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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네니!(Hineni)

창세기 김영봉 목사............... 조회 수 1518 추천 수 0 2015.08.12 23:58:15
.........
성경본문 : 창22:1-14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4년 6월 29일 주일설교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히네니!(Hineni)
창세기 (Genesis) 22:1-14


1.
지난 주말, 저는 노폭(Norfolk)에서 열린 버지니아 연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조영진 감독님은 올 해로 두 번째 연회를 주재하셨습니다. 연회 내의 1천 2백 교회에서 온 2천명이 넘는 연회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긴장한 기색 없이 유연하고 초연하게 회의를 주재하시는 모습이 참 거룩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회 내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 조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고 있음을 목격하며 감사했습니다. 남은2년의 임기 동안에 연회 내에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연회에서 동성애 문제로 인해 시끄러울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습니다. 연합감리교회 장정(The Book of Discipline) 안에 있는 "동성애 행위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되지 않는다"(The practice of homosexuality is incompatible with Christian teaching)라는 문장을 삭제하자는 동의안(resolution)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동의안'은 교단에서 정한 기준만 만족시키면 연합감리교회 목사나 교인 누구나 상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회에서는 이 동의안에 대한 토론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연회에 대한 자세한 보고는 나중에 평신도 연회 대표가 따로 드릴 것입니다. 이미 알려 드린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Youth Pastor로 섬기시는 허건 전도사님이 이번 연회에서 Commissioning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이 안수는 목사로서의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어 교회를 섬기게 하는 안수입니다. 이 안수를 받은 후 2년 동안 모든 절차를 통과하면 정회원 안수(elder ordination in full connection)를 받습니다. 한인 교회에서는 Commissioning 안수를 받고 나면 그 때부터는 '목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그렇게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허 목사님이 안수를 받기 위해 단상에 올라갔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안수하실 때 저도 그의 등에 손을 대고, 주님의 영이 허 목사님을 온전하게 붙드셔서 신실한 목회자로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안수 받는 이에게나 안수하는 이에게 모두 엄숙하고 의미 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안수 받는 자리에 부모님 혹은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초청 받습니다. 감독님과 보좌 목사와 함께 안수 받는 사람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혹은 남편이 아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한 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을 세우는 기도인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2.
렉셔너리가 이번 주에 정해 놓은 본문 중 하나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중 하나가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런 일이 있을 지 얼마 뒤에......(1절)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은 21장에 나오는 하갈과 이스마엘에 관련된 일을 가리킵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지난 주 이창환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으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다 지쳐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백 살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얻게 하십니다. 이삭의 등장과 함께 평온하던 아브라함의 집에 크고 작은 풍랑이 일어납니다.


사라와 하갈의 갈등 그리고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사라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아브라함을 움직여 두 사람을 내어 쫓게 만듭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어 주라고 하십니다. 인간적으로는 차마 그럴 수 없었지만, 하나님에게 다른 뜻이 있음을 믿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보냅니다.


갈등과 분쟁의 요소가 사라지자 오랫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과 같다 할까요? 이젠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삭의 재롱을 즐기며 여생을 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배려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되었습니다. 쫓아 낸 하갈과 이스마엘을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삭을 보고 있노라면 금새 잊혀졌습니다.


그렇게 꿈같은 나날을 지내고 있을 즈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주십니다.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명령입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2절)


'번제'(burnt offering)가 무엇인지를 알면 이 명령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번제는 짐승을 죽여서 피를 모두 흘려 보내고 몸의 뼈 마디 마디를 저미고 잘라서 가지런히 쌓아 놓은 다음에 불을 때어 재만 남을 때까지 태우는 제사입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양이나 염소같은 짐승에게도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일을 어떻게 자기 아들에게 하란 말입니까?


