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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일어난 일을 보라(See What's Happened to Me)

사도행전 김영봉 목사............... 조회 수 739 추천 수 0 2015.08.12 23:58:15
.........
성경본문 : 행1:6-11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년 6월 1일 주일 설교
"내게 일어난 일을 보라"(See What's Happened to Me)
사도행전 1:6-11


1.
지난 목요일은 교회력이 정한 '승천 기념일'(The Day of Ascension)이었습니다. 영어로는 ascension이라고 하여 '위로 오르다'는 뜻인데, 한자로는 '승천'(昇天)이라 하여 '하늘로 오르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부터 40일째 되는 날을 승천일로 지켜 왔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에 기록된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40일 동안 주님은 이 세상 사람도 아니고 저 세상 사람도 아닌,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사셨습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영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렇게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더 이상 '제자'라고 하지 않고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에게 이 기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사랑하고 의지했던 스승이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충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믿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준비되지 않은 사건을 연거푸 당할 때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부활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는데, 헤어지고 나면 다시금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다시 만나면 확인해 볼 항목들을 마음에 품고 다시 만날 것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번 당신을 보여 주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만남이 반복되는 동안에 그들의 혼란은 점차로 수습되었고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을 다 지낸 후, 주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식사를 나누신 후,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십니다. 그 장면을 누가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9절)
이것은 사도들이 본 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사도들도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도 알지 못합니다. 사도들의 눈에는 하늘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도들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제 겨우 부활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는 즈음이었습니다. 혼란을 수습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것이 왔습니다. 부활보다 더 이해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망연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말로 '멘붕'에 빠진 것입니다. 그 때, 흰 옷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나타나서 사도들에게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11절)


2.
사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마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은 조금 전에 목격한 일로 인해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혼란스러워진 그 마음으로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14절에 보면,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매일같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했을 것이고, 또 때로는 잠잠히 묵상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을 것이고, 잠 자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혼란 때문에도 기도했고, 두려움 때문에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열흘 째로 접어들던 날,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빛이 임합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로 지키던 날, 즉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사도들과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십니다. 사도행전에는 그 날의 사건을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행 2:1-4)


성령의 역사는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납니다. 평안할 때는 조용한 방식으로, 절박할 때는 급격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불길처럼, 때로는 홍수처럼, 또 때로는 미풍처럼 그리고 때로는 비둘기처럼 역사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이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일어난 이유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특별했고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50일 동안에 사도들이 경험한 여러 가지의 특별한 사건들로 인해 그들은 특별한 계시와 터치가 필요했습니다. 길고 긴 인류의 역사에 그들만이 경험한 사건들이었기에 그만큼이나 특별한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 사도들은 정신적인 충격으로부터 말끔히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부활 사건과 승천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성령의 계시를 통해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논리와 추리로는 가능하지 않던 일이 하늘의 계시로 인해 풀렸습니다. 혼란도 수습되었고, 두려움도 사라졌고, 의심도 없어졌습니다. 부활과 승천이 믿어졌습니다. '승천'은 육신을 입고 오셨던 주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간 전환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주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온 인류의 주님이요 온 우주의 왕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는 그들의 말과 얼굴 표정과 행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50일 동안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다락방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옵니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인생을 걸만한 위대한 스승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다 경험하고 나니 주님이 달라 보였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스승이나 탁월한 지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의 이해력과 믿음은 놀라운 도약을 경험한 것입니다.


3.
승천의 이야기는 사도들에게도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도 믿기 어려웠겠지만, 그들의 목격담을 읽는 우리도 믿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도들이 받은 성령의 만지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이성을 비추어 주시고 마음을 만져 주실 때에만 이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믿음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고 믿을 수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태도에서 뭔가 중대한 전환점이 오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6절)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라는 말은 로마 군대를 몰아내고 빼앗긴 이스라엘의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자신들은 그 나라의 공신이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그들은 그 희망을 다 버렸는데,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 반복되는 동안에 그 희망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사도들의 질문에 주님은 많이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말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인류의 구원자요 온 세상의 주인인 당신을 이스라엘만의 구원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담담하게 대답하십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7-8절)


주님은 사도들이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리시면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어두운 눈이 열리고 막힌 귀가 뚫리고 의심과 혼란이 일소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셨는지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 하신 일을 그들이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는 오직 성령의 만지심을 위해 기도에 전념할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올리브 산에 오르기에 앞 서 사도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5절)


