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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
사무엘상 4:1~11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 가운데에 함께 있기를 빕니다.
한국 개신교는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편향 확증에 따라 정치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신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 가치에 반하는 선택을 한 교인이 많았습니다. 차별금지법의 동성애 조항을 침소봉대하던 이들의 아전인수 같아 의아합니다. 1972년에 제정된 유신헌법은 한국 개신교를 양분시켰습니다. 유신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들에게 유신을 찬성하는 이들이 덮어씌운 굴레가 정치화 논리였습니다. 반독재신학자들은 유신을 반대하였고, 반공신학자들은 유신반대자들의 집회와 성명을 ‘정치신학’이라고 몰아세우며 ‘교회는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자기의 주장을 신문에 광고하고 기도회를 개최하는 자가당착을 저질렀습니다.
정치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기피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연구하여 발전시켜야 할 공공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정치에 간여하지 말라’는 말은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정치란 공동체 안에 내재하는 갈등을 풀어가는 집단지성의 기술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권. 정의, 평화, 약자, 환경, 에너지, 성장 등 정치적 영역에서 다루는 주제는 교회에서도 설교해야 마땅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대정치사건이었고, 모세와 파라오의 갈등도 정치문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사무엘서도 사사체제에서 왕정체제로 변화하는 정치변천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이나 역대 왕들의 이야기 역시 정치입니다. 예언자들의 외침은 거의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인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상황도 정치문제입니다.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가져와 전쟁에 이용하는 것은 종교를 정치화하는 수법입니다. 거기에 제사장을 대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나 군종제도가 그런 것입니다. 교회는 정치적 이상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이 지향하는 정치의 가치가 교회에서 외쳐질 때 비로소 세속 정치의 성숙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파를 초월하여야 한다는 점과 세속 정치 그 너머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여야 합니다.
복음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변성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성입니다. 복음의 불변성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영원하고 유일한 구주이심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습니다. 복음의 현실성이란 복음이 시제와 만날 때 시간과 공간을 거룩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의 정치화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거룩한 정치가 현실화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찬송: 342 너 시험을 당해 https://youtu.be/jZS3R2ec5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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