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

이한규 목사 | 2012.01.12 11:34:3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눅2:8-14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성탄절(6)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 (누가복음 2장 8-14절)

<낮아지신 예수님처럼 사십시오 >

예수님의 삶의 처음은 구유였고 마지막은 십자가였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삶은 너무 편하고 화려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교회는 마구간이나 구유보다는 화려한 건물과 힘을 좋아하고 교인들은 십자가의 길보다는 명예와 권세와 부를 얻는 길만을 너무 찾습니다. 그러면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되는 삶을 살기 힘듭니다.

이제 예수님의 구유와 더욱 가까워지기를 힘쓰십시오.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고, 봉사 받기보다는 봉사하며 자기를 버리고 죽으십시오. 그것이 성도와 교회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굶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려고 할 때 마음의 평화도 생기고 그가 속한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오늘날 이 땅에 탄생시키는 교회가 됩니다.

어떤 노동자는 자기도 힘들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얼어 죽는 사람 없게 하시고, 연탄 때는 사람들이 연탄가스로 중독되지 않게 지켜주시고, 날씨가 추어져서 일거리가 많이 없어지는데, 일거리가 없어 굶는 가정이 없게 도우소서.” 그처럼 힘들어하는 이웃을 향해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고 진짜 부요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어떤 수도사가 추위에 떠는 거지를 보고 외투를 벗어주며 그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젯밤 네 덕분이 따뜻하게 잘 잤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시려고 할 때 지극히 작은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면 ‘신비한 어떤 방법’을 찾기보다 ‘작은 어떤 사람’을 찾아 사랑을 전달하십시오. 그것이 진짜 예수님을 만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세례 요한은 누가복음 3장 10-11절에서 이런 말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먹을 것도 그렇게 하라.” 회개의 열매는 바로 나눔입니다. 그처럼 욕망을 낮추고 어려운 이웃과 내 것을 나눌 때 진정 평화가 꽃피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평화를 원하시면 덜 가진 상황에서도 더 많이 누리며 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구유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 >

주님의 성육신의 가장 큰 목적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과 ‘사람들 중에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14절). 그러므로 분쟁과 편견이 있는 곳에 항상 평화의 중재자로 살아가고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를 극복하십시오. 사람 앞에서 섭섭한 감정을 가지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섭섭함을 털고 섭섭하게 한 사람을 축복하고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자신이 행복해지고, 은혜와 축복도 넘치게 됩니다. 우정을 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한번 틀어지면 완전히 망가집니다. 그러나 10년 동안 틀어진 우정도 주님의 말구유를 생각하고 한번 마음을 잘 먹으면 금방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실 때 평화의 문을 두드리면 그가 문을 열어줄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도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용서를 알아야 삶도 소생합니다. 용서받은 존재는 용서해야 할 사명도 받은 것입니다. 용서가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신앙행위를 해도 하나님이 영광 받을 수 없지만 사랑과 용서와 평화를 추구하고 기쁘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 믿는 최고의 표적 중의 하나가 바로 평화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거나 소경이 눈을 뜨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대단해하지만 그런 기적(miracle)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평화의 표적(sign)입니다. 평화의 표적(sign)이 있는 영성이 진실한 영성입니다.

평화의 표적은 성육신의 사랑으로 주어집니다. 누구를 뜨겁게 사랑하면 어느새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집을 지나치게 부리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강한 자아로 자기 자존심만 내세우면 그것도 사랑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하면 사랑하는 동안 자존심은 눈 녹듯이 없어집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자기가 작아지다가 더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 자기가 완전히 없어집니다.

베들레헴 구유에는 기적도 없고, 화려한 빛도 없고, 이 땅의 영광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처럼 화려한 바벨탑을 떠나 베들레헴 구유로 내려가십시오. 베들레헴 구유의 아기 예수님은 모든 절망을 거두어 간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그 구유에서 희망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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