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195. 나는 무엇을 세고 있는가

한희철 | 2005.12.02 08:01:1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여러 시간 공원 벤치에 앉아 심심한 시간을 보내던 한 사람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 숫자를 셉니다. 그래도 심심하니까 공원에 있는 가로등이 몇 개인지를 세기도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가 몇 마리인지를 세기도 합니다. 따로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안고 공원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내려놓더니, 아들의 손을 잡고서 걸음마 연습을 시켰습니다.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걷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같이 걷기를 여러 번, 그러더니 아들을 혼자 세워두고 몇 걸음 앞에서 아들을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제자리에 선 채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앞에서 손짓을 하는 아빠를 향해 당장 뛰어가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몸의 균형을 잃고서 넘어져 버립니다. 얼른 아빠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주었지요. 그리고는 또다시 아이를 세워 놓고 아이 앞으로 가 팔을 벌려 손짓을 합니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넘어진 아이는 더욱 조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아빠가 한 걸음 더 아이 쪽으로 다가옵니다. 눈앞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아빠를 향해 아이는 다시 용기를 내어보지만 이번에도 넘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걸음마 연습은 한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공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설 때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공연한 헛수고를 하고 있소. 아이는 오늘 여든 일곱 번을 넘어졌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아이가 몇 번을 넘어졌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아들은 여섯 걸음을 혼자서 걸었답니다."
벤치에 앉은 사람은 아이가 넘어진 숫자를 세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걸을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도 서로 세는 것이 달랐던 것은 관심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대하면서도 그를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그의 결점을 세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의 장점을 눈여겨보는 이도 있습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는 일 속에서 불평거리를 찾아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보람으로 여길 부분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지요. 밝은 면을 바라보는 밝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2005.5.6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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