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베드로후 › 보배는 흙이 묻어도 보배다

강문호 목사 | 2013.09.28 11:55:2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벧후1:1~4
설교자
강문호 목사
참고
2011.01.30. 주일낮 갈보리교회 http://calvarymm.onmam.com

보배는 흙이 묻어도 보배다.
벧후 1:1-4.

걸레는 빨아도 걸레입니다.

보석은 흙이 묻어도 보석입니다.

성경에서 보배라고 말하는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보배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2:4-5)

 

2. 성도가 보배입니다.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신26:18-19)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는데 구원받았으니 우리가 보배입니다. 어부에게는 고기가 보배입니다. 금광 광부에게는 금이 보배입니다. 학자에게는 지식이 보배입니다. 부모 보기에는 자녀가 보배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우리가 보배입니다.

 

3. 지혜로운 입술이 보배입니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20:15)

 

  결혼한지 3개월 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다정스럽게 남편의 팔짱을 끼며 물었습니다.

<자기! 자기는 내가 저 10번처럼 몸매가 좋아서 결혼한 거야? 아니면 16번처럼 예쁘고 깜찍해서 결혼한 거야?>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응, 바로 그 유머감각 때문이야.>

 

  평소에 먼저 말을 시키지 않는 아내가 남편에게 상냥하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남편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보! 왠 일이야?>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식구가 곧 3 식구 될 것 같아요.>

남편이 좋아서 말했습니다.

<우리 애기를 잘 길러 보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애기가 아니예요. 친정 어머니가 같이 와서 살기로 하였어요.>

 

지혜롭게 말하는 입술이 보배로운 입술입니다.


4. 믿음이 보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믿음이 보배라고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 1:1)

 

그러면 믿음이 보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배가 보배인 이유는 그 속에 값진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 속에는 영롱한 빛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금이 보배인 이유는 변하지 않는 금속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보배인 이유는 믿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다는 말일까요?

믿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들어 있기에 보배입니다. 그러면 믿음 속에 들어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1.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믿음의 그릇을 준비한 자에게는 언제나 은혜가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물건과 그릇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바카스 병에는 바카스를 담는 것입니다. 바카스 병에 아이스크림을 담지 않습니다. 사과 상자에 물을 담지 않습니다. 물통에 가스를 넣지도 않습니다. 그릇과 물건은 맞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마음에는 은혜와 평강이 담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1-2)

 

  은혜와 평강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입니다. 은혜가 있는 자는 평강이 있고 평강한 사람은 은혜가 있는 이입니다.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눅1:28)

 

  그리고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에게 평안을 빌었습니다. 믿음 속에는 은혜와 평강이 들어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은혜요 은혜를 받으면 평강이 임할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추운 겨울 밤 한 과부가 아들과 함께 불기가 없는 방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도 없어서 굶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배고픔을 느낀 모자는 성경만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열왕기상 17장을 읽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시켜서 엘리야에 먹을 것을 날라다 준 이야기였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모자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이라는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찾아 왔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두 모자는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아이가 어머니에게 까마귀가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 놓자고 하였습니다.

그 때 우연히 동장이 지나가다가 추운 겨울밤에 창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그 모자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모자는 성경에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준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동장은 자기가 까마귀가 되어 주겠다고 하면서 먹을 것과 땔감을 주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이같이 믿으면 은혜가 임하고 은혜가 임하면 평강이 깃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보배입니다.

 

2. 생명과 경건이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3)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능력이 주어집니다. 신기한 능력은 생명과 경건을 주는 능력입니다. 생명은 예수님의 본질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경건은 원어로 유세베이아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경건입니다. 이 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경건은 생명의 열매이며, 생명은 경건의 근원이다.>

 

그래서 생명 있는 자는 경건한 예배를 드리며, 경건한 자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을 줍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은 신기한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40일간 정탐하고 돌아 왔습니다. 10명은 성이 크고 아낙자손이 살고 너무 강하기에 가지 말자는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 명은 10명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6-9)

 

1  0명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상식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나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생명이 있었습니다. 물론 경건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이 있는 이에게는 생명과 경건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보배입니다.

