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칼럼니스트No.1107 ]일그러진 말의 자리 굳힘

박강문 | 2005.01.08 11:18:3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박강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좀 지나면 사이버 세계에 꽤 퍼진다. 이른바 ‘펌’이 크게 기여한다. 굳이 ‘이른바’라고 붙이는 것은, ‘펌’이라는 말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푸다’라는 동사는 어간 ‘푸’에 어미 ‘어’를 붙이면 ‘푸어’가 되지 않고 ‘퍼’가 된다. 여기에 명사형 어미 ‘ㅁ’을 붙여 ‘펌’이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끄다’도 ‘푸다’와 같은 불규칙 동사다. ‘끄다’의 ‘꺼’를 바탕으로 삼아 ‘껌’이라는 말을 만들 수 없음은 물론이다. ‘품’이고 ‘끔’일 뿐이다. 이제 어지간히 자리가 다져진 ‘펌’도 마땅치 않은데 ‘펀객’이란 말마저 나온다. 아마 ‘퍼온 손님’이라는 뜻일 텐데 더욱 마땅치 않다.

‘펌’이 ‘퍼옴’의 준말이라고 강변할지 모르나, ‘퍼옴’은 줄일 수 없는 말이다. 하기는 어리거나 젊은 일부 젊은이들이 온라인 의사소통 때 ‘내용’을 ‘냉’으로 줄이고 ‘내일 시험이라 서울 못 가.’를 ‘낼 셤이라 설 못 가.’로 쓰기도 하는 판이다. 이런 말쓰기는 사사롭게 할 수는 있어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마찬가지로 일부가 말이 되지 않게 ‘펌’이라 쓰고 있다 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의하는 이들마저 비판 없이 그대로 씀으로써 그런 말의 자리를 굳혀 주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신문기자들도 일그러진 말이 버젓이 자리를 굳히는 데 한몫 하는 때가 많은데, 생각해 볼 문제다. ‘얼짱’ ‘몸짱’ 따위가 지면에 오르면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다. 글 쓰는 이는 새 말과 새 표현법을 만들기도 하지만 언어의 급속한 변화를 막는 방벽 구실도 한다. 언어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화이며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운반체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또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의 책무다. 일그러진 말이나 표현을 거르는 것 또한 그들의 큰 책무다.

- 파인드올 200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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