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공방쑥티일기12-14 › 우유배달의 추억

최용우 | 2013.05.10 06:46:1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쑥티일기340】우유배달의 추억

 

나의 이력서 가운데 '우유배달 하다가 망한 적 있음' 항목이 있습니다. 물론 어디다 제출하는 이력서에는 안 쓰지만 그 외에는 꼭 씁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쓰라린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무개 우유회사의 '밀어내기'로 시끄러운데, 그건 그 회사가 딱 걸린 것이지 다른 곳도 다 '밀어내기'를 합니다. 우유회사 뿐이겠습니까? '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밀어내기'를 다 경험해 봤을 겁니다. '갑'이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을 '을'이 무조건 따라야 하고 잘못된 손해는 '을'이 모두 책임지는 구조는 아주 비인간적이고 나쁜 것입니다.
우유를 배달하다 보면 그만 먹는 사람도 생기고, 새롭게 주문하여 먹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에 항상 100%인데, 대리점은 항상 새로 늘어난 사람만 플러스하여 110%의 우유를 가져다가 배달원의 집 밖에 쌓아 놓습니다. 열심히 우유 먹을 사람을 전도하여(?) 계속 10%씩 늘리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계속 늘어나는 10%의 양을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합니다.(우유는 반품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배달하지 못한 우유는 배달원이 손해를 보고 처리합니다.)
그렇게 배달하지 못하고 잉여로 남은 우유가 집안 구석구석에 점점 쌓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정말 속된말로 머리가 돌아버립니다. 그게 누적되면 반은 배달하고 반은 버리는 최악의 상태가 됩니다. 물론 저처럼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 우유배달을 했을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판촉도 하고 '밀어내기'도 안 하는 회사의 우유배달은 그래도 할만합니다.
배달하지 못하고 남은 우유가 아까워 1000미리 짜리 우유 세 개를 한꺼번에 벌컥대며 마시다 탈이 난 적도 있고, 우유로 손도 씻어보고 머리도 감아보고 나중에는 거의 미쳐서 벽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우유를 집어 던져 맞추면서 야구놀이를 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구요.
우유배달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는데 거의 10년 걸렸습니다. 그래서 알았지요. 나는 정말 힘이 쎄서 뭐든 배달하는 것은 자신 있는데,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장사에는 눈꼽만큼의 소질도 없구나... ⓒ최용우 20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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