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 세례 요한의 영성

김부겸 목사 | 2016.05.16 23:58:0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마3:4
설교자
김부겸 목사
참고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36345327

2011년 8월 28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3장 4절

설교제목 : 세례 요한의 영성

 
<영성시>

 

기도하던 날에


배정희


찾아가서

고요한 음성으로

마음을 모두어

아뢰올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살아온 길과

주위를 살펴볼 때

부끄러움으로 넘쳐 있어

용서를 구합니다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음성으로

거듭날 은총을 허락하소서


어느 곳 어디에서든

살아가는 곳에서

빛이 되고

편지가 되어


그 말씀을 가슴에 담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손을 잡게 하소서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마태 3:4)】


  <성경 이야기>

  오늘 성경에는 세례요한이 등장합니다. 유대광야에서 회개운동을 일으키는 요한이라는 사람, 그 요한은 물로서 세례를 주는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느낀 점>

  오늘 성경을 읽고 느낀 점을 3가지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마태라는 사람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늘의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마태라는 이인데, 마태는 세례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철저하게 ‘상하(上下) 관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水)로 세례를 주는 반면 예수는 불(火)로 세례를 주는 이이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마태가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발상은 옳지 않습니다.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차원에 상하 관계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차원에서 볼 때, 개별적 한 인간자아의 독립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독립된 인간자아가 모든 진리를 우월적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특히 요한과 비교해서-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다중지성(多衆知性, swarm intelligence, 집단지성)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인데, 그렇습니다. 한 개인이 우월적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진리는 각 개인과 개인들 사이에서 모자이크처럼 맞춰지면서 본래의 그 위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와 요한은 어느 한쪽이 우월적 지위를 갖는 상하관계의 존재들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서 하느님의 진리를 모자이크처럼 밝혀주는 ‘협동적 관계의 존재들’인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마태라는 이는 이런 진리의 차원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요한의 관계를 ‘상하 관계’로 보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둘째, 요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도시 문명에 대한 경고’입니다. 요한은 어느 한 개개인의 삶들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 아니고, 도시문명을 일구며 살아가는 인류에 대해서 정말 무섭게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문명의 경향성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부드러움’입니다. 도시는 모든 면에서 부드럽습니다. 달콤하지요. 편안합니다. 안락하지요. 먹는 음식, 입는 옷, 사람들의 말투, 몸짓 … 즉, 모든 차원에서 도시인들은 부드러움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에 대해서도 부드러움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달콤한 하나님이 아니면 도시의 문명 속에서는 적응이 안 됩니다. 도태되지요.


  지금 당장 대도시의 부유한 동네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말씀에 대해서 현미경을 들이대 보십시오. 그 도시 교회의 메시지에 ‘광야의 정신’이 있나요?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거세(去勢)된 광야, 즉 본질적 광야가 아닌 도시적 취향으로 윤색된 광야인 것입니다. (광야 테라스)


  그러나 본질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인생은 - 삶은 - 우주는 - 하느님은 - 진리는 절대 부드럽지 않습니다. 거칠고 위험합니다. 부드럽지 않고 딱딱합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부드러움의 이데올로기가 감추고 있는 거칠고 딱딱한 인생의 진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셋째, 요한의 메시지 중 결론은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마태 3:8)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한 마디로 말하면, ‘실천’입니다. 행동입니다. 매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행동’이 왜 중요할까요? 행동이란 모든 이론과 철학, 모든 영성적 탐구와 존재의 연구 행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특효약입니다. 인간을 하느님을 닮은 위대한 성자로 도약시키는 특효약은 ‘행동’입니다. 인식이나 생각, 독서나 토론을 통해서 도약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성자로 도약시키는 특효약은 행동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행동, 진리의 직접적인 실천만이 우리를 ‘돌의 자손’에서 ‘하느님의 자손’으로 도약시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세례요한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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