그런 잔인한 명령을 주시면서 시작하는 말을 좀 보십시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
그냥 "이삭"이라고 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이라고 굳이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에 담겨있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네가 네 아들 이삭을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줄을 내가 안다. 그 아들을 나에게 번제로 바쳐라.
참, 하나님은 얄궂기도 하십니다. 백살이 넘어 '손주같은 아들' 재미 보는 것조차 그냥 보지 못하고 훼방하려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안다면 그대로 두고 보면 어떻습니까? 굳이 그것을 빼앗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3절에 보니,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한 잠도 자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침상에 누워 엎치락 뒤치락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동이 터오자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고민스러운 문제로 번민의 밤을 보내보신 분이라면 그 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는 일단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으로 가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번제에 쓸 장작을 준비하고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사흘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 사흘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그 긴 시간 동안 아브라함은 얼마나 많은 번민을 했을까요? 이럴 거라면 차라리 태어나게 하지나 마시지! 백살에 아들 하나 주시고 그것을 다시 바치라 하시나? 데려 가시려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는데, 왜 내 손으로 어린 아들을 잡으라 하시나? 이러실 거라면, 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하셨나? 그 자식이라도 옆에 두게 하시지! 내가 헛 것을 본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잠시 도신 것은 아닐까? 이 하나님을 계속 믿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이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흔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또 다른 생각들이 맞서 싸웠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었나?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한 번이고 제대로 말씀하신 적이 있었나? 언제나 하나님은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셨고 알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셨나? 그런데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일이 없지 않았나? 고향을 떠날 때도 그랬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분을 믿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에 그는 사흘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을 것입니다.


3.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 밝힙니다.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 구절을 읽고 이렇게 질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지하신데 왜 시험을 하셨습니까?" 전지하신 하나님이 몰랐다면 말이 안 되고, 알았다면 시험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 질문은 시험의 진짜 의도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시험의 진짜 목적은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력을 키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SAT가 생긴 본래 이유는 높은 기준을 정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그 기준까지 실력을 키우도록 도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변질되어 본래 목적은 잃어 버리고 어떻게 해서든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벼랑 끝에 세우셔서 한 단계 뛰어 오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아브라함은 그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받고 나서 사흘 길을 가는 동안 혹독한 마음의 시험을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믿어온 하나님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거쳐야 했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사흘길을 가는 동안 그는 천국과 지옥을 수 십번 오고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등질 것을 여러 번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 많은 의문과 회의와 갈등과 번민을 거쳐 마침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아브라함은 그의 영적 여정에 있어서 거대한 도약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12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목에 칼을 들이대자 주님의 천사가 말리며 이렇게 말하지요.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2절)

이 말씀을 얼른 보면, 아브라함이 시험에 통과할지 못할지를 하나님이 몰랐던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배우자가 어떤 일로 여러분을 감동케 했다 칩시다. 그래서 "와, 당신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줄을 이제야 알겠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대꾸했다 칩시다. "아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제까지 줄을 몰랐단 말이예요?" 그러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습니까?


우리가 누구에게 "......한 줄을 내가 이제야 알았다"라고 말할 경우, 그 말은 "전에는 몰랐다"는 뜻이 아니지요. "지금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하니 내가 너무 기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과거에는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마침내 마음의 시험을 통과하여 믿음의 도약을 이룬 것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해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믿음으로 도약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시험이 있기 전에 그는 영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머지 여생을 '손주 같은 아들'의 재롱을 즐기는 것으로 보낼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 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영적으로 죽을 것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때로 실패도 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일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의 영적 여정을 걸어 오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삶의 태도를 몸에 익혔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즉시로 응답하고, 그분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드리고, 그분이 가라시면 어디든 가려는 마음 자세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한 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시자, 그는 영적 잠에서 화들짝 깨어나 "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응답합니다.


1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대답 즉 "예,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히네니"(Hineni)입니다. 정확히 번역하면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Here I am)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문장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응답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대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행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히네니", 그것은 아브라함의 삶의 습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든 응답하겠다는 태도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엇이든 드리겠다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시면 무엇이든 하겠고, 가라시면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과 처사가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 그분에게 "히네니!"라고 응답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응답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을 두고 시험하십니다. 백살에 얻은 손주같은 아들을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흘 동안 밤 잠을 자지 못하고 피를 말리는 번민을 하게 만든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기로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요구에서 제외될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다시금 확인한 것입니다.


