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240. 엉뚱한 대화

한희철 | 2006.01.06 20:01:5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새벽기도를 마치고 세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추분이 지난 뒤로는 갈수록 해가 짧아져 같은 시간에 나서지만 아침의 밝기는 하루가 다르게 느껴진다.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 마침 동녘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맑은 하늘에 은은하면서도 환한 기운이 가득했다.
"야, 동이 터 오는구나!"
하늘을 보며 감탄을 했더니 뒷자리에 앉아있던 막내 규영이가 묻는다.
"뭐라고요? 공이 튄다고요?"
규영이는 '동이 튼다'는 말을 '공이 튄다'는 말로 알아들었던 모양이었다.
"저렇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동이 튼다'고 하는 거야. 해가 동쪽에서 뜨잖아."
그러면서 떠오르는 게 있어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를 외웠더니 이내 소리와 규민이가 따라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시조를 외우다보니 규영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녀석이 어릴 적에 시조 두 개를 줄줄 외웠던 일이 있었다.
"규영이가 어릴 적에 외웠던 시조가 무엇이었지?"
"'태산이 높다 하되'와 '동창이 밝았느냐' 였잖아요?"  
소리가 기억하고 대답을 했다.
"내가 그랬나?"
규영이는 기억을 못했지만 "너 그거 외워서 용돈도 많이 벌었어." 소리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나의 말을 들은 규영이가 "그런데 그게 다 어디 갔지?" 했다.
"어딜 가긴 어딜 가? 다 네 속에 남아 있지."
내가 대답을 했더니 "남아있다니, 어디예요?" 하고 규영이가 의아해 한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해도 시조의 의미가 마음 속에 남아있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규영이는 그 시조를 외워 벌은 돈을 생각하고, 그 돈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를 묻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 소리가 한 마디를 해서 같이 웃었다.
"난 또, 아빠가 규영이 속에 남아있다고 하시길래, 그 때 번 것으로 먹을 걸 사먹어 규영이 몸에 남아있다고 하시는 줄 알았죠."
짧은 시간 식구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달랐다. 그나마 웃음으로 나누는 대화, 웃음으로 받지 못할 일을 두고서는 우리는 대화 중 얼마나 아득한 길을 헤매는 것일지. 2005.10. 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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