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칼럼니스트No.1134 ]팩스여 굿바이! 그러나 너는 대단했었어

이재일 | 2005.01.31 11:11:5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2005년 1월 28일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보통 '팩스'로 불리는 팩시밀리가 우리나라에서 선을 보인 것은 1980년대 초이다. 복사기로 유명한 신도리코가 맨 처음 제품을 내놓으면서 '팩스시대'의 막이 올랐다. 그러나 팩스의 보급이 일반화된 것은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라고 하겠다. 팩스가 처음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물건이 어디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아무리 복잡한 그림이라도, 일정한 크기에 맞춰 전송하면 똑같은 모양의 것이 다른 곳까지 전달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각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팩시밀리는 신문사에서도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첨단 통신기기였다. 그 이전만 해도 기자들이 바깥에서 기사를 송고하려면 무조건 전화로 내용을 불러줘야 했다. 그러나 팩스가 있는 곳에서는 얼른 원고지나 종이에 써서 전송하면 일은 끝났다. 현장약도 같은 것은 말로는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서 따로 회사로 보내야 했지만, 팩스는 그럴 필요가 없어 여간 편리하지 않았다.

특히 외국 특파원들은 비싼 전화료를 물지 않고도 쉽고 빠르게 기사를 송고할 수 있었다. 특파원은 또 본사에서 신문이 발행되자마자 자신의 기사를 팩스로 받아 보았다. 그전 같으면 적어도 1주일 뒤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팩스가 없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니 팩스에 대한 기자들의 사랑은 각별했다고 하겠다.

5년 전의 일이다. 어느 신문에서 '회사원들은 정보의 교환을 e-메일이나 인스턴트메신저로 하기 때문에 사무실의 팩시밀리는 무용지물이 되어 먼지가 가득하다'는 박스기사를 실었다. 그 때 이 기사를 본 필자는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가 신문사에 있을 때는 정말로 사랑 받은 물건이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오래된 기술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일. 팩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많은 정보를 빠른 속도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해서 '정보의 고속도로'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용이 보편화되면서 팩스가 처리량이나 속도면에서 e-메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떨어지자 서서히 푸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이 때 벌써 '팩스 무용론'이 대두되었다. 네티즌이 계속 늘어날수록 웬만한 정보처리는 종이가 필요 없는 인터넷으로 해버리게 된 만큼 팩스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메이커나 전문가들의 관심을 그 시기가 언제쯤인가에 모아졌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스팸메일'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초보 네티즌에게는 스팸메일도 반가운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팩스는 사정이 달랐다.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극성을 부렸다. 오죽하면 '팩스공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사실 인터넷으로 흘러 들어오는 스팸메일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팩스는 그렇지가 않다. 팩스는 이쪽의 뜻과는 관계없이 온갖 내용을 보내오기 때문에 비싼 용지를 소모시킨다. 뿐만 아니라 저쪽에서의 전송이 끝나야 이쪽에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팩스를 제때에 사용할 수 없게 하는 피해까지 입히게 된다. 이쯤 되면 팩스의 사용가치가 떨어져 퇴출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는 것이다. 팩스가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도 어느새 10년이나 된다. 그러나 아직은 건재(?)하고 있으니 생명력이 대단하다. 컴맹·넷맹이 있고, 팩스사용이 몸에 벤 사람들이 있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1950년대 캐나다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보고서가 나왔다. 내용은 '새로운 장치가 널리 보급되면, 신문사의 인쇄시설이나 배달시스템이 사라지게 된다. 가정에서 라디오채널을 맞추는 것처럼 다이얼만 돌리면 새로운 뉴스를 받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장치'란 바로 팩스를 말한다. '집집마다 신문을 팩스로 받아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다소 빗나갔지만 팩스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처럼 수십년 동안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군림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사라질 팩스가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이와 관련한 내용이 최근 한 일간지에 보도되어 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마디로 '인터넷 시대를 맞아 팩스가 '퇴역'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도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팩스 판매량은 2000년 1500만 대에서 2001년 1300만 대로 줄었다. 기업이 낸 전화요금에서 팩스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13%에서 2004년 4% 수준으로 떨어졌다. 10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팩스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팩스의 탄생기원은 18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틀랜드 발명가 알렉산더 베인은 두 개의 바늘을 유선으로 연결시켜 한 쪽의 움직임을 다른 쪽에서 그대로 따라하는 장치에 대한 특허를 냈다. 이 장치는 당시 200개 단어를 보내는 데 1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팩스는 문서에 빛을 비춰 반사되는 모습을 거울과 렌즈로 모아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서 보내는 방식. 문서 한 장을 보내는 데 몇 초가 안 걸릴 정도로 빨라졌다. 1970년대까지 팩스는 신문사에서 사진을 보내거나 기상청에서 일기도를 보내는 데 쓰이는 등 용도가 극히 한정됐다. 선진국에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이다. 국내에서 팩스가 처음 생산된 건 1981년. 사무용기기 업체인 신도리코가 ‘FAX3300H’라는 모델을 내놓고 ‘팩스 시대’를 열었다.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업체에서도 팩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팩스 판매량은 2000년 1500만 대에서 2001년 1300만 대로 줄었다. 기업이 낸 전화요금에서 팩스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5년 13%에서 2004년 4% 수준으로 떨어졌다. 10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내 팩스 판매량은 2002년을 정점으로 계속 줄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2년 12만대까지 올라갔다가 2003년 11만7천대, 2004년 11만6천대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5년에는 11만5천대, 2006년에는 11만2천대로 계속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팩스가 쇠락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e-메일 때문이다. e-메일은 별도의 통화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 종이나 잉크 값도 안 든다. 팩스처럼 뭐가 들어왔는지 계속 살펴야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팩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당장 사라질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선 고개를 젓는다. 시골이나 저개발국처럼 아직 인터넷 사용이 불편한 곳이 있고, 팩스를 써야하는 업종도 있다. 수많은 증서가 오가는 부동산업계나 서명이나 인장이 첨부된 서류를 많이 쓰는 법조계에선 당분간 팩스를 완전히 버리지 못할 전망이다.』

이 신문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인터넷 보안기술이 발전하고 전자서명이 일반화되면 팩스의 이런 장점은 더 이상 효용가지를 잃게 되면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 시기가 언제쯤이 될는지는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렵다. 전자계산기나 나타나면서 주판이 어느새 사라졌듯이, e-메일 때문에 팩스가 자리를 빼앗기고 있음을 볼 때 '발전된 상위기술이 하위기술을 도태시킨다'는 초보적인 과학이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라디오가 발명되면서 도태될 것으로 여겨졌던 신문이 계속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TV가 등장하면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라디오 역시 나름대로의 영역을 굳히며 살아남았다. 팩스도 이처럼 e-메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팩스가 인간사회에 남긴 '업적'은 길이 남을 것이고, 인간들에게 안겨주었던 고마움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200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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