 

  1950년 대 후반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브라더스 서커스단이 공연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호랑이 조련사가 울안에서 호랑이를 데리고 쇼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이 나갔습니다. 철책 안이라 관중들에게는 조금도 위험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조련사였습니다. 그러나 조련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련하게 호랑이를 다루었습니다. 다시 불이 켜졌습니다. 조련사는 무사하였습니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련사가 말했습니다.

<어둠속에서 당황하면 호랑이 밥이 되고 맙니다. 조련사는 어둠속에서도 밝은 곳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여야 합니다. 당당하게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겁을 먹거나 당황하면 어둠속에서 호랑이 밥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생명을 주고 생명을 받은 자는 경건하여 집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보배입니다.

 

3. 영광과 덕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3)

 

  믿음이 보배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과 덕으로 부르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시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덕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덕이 아니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본질이 생명인 것처럼 하나님의 본질은 영광입니다.

은혜와 평강

생명과 경건

영광과 덕

이는 쌍둥이들입니다. 믿음은 세쌍둥이, 6 자녀를 거느리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오직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영광 영광이라고 외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은 죄입니다. 죄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됩니다. 죄를 지으면 마귀가 영광을 받습니다. 죄를 이기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이같이 죄를 짓지 아니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이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믿음이 있는 이는 이런 사실을 알고 이렇게 살기에 믿음은 보배입니다.

 

(2) 하나님의 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덕 때문입니다. 이를 아는 것이 믿음이라고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덕이 없으셨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될 인간을 구원시키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인간을 구원시키시지 않고 멸망시키려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홍수로 멸망시키실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이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쓸어버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있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며 십계명과 성막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랬더니 산 밑에서는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32:10)

 

이때 모세의 기도를 보십시다.

 

<화를 내리지 마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출32:13)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진멸될 위기에 있을 때 모세는 과거 조상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시키실 것을 취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덕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잘 압니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배입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감리교회 교인입니다.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에 들어와서 보기 드물게 재선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대통령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 눈이 너무나 많이 와서 도무지 차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도 힘들게 교회에 가보니 클린턴 대통령 한 명만 앉아 있었습니다. 둘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이들은 보배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보배로워 집니다.

1.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2. 생명과 경건이 있습니다.

3. 영광과 덕이 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있는 이들은 이런 것들이 있고 드디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4)

 

  이런 요소들은 신의 성품입니다. 신앙생활의 마지막 목표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수소는 수소입니다. 산소는 산소입니다. 그러나 수소와 산소가 합하면 전혀 다른 물이 됩니다. 전혀 다른 성분으로 변하고 맙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합하면 전혀 다른 피조물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 하셨느니라>(고후5:17-19)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

 

  베드로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나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3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 하고 인간성이 가끔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실 때 도망치기도 하였습니다.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루에 3,000명, 5000명씩 회개시키는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보배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니면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흙을 담았던 그릇에 금을 담으면 금 그릇이 되는 것처럼 믿음을 담으면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을 한 마디로 보배라고 말했습니다.

보배는 흙이 묻어도 여전히 보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노예 제도가 있던 시대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큰 목화밭을 경영하는 백인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흑인종들이 많았습니다. 흑인 중에 한 명은 늘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늘 성경을 보고, 항상 전도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모세 목사>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습니다. 모세 목사는 늘 즐거워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 목사는 수심에 가득 찬 착잡한 얼굴로 일터에 나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물었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내일 날이 밝기 전에 이 집에서 제일 큰 부자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은 겁이 났습니다. 그 집에서 제일 부자는 자기였습니다. 그는 모세 흑인종의 말이 맴돌았습니다.

<이 집에서 제일 큰 부자는 내가 아닌가? 내일 아침이 되기 전에 죽는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뜯 눈으로 그 날 밤을 새웠습니다. 새벽 2시였습니다. 충실한 종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인님, 모세 목사가 죽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종은 그 집에서 제일 큰 부자였습니다. 종은 아무리 종이라도 부자였습니다.

그 종은 구원을 받고 난 후 하늘의 모든 것을 가슴에 안고 살아갔던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비록 몸은 주인에게 매여서 목화를 따는 종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보배였습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배는 흙이 묻어도 보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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