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214. 한사람의 박수

한희철 | 2005.12.16 16:54:1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 신문 기자가 유명한 성악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악가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공연이 언제였느냐 묻자 성악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성악가가 된지 얼마 안된 때였어요. 그 때 한 작은 도시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지요. 꽉 짜인 일정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고, 그날 따라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하고 기분도 별로 좋지 못했답니다. 겨우 공연을 마치고 숙소로 가다보니 손가방을 놓고 온 것이에요. 다시 공연장으로 지친 발걸음을 돌렸지요. 그런데 나는 손가방을 들고 나오려다 텅 빈 공연장 구석에 앉아있는 한 소녀를 보게 되었어요.
나는 소녀에게 다가가서 공연이 다 끝난 공연장에 혼자 앉아있는 이유를 물었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소녀가 대답을 하더군요. 자신은 돈이 없어 공연장에 올 수가 없었고, 꼭 듣고 싶었던 노래를 듣지 못했다고요. 그래서 텅 빈 무대만이라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라고요.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소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조명도 없고 마이크도 꺼져 있었지만 나는 노래를 불렀답니다. 어느 때 보다도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소녀가 혼자 친 박수였지만 그 박수소리는 지금까지 어느 공연장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커다란 박수소리로 들렸습니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저처럼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요. 바로 그 날 소녀가 제게 보내준 박수소리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셈이지요.”
한 소녀를 위해, 오직 한 소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던 성악가의 모습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자신의 노래를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소녀, 그러나 돈이 없어 공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소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을 때 소녀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바로 그 박수 소리가 오늘의 자기를 있게 했다는 고백이 또한 귀하게 들립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이 그를 위대한 성악가로 만든 셈이지요. 오늘 우리 주변엔 우리의 삶을 지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기억하고 살 수만 있다면, 우리 삶은 많이 달라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치는 박수는 많은 사람이 치는 박수보다도 더 의미 있고 더 힘차게 누군가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마음을 다해 박수를 보내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있기를 빕니다. 2005.6.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