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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일목사 | 2013.03.24 23:01:4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출처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끝없는 괴로운 싸움

 

인생의, 삶이 싸움이요 전쟁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싸우다 가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인간은 첨단의 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을 대비하며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예비합니다. 이런 싸움 말고도 인생의 삶에는 수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여기에 끝없는 괴로운 싸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여자와 남자의 싸움입니다.

 

어릴 때부터 늙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싸움, 가까우면서도 원수 같은 싸움, 절대 필연적이면서도 전혀 필요없는 관계처럼 막가는 싸움, 같이 살면서도 도저히 살 수 없는 상대처럼 괴롭고 살벌하고 갈등하는 싸움, 모든 것 다 줄 것 같으면서도 순간 무섭게도 냉정해 지는 싸움, 도대체 그 싸움의 요인이 무엇인지 알 듯 하면서 알 수 없는 참으로 애매한 싸움, 정말 그렇게 까지 싸울 필요가 있는지 그 물음에 정답이 없는 싸움이 그것입니다. 웬지 싸워서는 안 될 매우 가까운 사이면서도 늘상 싸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같은 여자끼리 자매나 남자끼리 형제들 보다 남자여자 남매 사이가 더 티격되고 잘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때론 치열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싸울만한 원인도 없는데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회하고 싸우지 말자고 수없이 서로 맹세하면서도 얼마 안 가 또 싸우는 아무도 종식시킬 수 없는 싸움입니다.

 

부부관계는 한 몸이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인데도 평생 싸웁니다. 정말 끝없는 괴로운 싸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없이 좋던 사이가 서로 사랑한다던 사이가, 한 순간 원수 같아지고 남남같고 서로 미워하고 보기 싫어질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하지만 묘하게도 군인들의 맹렬한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무섭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 보면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 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인 나으니라“(잠21:19)고 말씀한 것입니다.

 

인류가 두 패로 나뉘어 끝없이 갈등하며 골이 깊어지는 관계의 싸움이 남녀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혈육사이요 부모자식 사이요 절친한 친구 사이보다 더 친밀한 부부사이인데도 서로 이해가 안 되고 못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언제부터 인가는 여성들이 더욱 반기를 들고 뭉치면서 선전포고를 했고 남자들이 점점 꼬리를 내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성해방주의가 그렇고 여성상위시대가 그렇습니다.

 

어느 편이 이기고 지고 판가름이 되지 않는 참으로 말도 안되는 가까운 사이 속 싸움이 사실은 더 괴롭고 힘들고 서로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삶을 번뇌케 하는데도 이 싸움은 끝이 없는 것인지... 가만히 보면 모두 불행과 슬픔과 파경과 삶의 고통의 시작이 바로 이 싸움에서부터 오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살상무기를 동원하여 싸우는 군인들의 크고 무서운 전쟁보다 더 심각하고 괴로울 수 있는 이 싸움의 요인에 대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성격차이, 경제문제, 가치관차이, 각자 살아온 습관이나 문화차이, 서로 잘 살아 보겠다는 의도에서 과열문제 등으로 논하면서 여러 가지 해결점을 제시하지만 이 싸움은 풀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이미 오래전부터 고민되어 왔던 것으로 이젠 그 갈등이 점점 고조될 뿐입니다 말하기도 보기도 싫은 싸움, 도망쳐버리고 싶은 싸움, 도저히 살 수 없는 것 같은 싸움, 정말 왜 싸워야 되는지, 그래서 서로 남는 것이 무엇인지 참으로 답답한 싸움인데 진정한 해결점과 문제의 요인은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이후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의 삶이 나오는데 여기에 바로 이 싸움의 근원적인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3:16절에 보면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여자가 “사모한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부터 “의뢰, 기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되었는데 이것이 모든 싸움의 요인이 되는 것은 자기중심의 이기적 사모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자기외에 또는 자기보다 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일이나 연관되는 것에 열중하고 마음을 쏟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심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남자를 의지하고 기대는 것은 굴복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필요성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했는데 그래서 지배적이고 소욕적이고 우위적인 힘과 성향을 본성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지만 실제 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 끝없는 싸움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여기에 점점 반기를 강하게 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자의 다스림”이런 하나님의 형벌적 규례를 인정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뭐든지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고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여자도 할 수 있고 어떤면에서 여자가 더 상위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러모로 여자에 대해 본질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실제를 남자들은 모릅니다. 아내로 인해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는 점 그래서 고생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과(창 3:17) 여자로 인해 범죄케 되었고 그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14를 보면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않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말씀 한 바가 있듯이 남자는 뭔가 여자에게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막연히나마 느끼는 것으로 늘상 못마땅하게 불만적인 것이 잠재해 있다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본질적인 상대성이 인간에게 형벌로 주어졌기 때문에 이 싸움은 끝없이 괴로운 싸움으로 불행한 삶의 한 요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와를 꼬인 사탄의 미혹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였는데 그것에 빠진 하와는 정녕 죽게 될 선악과도 욕망적 이상으로 보였고 따먹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여자들을 미혹하며 여자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지를 잊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들의 고유의 선한 위치와 역할을 거스르고 이탈하게 합니다. 신처럼 된다는 거짓되고 허황된 사탄의 미혹이 여자들의 순리적 위치를 거부하고 나서게 하는데 또한 싸움의 요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요인은 죄 때문에 그 형벌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었기 때문에 왠지 자꾸 싸우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인된 자들의 상태는 어떤가하면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우는 것처럼 기독교 안에서도 남녀의 갈등과 싸움은 세상 못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자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교회와 부부관계의 질서와 원리를 따르지 않으며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2-23)는 말씀을 말도 안된다는 듯이 대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고전 14:34-35),

 

또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딤전 2:11-12)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가 바보인줄 알아?”하는 식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주 안에서 내몸 같이 사랑하라 함을 모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교회를 주도하는 여자목사는 엄청 많아지고 그들은 이런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거나 외면하면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에서 역할들이 커지면서 노골적으로 TV에 나와 내가 집에서 왕이고 내가 의도하는 대로 된다는 요즘 여인들의 당당함이 현대판 모계사회 같은 시대를 느끼는 데 문제는 이혼율이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런 세상 사조의 흐름이 교인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쳐서인지 왠지 교인들 가정에 싸움이 잦고 파경에 이르고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져 갑니다.

끝없는 괴로운 싸움이 멎고 화평을 가져올 수는 없는 걸까요?

 

죄로 멀리 있던 우리가 서로 원수같았던 우리 사이가 진정으로 화평케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는 먼저 범죄로 원수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십자가로 화목케 하시고 또한 사이가 너무 멀고 깊고 이질적인 우리 관계를 화평케 하십니다. (엡 2:12-19)

 

사도바울은 증거하기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낳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8-19)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마 5:9)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남자 여자에 대한 그리고 부부 사이에 대한 하나님의 각 위치와 역할과 질서에 대해 주시는 말씀을 거스르는 내 인간적 고집의 생각과 소욕의 의도를 버리고 죽여야 합니다. 이간질 시키는 사탄의 계교와 죄된 본성의 옛사람의 상태에서 진정 자유케하는 진리의 복음으로 우리 속에 충만히 채워가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성도는 구원에 이르는 복음에 합당한 신앙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부부는 그리고 그 가정은 마른 떡 한 조각을 두고도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며 하나님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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