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동화 › [창작동화] 모래밭 시계

김문기 | 2006.08.24 23:51: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얘, 둥리야! 빨리 일어나! 아침이다!˝
오늘도 뻐꾸기 시계가 8시를 가리키며 소란을 피워댔어요.
그 소리에 놀란 어린 도깨비 둥리는 짜증을 내며 이불 속 깊숙이로 들어갔어요.
그러자 뻐꾸기 시계는 소리를 더 쳤어요.
˝빨리 일어나라구!˝
뻐꾸기 시계는 집을 마구 흔들어댔어요.
˝일어나!˝
집이 흔들리며 꽃무늬 액자 하나가 떨어져 내리자 둥리는 견디다 못해 이불을 빠져 나왔어요.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집이 부서져버렸을 지 모르죠.
˝에이, 흥!˝
둥리는 투덜대며 이불을 갰어요.
그리고 세수를 하고 식탁으로 가 앉으니 엄마가 밥을 차려 주었어요.
둥리가 밥을 배불리 먹고 나자 엄마가 말했어요.
˝세 시간 동안만 놀다 오너라.˝
˝예.˝
둥리는 엄마가 준 튜브를 가지고 시냇가에 찾아갔어요.
혼자서 첨벙대며 신나게 놀았지요.
한 시간, 또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지났어요.
˝어, 벌써 11시네? 에이, 더 놀고 싶은데……˝
둥리가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가자 엄마가 빵을 만들어 주었어요.
케이크도 만들어 주었어요.
다음 날 아침 8시에 뻐꾸기 시계가 또 집을 흔들며 소란을 치는 바람에 둥리는 일어났어요.
˝오늘도 세 시간만 놀다 오너라.˝
˝예.˝
둥리는 시냇가로 찾아가며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놀 수 있을까? 그 뻐꾸기 시계가 얄미워.˝
시냇물에서 튜브를 가지고 혼자 놀던 둥리는 아주 좋은 생각을 떠올렸어요.
모래밭에 시계를 만들면 되는 일이지요. 뻐꾸기 시계보다 훨씬 잘 생기고 멋있고 예쁜 시계를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모래밭에 둥근 원을 그리고 1부터 12까지 숫자를 썼어요.
그리고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시계 바늘로 삼았어요.
˝와, 시계 만들기 쉽네!˝
둥리는 정성스레 시계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시계 바늘이 11시를 가리키게끔 했어요.
˝집에 갈 시간이잖아? 아냐. 10시로 고쳐 놓아야지.˝
둥리는 1시간 동안 더 물장난을 하며 놀았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가 화난 얼굴로 쳐다보았어요.
˝엄마하고 약속을 안 지켰구나. 너는 1시간이나 더 놀다 왔잖아?˝
뻐꾸기 시계도 말했어요.
˝저 녀석을 혼내 주세요.˝
둥리는 슬픈 얼굴로 대답했어요.
˝엄마, 지금 11시란 말예요.˝
그 말을 듣자 뻐꾸기 시계가 코웃음을 쳤어요.
˝넌 시계도 볼 줄 모르니? 지금은 12시란 말야. 넌 바보구나. 메롱!˝
˝시냇가에 있는 시계는 11시인 걸. 내가 만들었단 말야.˝
˝시계를 만들어? 네가? 만약에 네가 모래밭에 시계를 만들었다면 그건 가짜야. 이 뻐꾸기 시계는 진짜고, 네가 만든 것은 장난감이란 말야.˝
엄마도 말했어요.
˝맞다. 저 뻐꾸기 시계는 진짜야. 자동으로 시간을 정확히 알려 주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벌서야지.˝
둥리는 할 수 없이 거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들었어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벌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벽에서 혀를 낼름거리는 뻐꾸기 시계가 너무 얄미웠어요.
다음날 둥리는 8시에 또 튜브를 가지고 시냇가로 찾아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물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기가 어제 애써 만든 모래밭 시계를 우두커니 바라보았지요.
˝이건 가짜 시계라고 했는데…… 가짜는 필요 없는 거야.˝
슬프기도 했고 짜증도 났어요.
그래서 둥리는 모래밭 시계를 발로 헝클어 버렸어요.
숫자를 모두 지우고 나뭇가지 바늘 두 개는 내던져버렸어요.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어요.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어요.
한참 후 엄마가 시냇가로 찾아 왔을 때, 둥리는 모래밭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어요.
마구 헝크러져 있는 모래밭에 그래도 시계 테두리가 조금 남아 있었지요.
˝둥리야, 일어나.˝
둥리가 일어나며 어리둥절해 하자 엄마가 말했어요.
˝너 왜 여기서 잠을 자는 거지?˝
˝모르겠어요. 그냥 잠들었어요.˝
˝그런데 왜 모래밭 시계를 헝클어뜨렸니?˝
˝가짜라고 해서요.˝
˝가짜? 그래서 네가 우울했구나. 미안해.˝
˝엄마, 뻐꾸기 시계는 진짜예요?˝
˝진짜? 아냐. 뻐꾸기 시계는 그냥 기계일 뿐이야. 오늘도 고장이 났는 걸. 아빠가 지금 고치고 있단다.˝
˝왜 고장이 났어요?˝
˝모르지. 기계는 아주 작은 실수나 잘못만 있어도 고장이 난단다. 고장났을 경우는 아주 형편없는 쇳덩이에 불과해. 우리를 아주 난감하게 하지. 자, 이젠 집에 가자.˝
둥리는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가면서 자꾸 뒤돌아 보았어요.
모래밭 시계는 비록 헝클어져 버렸지만 빨간 저녁 햇살을 받으며 책칵책칵 바늘이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뻐꾸기 시계를 고치고 있었어요.
˝이거 왜 고장났을까? 건전지를 갈아줘도 안 되네. 시계 수리점에 맡겨야 하나 봐.˝
둥리는 뚜껑이 열린 채 부속품이 널브러져 있는 뻐꾸기 시계를 바라보았어요.
항상 잘난 체하며 소란을 피워댔었는데, 고장난 뻐꾸기 시계를 바라보니 우습기도 했고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어쩌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병원에도 가봐야 하고……˝
엄마가 걱정어린 말을 했어요.
˝나도 내일 아침 8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빠도 걱정을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뻐꾸기 시계와 모래밭 시계를 마음 속으로 비교해 보던 둥리가 말했어요.
˝엄마 아빠! 제가 내일 아침에 깨워 드릴께요.˝
˝뭐? 너 같은 잠꾸러기가 엄마 아빠를 깨워? 휴.˝
˝정말 8시에 깨워 드릴께요.˝
˝그래 봐라. 좋은 일이지. 허허허.˝
아빠는 저녁 때가 되고 밤이 되어도 뻐꾸기 시계를 고치지 못했어요. 엄마는 그 옆에서 걱정만 하고 있고요.
둥리는 침대에 누웠어요. 눈을 감았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시냇가 모래밭에 둥근 원을 그리고 1부터 12까지 숫자를 썼어요. 큰 나뭇가지와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시계 바늘로 삼았어요.
˝자, 시계가 간다! 진짜 시계가 간다!˝
둥리는 마음속으로 외쳤어요. 그러자 큰바늘과 작은 바늘이 책칵책칵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밤 10시지만 시계 바늘이 계속 움직이면 밤이 지나 아침이 될 것이고 8시가 될 테지요. 엄마 아빠를 깨울 수 있을 테지요.
둥리 마음속에서 모래밭 시계 바늘은 책칵책칵 잘도 움직여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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