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토마스 아킴피스의 영성-신 경건운동의 영성-

예수사랑 | 2014.06.26 13:06:1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토마스 아킴피스의 영성-신 경건운동의 영성-

 

중세후기 즉 13-15세기에는 세속군주들이 수도원이나 제도권 교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교권이나 수도원장은 정치권력에 의존해 있었으므로 교회와 수도원은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때에 이태리 시에나의 성 캐더린, 독일의 헨리 수소와 삭소니의 루돌프, 프랑스의 쟝 샤를르에드 제르송, 화란의 제라드 그로테 등이 주도한 신 경건 운동이 일어났다. 후기 중세시대는 영성의 꽃이 핀 시대였다. 이 영성의 꽃이 종교개혁의 전주곡이 되었다.

 

토마스 아킴피스의 생애
토마스 아킴피스는 1379년 켐펜에서 존과 겔트루데 헤멜캔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어머니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했다. 토마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경영하는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1392년 13살된 토마스는 화란의 데벤터에 위치한 공동생활 형제단에 가입한다. 토마스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기를 갈망했고, 도서와 명상의 조용한 생활을 원했다. 토마스는 신 경건 운동의 형제공동체의 영향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 와서 7년을 보낸 후 수도생활에만 몰입하기를 결심한다. 당시 그의 형 요한은 아그네텐베르그 수도원의 부원장으로 있었다. 당시 규칙에 의하면 형제가 같은 수도원에 머무는 것은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제의 훌륭한 성품이 인정되어 함께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이 내렸다. 토마스는 1406-7년 3가지 종교서약을 발표했다. 그것은 가난, 청결, 순종이었다.

 

1413년에는 33세의 나이로 사제의 직분을 부여받았다. 1425년 그는 아그네텐베르그 수도원의 부원장에 임명되어 신입 수도자를 지도하는 일과 저술과 필사에 전념했다.토마스가 살던 시대는 중세말기로서 세상은 어지러웠다. 황제와 교황사이가 좋지못한 결과 토마스가 속한 수도회는 교황에게 불복종하는 것보다 차라리 망명을 택하여 1429년 하링겐 부근의 루넨케르크의 수도원으로 옮겨갔다.

 

토마스의 형인 존은 건강이 나빠졌으며 더욱이 망명으로 인한 환경변화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3년후에 별세했다. 토마스는 그의 친형의 죽음을 통하여 당시의 종교적 무질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깨달았다."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저서는 이러한 그의 직접적이고 고통스러운 종교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론적인 영적 교훈이 아니라 진실하고 실제적인 교훈을 하고 있다. 1448년 그는 부원장의 자리에 선출되었고, 그후 20년동안 학생이자, 상담자, 필사자 및 저술자로서 매우 조용한 생활을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외에도 설교집, 수도사와 초신자들의 훈육을 위한 글 등 많은 훌륭한 작품을 저술했다. 그는 나이 98세로 종교생활 63년째, 수도생활 58년째 되는 해 1471년에 별세했다.

 

신 경건주의의 특징
첫째, 신경건주의자들의 삶은 소박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탁발수도사들 처럼 걸식하는 삶의 방식을 살지는 않았다. 이들은 사도바울과 사막의 교부들을 따라서 스스로 일하며 자급자족하며 공동생활을 하였다. 남자들은 경건서적 등의 필사본을 만들었고 여자들은 옷감을 짜서 판 수입을 생활비로 지탱하였다.
둘째, 신 경건운동은 지역교회와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
셋째, 이 운동은 영성생활의 원천을 성경에 두었다. 이들은 성경을 묵상했다.
넷째, 이 운동은 서약을 요구하는 규율은 없었지만 공동체 정신을 특별히 강조했다.
다섯째, 이 운동의 주된 관심사는 영적 형성이었다. 신 경건운동은 어느 정도 반 성직주의와 반 지성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아킴피스의 영성
첫째, 그리스도를 본받는 영성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죄를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둘째, 자기가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존재임을 아는 겸손한 영성이다.
셋째, 행함과 실천의 영성이다.
넷째, 순종의 영성이다.
다섯째, 침묵과 고독과 회개의 영성이다. 아킴피스는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영적 평화와 영적 진보를 원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마음 속에 있는 정욕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토마스는 불필요한 잡담은 피하고 목적없는 방문은 피하고 선한 일에 대하여 명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권면한다.
여섯째, 이성보다는 신앙을 우선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영성이다.

 

비판적 성찰
첫째, 세상적 삶에 대한 부정적 피력이다. 이 세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둘째, 공동체보다는 개인적 경건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셋째, 현실도피적이고 내세지향적인 경건이다.

 

토마스가 소속한 "신 경건 운동"의 주도자들은 탁월한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신앙심뿐만 아니라 열정과 사랑에 있어서도 온전한 카톨릭교도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의 형식적인 신앙이나 과도한 형식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대하는 카톨릭 교도들이었다. 그의 저서에는 외형적인 경건의 모양과 가식을 경계하는 경건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겸손과 평화의 정신이 숨쉬고 있다. 이 저서는 신자의 영적 생활을 심화시켜 주는데 훌륭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토마스와 신 경건 운동은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하여 마르틴 루터가 수행한 종교개혁의 길을 열고 있다. 그리고 신 경건운동이 주장한 신학에 있어서 지식보다는 적절한 삶, 경건을 요구한다는 사상은 후대에 개신교 경건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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