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묵상나눔 › 열매 맺지 못하는 자는 죽이는 자가 된다 -윤용 목사

LAvey | 2020.03.29 21:12:3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91700682_2800812223305815_7686364470393700352_o.jpg

[열매 맺지 못하는 자는 죽이는 자가 된다]

(마가복음 12:1-17)


1.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비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신 주님이
이제 비유로 말씀하신다.

(막 12:1-3, 새번역) [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2]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3]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비유는,
포도원 소작농들이 결국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그들도 죽임을 당하는 포도원을 빼앗기는
비참한 결과로 끝마쳐졌다.

이 비유는 당연히 열매 맺지 못하고
엉뚱한 짓에 골몰하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 관한 비유였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죽이려 했다.
다만 사람들이 두려워 죽이지 못하고
기회만 엿보게 되었다.

(막 12:12, 새번역) 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인 줄 알아차리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2. 이 비유를 주신 이유, 죽이려 한 이유


주님은 왜 이 비유를 주셨을까?
하나님이 이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었다.
이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종교지도자들은 알았다.
그렇다면 돌이켜 열매 맺는 백성으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삶을 거부하고
비유의 내용과 똑같이
주님을 죽이려고 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들을 죽이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포도원을 빼앗기는 비참한 결과가
이제 불보듯 뻔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돌이킬 기회를
알고도 거부한 그들은 참으로 악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종교지도자들은 돌이키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알고 모세의 율법의 정신을 안다면
깨닫게 하시는 주의 말씀을 들으면
돌이켰어야 하지 않겠는자?

왜 그들은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주님을 죽이는 무서운 길로
계속 돌진해 간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남을 죽이는 길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해서 살아간다는 말이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을
박해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주님은 자신의 이익에 치명적 손실을 끼치는 존재이기에
주님의 말씀이 아무리 옳아도 상관하지 않고
죽이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열매 맺는 삶이 중요한 이유는,
열매 맺지 못하면 종교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을 박해하고
폭력까지 행사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세습을 반대한다고 해서
사람을 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어느 대형교회 교인의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유다.


3 열매 맺는 삶은?


그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열매 맺는 삶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세금 논쟁에서 주님은 열매 맺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가능한 삶인지를 가르치신다.

주님의 약점을 잡아서 주님을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주님께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지
바치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을 때 주님이 대답하셨다.

(막 12:17,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그들은 예수께 경탄하였다.

열매 맺는 삶은
동전 안에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듯,
자신의 내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음을
기억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정치와 경제와 세상의 논리에 사로잡혀서
그 속에서 자신의 생존과 이익에만 몰두하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 맺는 삶은 눈에 보이는 황제의 형상에 집중하지 않고,
즉 줘야 할 부분은 주고
손해를 봐야 한다면 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내면 속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가야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을 박해하고 거짓을 행하고
결국은 사람을 죽이려 하는 마음까지 가지는
비참한 상태에서 돌이켜 벗어날 수 있다.


4. 나는?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다.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나에게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분이 나타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선동을 일삼더니
감옥에 가 있는 자의 소위 '옥중서신'을
누군가 낭독하는 동영상을 보라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분이 보내왔다.

어이가 없고 말을 할 가치조차 없어서
그냥 대화방을 나갔더니
다시 보내고 또 대화를 걸어오셨다.

몇 마디 말을 나누었지만
결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결국 카톡을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실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치를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평과 정의'라는 성경적 관점으로
이 나라가 제대로 흘러가길 원하는 마음이 있지만
신자들이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마치 어떤 정치적 신념이 나라를 살리는 것처럼,
그러면 자신도 살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을 싫어한다.

신자는 공평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투표를 하는 것으로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

그것은 그냥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세상이 바뀐다거나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즉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해야 하지만,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열매 맺는 신자의 삶이 되기 위해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리 정치적으로 옳아도 열매는 맺을 수 없다.

나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참된 열매는 인격과 성품에 맺히는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라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신자가 맺을 열매일 텐데,
나는 어떻게 해야 이런 열매들을 맺을 수 있을까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화두다.

열매 맺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어떤 견해를 가진다 해도
결국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그렇다면 자기 이익의 관점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국 사람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열매 맺는 삶이 나에게 가장 중요해서
나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삶을 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서 주님과 인격적인 소통을 하는 것이
결국 주님을 알아가게 하고
주님을 닮아가게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주일이다.
온 맘으로 예배하는 기쁘고 감사한 날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예배해야 하는
다소 슬픈 날이기도 하다.

성도들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예배하는 예배를 더 열심히 준비한다.
온라인으로 실시간 예배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변수가 많다.

그 변수들을 하나하나 체크해서
예배 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닌지라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을 연습해서
제대로 온라인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있다.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올바른 관점을 성도들께 제시해 드려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도
당연히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코로나 19라는 엄청난 상황 속에서
이렇게라도 예배하는 것이 감사하지만,
속히 이 사태가 진정되어서
직접 대면해서 예배하고 나눔도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든 저런 모습이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함께 열매 맺는 신자로 세워져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길,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열매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애통하며,
깨닫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겸손히 주의 긍휼을 구하는 성도들과 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

첨부 [1]

댓글 쓰기

목록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