4.
히네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마음대로 하십시오.
Here I am. Do to me whatever You want.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이르러야 할 최종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겪어 보아 알기에 더 이상 그분의 뜻을 물으려 하지 않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분이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 싶어도, 혹은 그분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히네니!"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거룩한 뜻을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열어놓고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맡기고 드리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 다른 것은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돼요. "하나님, 이곳만은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 다른 것은 싫어요. 저는 꼭 이것만 원해요." "하나님, 제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 어떻게 순종하란 말입니까?"


물론, 믿음의 초보 단계에서는 그러셔도 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말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며 "히네니!"라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을 두고 "히네니!"라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식을 두고 "히네니!"라고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그분의 뜻을 위해 사용되도록 내어 드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북한 선교 주일을 지킵니다. 교회 설립 60주년이 되는 해로부터 매 년 6월 25일에서 가까운 주일에 북한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특별 헌금을 드려 왔습니다. 오늘 드린 선교 헌금은 전액 그대로 저축해 두었다가 북한이 개방되거나 통일되는 날에 즉시로 들어가 교회를 재건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시며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선교 헌금은 물질로써 "히네니!"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을 만나 마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뉴저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넉넉한 은퇴 자금을 만들어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시는 분입니다. 현역으로 일하는 중에도 교회 일과 선교하는 일에 아낌없이 물질을 드리며 사신 분입니다. 자녀들도 주류 사회에서 상당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그 부부는 아들이 마련한 Vacation Home에 내려와 풍족하고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6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는 그 부부는 오는 9월에 7년을 목표로 우간다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수입의 십일조를 철칙으로 알고 그 이상을 드리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인생의 십일조로 마지막 헌신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여유로운데 그 시간을 놀고 즐기면서 죽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은퇴 자금으로 우간다에서 헌신하시는 선교사님을 도우러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신다면 70년의 십일조인 7년을 채우고 싶지만, 그것은 하나님 소관이니 일단 떠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며 묵상하는데 그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히네니!"라고 응답하고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생명을 하나님의 처분대로 쓰도록 맡긴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름에 대해 "히네니!"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복음이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북한 땅에도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맡긴 사람들이 여럿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박중현 장로님도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히네니!"라고 응답하시고는 내성 결핵 치료를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방문하십니다.


이번 연회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안수 예배가 끝나면 감독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소명을 느끼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합니다. 이번에 함께 참석했던 우리 교회 교우 한 분이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이제 막 은퇴하고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까 모색하고 있던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허걱, 저 나이에 목사가 되려 하나?"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나중에 그 교우께서 그러십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바치겠다는 뜻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분도 역시 "히네니!"의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5.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은 모두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선교지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선 자리에서 선교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늘 하나님의 부름에 예민하여 언제든지 "히네니!"라고 응답하고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성숙한 신앙이란 자신의 껍질 속에서 나와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믿음입니다.