올리브 산에서 주님이 홀연히 사라지셨을 때, 사도들은 그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으로 돌아가 한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사실, 그 때까지 사도들은 성령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성령의 세례'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성령은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처럼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역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약속대로 성령이 내리셨고, 성령의 비추심 가운데 사도들은 주님에 대한 모든 것을 믿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주님에 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4.
'증인'의 첫 번째 조건은 직접 보는 것입니다.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매우 중대한 것을 보거나 경험하고 나면 사람이 변합니다. 위대한 영혼을 지닌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고, 삶의 위기를 겪고 난 후 인생이 변하기도 하며, 말씀을 읽다가 진리에 부딛혀 변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중대한 만남이나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달라지고 나면 자신을 달라지게 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이 경험한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나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여럿 있으나,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신 그분은 오늘도 여전히 성령을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그분은 온 인류의 구원자이며 동시에 나의 구원자(Savior)요 주님(Lord)이 되실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의 귀로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그분의 손길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을 만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말한 것처럼, 그분과 함께 매일 먹고 마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만 교리를 받아들이는 수준에 있다면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배와 교회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그친다 하면, 참된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수준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보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위선자가 되어 버립니다. 믿는 형식은 있는데 믿음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없으므로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personally)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말은 인격과 인격이 만나 사귐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격식을 차린 상태에서 피상적인 대화만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격식과 형식을 내려 놓고 마음을 활짝 열고 생각과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만나고 사귈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그러한 만남과 사귐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런 만남을 통해 변화를 받고 나면 우리는 증인이 됩니다. 우리 삶에 나타난 변화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증인은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만난 그분을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분에 대해 소개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아갑니다. 먼저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증언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할 수 있다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서라도 구원자이신 주님을 알리고 싶어합니다. 그들도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만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최대의 행복을 얻는 길이며, 그것이 인간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5.
지난 목요일 오전,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두고 나누는 중에 어린이 사역을 섬기고 있는 황희성 전도사님이 어머니 이야기를 하십니다. 전도사님의 가정은 원래 전혀 믿지 않는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이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전도를 받아 처음 믿기 시작하셨고, 이어서 아버지와 오빠가 어머니를 통해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막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딸만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에게 교회에 나가기를 여러 번 권했지만 딸은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면서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랍니다. "너, 나를 보고도 모르겠니? 왜 믿어야 하는지, 믿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나를 보고도 모르겠니?"


다른 말에는 핑게를 대하고 반박할 수 있었는데, 그 말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믿고 나서 진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 다니기 시작했고, 마침내 신학교에 진학하여 사역자의 길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6월 말이면 우리 교회에서의 6년 간의 사역을 접고 어린이 사역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시카고로 떠나십니다. 보내는 마음 섭섭하고 또 아쉽지만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훌륭한 전문가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보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보고도 모르겠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나를 보고도 모르겠니?"라는 말은 흠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도 흠이 있고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만들어내신 변화가 있으니, 그것을 보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아니고는 만들어내지 못할 변화가 내게 일어났으니 그것을 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다 보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자리잡고, 메마르지 않는 감사와 기쁨이 들어차고, 진실한 사랑이 마음에 고입니다. 죄의 유혹이 힘을 잃어 버립니다. 전에는 마음을 사로잡던 것들이 점점 멀어집니다. 돈 씀씀이가 달라지고, 취미가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소망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의 맛을 알게 되고, 거룩함이 주는 감미로움을 맛봅니다. 그것이 증거이며, 그 증거를 가진 사람은 "내게 일어난 일을 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때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십니다. 평온할 때는 잔잔하고 소소한 변화를 일으키시지만, 위급할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특히 고난 중에 주님의 증거는 빛을 발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첫 번째 편지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고난 받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의를 위해 일하다 보면 미움과 손해와 박해를 받게 됩니다. 때로는 죽음의 위협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는 이렇게 격려하십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벧전 3:14-17)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대하려면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 묻습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찌 그렇게 평안합니까?" 그럴 때, 답변할 수 있게 준비해 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 주님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6.
사도들이 주님께 제기한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이 질문 안에는 신적인 능력을 끌어 와서 이 땅의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한꺼번에 싹 쓸어 버리듯 세상을 뒤집어 엎고 싶은 열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있습니다. 특별히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런 갈망을 느낍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미륵을 기다리며, 수퍼맨을 기다립니다.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싶으니 때로 혁명을 일으킵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사도들에게 다른 해법을 주십니다. 그들이 먼저 변하는 것, 그것이 주님의 해법입니다. 진정으로 변화 받으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그로 인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변화가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증인들은 삶으로 그리고 말로 주님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한 인간을 제대로 변화시키는 길이며,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이 세상을 제대로 바꾸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증인입니까? 가까이에서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아는 사람에게 "나를 보고도 모르겠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할 이유가 한 두 가지라도 있습니까? "내가 주님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나에게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 일어난 변화가 있어"라고 말할 것이 있습니까? 물론, 주님 안에 머물러 살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에 붙들리지 마십시오. 이미 변한 것, 이미 해결된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성령을 구하십시오. 그 변화가 점점 깊어질 것이고 또한 넓어질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하나 둘씩 생겨날 때, 우리는 온유하게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내게 일어난 변화를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믿어 당신도 나와 같이 변화 받으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신 것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이 날,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주님을 참되게 알고 만나고 사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주님을 만난 증거가 더 많아지고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희망과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우리의 이웃에게로 흘러나가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참되게 변화되는 그리고 세상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고 예배하는 이 날,
저희 모두에게 성령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주님을 참되게 믿게 하시고
주님과 늘 동행하게 하셔서
저희의 말과 행실이
주님에 대한 증거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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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 레위기 기억해야 할 것들 레20:22-26  최장환 목사  2015-08-11 496
12411 레위기 믿음의 사람 레22:1-22  최장환 목사  2015-08-11 474
12410 에배소서 땅에서 사는 영원한 삶 엡4:25-5:2  강승호 목사  2015-08-11 564
12409 마가복음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3:13-19  김경형 목사  2015-08-10 493
12408 마가복음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막3:7-12  김경형 목사  2015-08-10 420
12407 히브리서 십자가의 삶은 승리한다 히12:2  강종수 목사  2015-08-09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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