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325.인스턴트 시대와 귀곡성

한희철 | 2007.10.29 13:54:4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판소리의 대가였던 송만갑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아직 그가 이름을 날리기 전 한양에서 매년 열리는 판소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을 하면 그는 먼저 동대문 밖에 있는 동묘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관운장 영정 앞에 넙죽 절을 한 뒤에 “제가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 뒤 이번엔 관운장 목소리로 “그동안 연습을 많이 했느냐? 어디 한 곡조 뽑아보아라.”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송만갑은 다시 정중하게 읍을 한 뒤 한 곡조를 불렀습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소리를 마친 뒤에 조심스레 묻곤 이번엔 관운장 목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제법이긴 한데 아직 멀었어. 이 대목에서 이렇게 꺾어야 하고, 저 대목에선 저렇게 자지러져야 하는데 좀 더 연습을 하지 그래.”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 길로 송만갑은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물론 경연대회에는 참가하지도 않고 말이지요. 지리산 어느 움막으로 돌아가 다시 소리를 연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기를 여러 해, 궂은비가 내리는 어느 가을날 목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것도 모르고 노래를 불러대는 송만갑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저 멀리 귀신이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이른바 귀곡성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듬해 상경한 송만갑은 역시 동묘를 찾아가 관운장에게 절을 한 뒤 예전의 행동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제가 왔습니다.”
“그래, 어디 한 곡조 뽑아봐라.”
송만갑은 그 자리에서 귀신이 응답하는 귀곡성을 냅다 불러댔고, 그 노래를 마친 뒤에는 묻기도 전에 스스로 관운장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응, 됐어. 이번엔 한 번 해 봐!”
그렇게 해서 판소리의 대가 송만갑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송만갑의 귀곡성 이야기는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노력과 좌절이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인스턴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즉흥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수 있어야 만족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지연이 되면 못 견뎌  할 뿐만 아니라, 쉽게 얻은 것을 쉽게 버리기도 합니다. 인스턴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송만갑의 이야기가 귀곡성처럼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2007.3.2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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