연합감리교회 찬송가에 수록된 찬송 중에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의 주제곡이라고 할 정도로 연합감리교회 교인들이 모인 집회에서 자주 불려지는 찬송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찬송가에는 아직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1.
바다와 하늘의 주인 나,
내 백성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어둠과 죄에 갇혀 사는 모든 이들을
나의 손이 구원할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창조한 나,
내가 그들의 어둠을 밝혀 주겠다.
나의 빛을 그들에게 가져갈 사람이 누구냐?
내가 누구를 보내랴?
(후렴)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저입니다.
한 밤중에 주님이 부르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주님, 저를 이끌어 주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주님의 백성을 제 마음에 품겠습니다.
2.
눈과 비의 주인 나,
내 백성의 아픔을 내가 담당했다.
그들이 나를 떠났기에
나는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울었다.
그들의 돌같은 마음을 내가 깨뜨리겠다.
오직 사랑의 마음만을 그들에게 주겠다.
내 말을 그들에게 주겠다.
내가 누구를 보내랴?
3.
바람과 불길의 주인 나,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 입은 사람들을 돌보겠다.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겠다.
나의 손이 구원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은 빵으로 먹여
그들의 영혼을 배부르게 할 것이다.
내가 내 생명을 그들에게 줄 것이다.
내가 누구를 보내랴?
1.
I, the Lord of sea and sky,
I have heard My people cry.
All who dwell in dark and sin,
My hand will save.
I who made the stars of night,
I will make their darkness bright.
Who will bear My light to them?
Whom shall I send?
(refrain)
Here I am Lord, Is it I Lord.
I have heard You calling in the night.
I will go Lord, if You lead me.
I will hold Your people in my heart.
2.
I, the Lord of snow and rain,
I have borne my peoples pain.
I have wept for love of them, They turn away.
I will break their hearts of stone,
Give them hearts for love alone.
I will speak My word to them,
Whom shall I send?
3.
I, the Lord of wind and flame,
I will tend the poor and lame.
I will set a feast for them,
My hand will save
Finest bread I will provide,
Till their hearts be satisfied.
I will give My life to them,
Whom shall I send?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물질은 어디에 있고, 여러분의 시간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나 아무도 손 못 대도록 자신만의 방 안에 꼭꼭 숨겨 두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고 썩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열어 놓고 "주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하소서"라고 내어 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과 물질과 시간을 통해 거룩하고 영원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히네니! 주여, 제가 여기 있습니다! Here I am, Lord! 부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고백에 이르게 되기를 그리고 주님 손에 쓰임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의 생명이
저의 물질이
저의 가족이
저의 직업이
저의 시간이
여기
주님 앞에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사용하소서.
주님 뜻 이루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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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25 마태복음 힘이 있습니까? 마7:24-27  류공석 목사  2015-08-14 626
12424 마태복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5-23  류공석 목사  2015-08-14 694
12423 마태복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심은... 마7:13-14  류공석 목사  2015-08-14 667
12422 마태복음 그러므로의 황금률 마7:12  류공석 목사  2015-08-14 529
12421 창세기 하나님의 사인 읽기(Reading the Signs of God) 창24:10-14  김영봉 목사  2015-08-12 945
» 창세기 히네니!(Hineni) 창22:1-14  김영봉 목사  2015-08-12 1518
12419 창세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창21:8~21  김영봉 목사  2015-08-12 1171
12418 시편 하늘 아빠(Heavenly Daddy) 시8:1-9  김영봉 목사  2015-08-12 802
12417 사도행전 신비의 세계로!(Into the World of Mysteries) 행2:1-8, 12-13  김영봉 목사  2015-08-12 798
12416 사도행전 내게 일어난 일을 보라(See What's Happened to Me) 행1:6-11  김영봉 목사  2015-08-12 739
12415 요한복음 보게 하소서(Let Me See You) 요14:1-10  김영봉 목사  2015-08-12 869
12414 요한복음 어머니를 찾습니다 요10:11-15  김영봉 목사  2015-08-12 520
12413 신명기 최고의 선택은 무엇인가? 신30:19  한태완 목사  2015-08-12 1019
12412 레위기 기억해야 할 것들 레20:22-26  최장환 목사  2015-08-11 496
12411 레위기 믿음의 사람 레22:1-22  최장환 목사  2015-08-11 474
12410 에배소서 땅에서 사는 영원한 삶 엡4:25-5:2  강승호 목사  2015-08-11 564
12409 마가복음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3:13-19  김경형 목사  2015-08-10 493
12408 마가복음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막3:7-12  김경형 목사  2015-08-10 420
12407 히브리서 십자가의 삶은 승리한다 히12:2  강종수 목사  2015-08-09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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