕입니다. 감옥에 있을 때 찾아가는 것 너무나 귀하고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감옥에 자주 찾아온 오네시보로에게 너는 나를 유쾌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18절에 내가 에베소에 있을 때 저가 나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섬겼다는 말은 내가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주었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서 공급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유쾌하게 해준 오네시보로가 너무 감사해서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16절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18절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을 받게 되면 축복기도가 나옵니다. 감사하면서 하는 기도와 짜증내면서 기도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유쾌하게 해준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그 가정에 복을 내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주도록 노력합시다.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말고 화내게 불쾌하게 마음이 상하게 마음에 상처가 생기게 낙심하게 마음에 부담을 주지말고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합시다.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하면 자신이 유쾌해지고 복을 받고 전도가 되고 예수님 앞에 모시고 올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자녀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부모도 자녀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이웃 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친구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줍시다. 직장인들은 직장동료들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윗사람의 마음을 유쾌하게 합시다. 그리하면 직장에서 좋은 일이 많아지고 장사하는 분들도 고객의 마음을 유쾌하게 해주면 그 고객이 또 찾아오고, 식당에서도 손님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면 단골 손님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하면 여러 가지 복을 받게 되는 것을 잊지 맙시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에게 너는 나를 유쾌하게 해주었고, 감옥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고, 부지런히 찾아 만나 주었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복을 간구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주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됩시다.

잠 23:16에 보면 솔로몬은 "너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정직한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말로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줍시다. 좋은 말이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합니다. 행 3:19에 보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회개하여 죄 없이 함을 받으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게 된다"고 했습니다. 죄에서 떠나 깨끗하게 살면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줍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봐 줄 때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유쾌하게 해 줄 수 있고 복음을 전해 줄 때 가장 유쾌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유쾌하게 해주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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