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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 소장 | 2014.06.12 11:06: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녹색세상]물러설 수 없는 ‘자동차 탄소전쟁’

 

나는 웬만해서는 자동차를 타지 않는다. 출근은 자전거로 시작해 버스나 지하철을 거쳐 가벼운 걷기로 끝을 맺는다. 퇴근은 그 역순이다. 출장도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면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환경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그런 점도 있지만 솔직히 그게 더 편안하고 좋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자동차를 타면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재잘거리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환한 얼굴도, 바람에 서걱거리는 나뭇잎 소리도, 점점 불어나는 뱃살을 약간이나마 뺄 기회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자동차로 갈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은 진리다. 미국의 문화비평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길을 걸으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하지만 나는 ‘카맹’은 아니다.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독일에서 운전면허도 땄고 간단한 부품 정도는 갈아 끼울 줄도 안다. 지구 위에서 자동차를 남김없이 몰아내야 한다고 외치는 근본주의자도 아니다. 자동차 문명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따라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탓하지 않는다. 그래도 생각해볼 문제는 있다. 어떤 차를 어떻게 타느냐다.

자동차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 큰 차와 작은 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이다. 발단은 이렇다. 지난해 3월 국회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도입을 담은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 구매자들은 보조금을 받고,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 구매자들은 부담금을 물게 된다. 대형차를 타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소형이나 경차로 바꿔 타도록 유도해 자동차들이 내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대기업들이 반발하면 국회에서 어렵게 내린 결정도 경제부처들이 뒤집는 일이 다반사다. 일부 언론도 가세하고 있다. 어제 한 경제신문의 사설은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등식조차 의심받고 있다며,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쪽을 ‘환경주의 탈레반’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수면 위로 마치 자동차업계, 경제관료, 친기업 언론의 거대한 카르텔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이들은 기후변화가 세계경제를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경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많은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가 아니다, 수입차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다, 국내 자동차산업 경쟁력이 악화된다”며 이런저런 반대논리를 펴고 있지만 본질은 딱 하나다. 중대형차를 많이 팔아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던 업계의 이익구조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가 몇몇 국가만 도입한 제도라지만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대형차 비율은 30%대 수준이다. 72%인 우리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정상적인’ 나라들에서는 제도 도입의 동기가 약한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국산차가 수입차보다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국내 자동차산업 경쟁력에 타격을 준다는 주장도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동차업계와 산업부는 역차별 운운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한다. 현대기아차가 유럽에 팔고 있는 차들보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차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훨씬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부부처가 내놓고 ‘큰 차 타기’를 부추기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어쩌면 이 논란은 평형수를 줄이고 화물과 승객은 늘려 돈을 더 벌려는 선사와, 침몰하는 배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려는 승무원 사이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인지도 모른다. 큰 차 모는 사람들을 죄악시한다고? 아니다. 이건 세월호 참사를 겪은 대한민국의 예의와 책임에 관한 문제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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