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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 떼를 구출해 내겠다 -윤용 목사

묵상나눔 LAvey............... 조회 수 74 추천 수 0 2020.04.15 22:2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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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 떼를 구출해 내겠다]

(에스겔 34:1-16)


1. 목자들의 타락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타락했다.

(겔 34:2-3, 새번역) [2]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성범죄를 저지르고 재정비리를 저지르고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도 타락이지만,
모든 타락의 근원으로 들어가면
자기 배는 불리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양 떼를 돌보기는 커녕
강압과 목력으로 양 떼를 다스리기까지 했다.

(겔 34:4, 새번역)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자신은 양들을 잡아먹으며 배를 불리고 양들은 굶기면서
심지어 강압과 폭력으로 양들을 다스리는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 목자의 타락의 모습이다.

지도자는 늘 이런 함정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자기 배를 불리고 양 떼를 굶길 위험이다.

양들을 돌보아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음에도
양들을 잡아 먹으며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무서운 유혹에 사로잡힐 위험이다.

무거운 책임은 외면하고
무서운 유혹에 자신을 다 내어줘버린
타락한 이스라엘 목자들은
목자의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다.


2. 하나님의 해결법


목자들의 타락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떤 해결책을 사용하실까?

(겔 34:11-12, 새번역)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하나님의 해결책은 하나님이 직접 양 떼를 찾아서
직접 돌보아 주시는 것이었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양 떼를 구해 내실 것이다.

양들에게 희망은 다른 어느 누구가 아니라
참 목자이신 하나님 자신이다.
양들을 풍족하게 먹이실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기 때문이다.

(겔 34:14, 새번역)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기름진 초원에서 양들을 먹이고
좋은 목장을 만들어 거기 눕게 하고
좋은 풀을 뜯어 먹도록 하실 분은
다른 어떤 목자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직 하나님이 직접 하셔야 할 일이다.

참된 회복은 다른 어떤 목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직접 하셔야 참된 회복이 일어난다.
하나님만이 참된 회복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셔야 길 잃음에서 회복되고,
부러지고 상한 것에서 회복되고
약한 것도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회복에는 충격적인 내용도 들어간다.

(겔 34:16, 새번역)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살지고 힘센 것들은 하나님이 멸하신다는 사실이다.
참된 회복에서 꼭 들어가는 내용은
살지고 힘센 것들,
그 힘으로 다른 양들을 잡아 먹은 자들,
그래서 자신의 배만 불린 자들을 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회복은 심판이 반드시 들어간다.
악한 목자, 악한 양들을 심판하지 않고서는
참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변치 않는 하나님의 해결법


사실 찢기고 상하고 길 잃은 양들은 구하시고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멸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방법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고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하나님의 해결법이었다.
이 해결법은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 방법으로 사역하셨고,
이 방법으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셨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

즉 길 잃은 자들, 상한 자들, 죽어가는 자들,
도저히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시에 무시받으며 살아갔던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는
전혀 함께 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그들에게는 '회칠한 무덤이여.'
또는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거친 말들까지 서슴지 않으셨다.

정치와 종교지도자들은 '목자'들이
살지고 배불렀고 힘이 세어서
양들에게 폭력과 강압을 사용하는
악한 목자들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 누군가 '좋은 목자'인 사람을 찾아가야 할까?


목자의 신분을 가진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면
반면에 양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누군가 '좋은 목자'인 사람을 찾을 함정이다.

양들의 중요한 습성이 의존성이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에
자신을 인도할 목자가 꼭 필요한 존재가 양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양이다.
그래서 목자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필요성을 가지고 사람을 찾는다는 점이다.

사람이 좋은 목자가 될 것이라고 믿고
사람 목자를 열심히 찾는다.
그러다가 목자라고 주장하는 자를 만났는데
살을 뜯기고 지나친 종교적 행위를 하도록
강압을 당하고 정신적 폭력도 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자'는 살이 찌기 시작하고
힘이 세어지기 시작한다.
양이 된 사람들은 그 힘센 목자에게 중독된다.
그 나쁜 목자에게 더 종속되고
왜곡된 신앙생활과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렇게 헛된 것에 빠진 양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살이 찌고 힘이 세어져서
양들을 마음대로 잡아 먹고
자신들의 배를 더욱 불리는 나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도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치 지도자는 잘 살펴서
선거로 구별해야 하고
종교지도자는 잘 살펴서
거기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백성 즉 시민과, 성도 곧 양들은
잡아 먹히고 죽임 당하고 빼앗기고 착취 당하는
슬프고 비참한 운명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선거철마다 고개를 땅에 쳐박고 절을 하면서
표를 구걸했다가,
막상 자리를 보존하고 나면
온갖 거짓으로 패악질을 하면서
시민들을 착취하는 법을 만들고
자신들을 배를 더욱 불리는 짓을
언제까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할까?

언제까지 목소리를 깔고 거룩한 척면서
뒤로는 자신의 배를 불리고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고
은밀하게 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목자라고 말하면서 떠받들어야 할까?

시민과 양들에게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분별'이다.
적어도 살지고 힘이 센 자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5.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 누군가에게 삶을 맡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겔 34:11-15, 새번역)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13]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눈물이 난다.
사람 누군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양 떼를 찾아서 돌보신다고 하신다.
직접 하나님이 양 떼를 구출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좋은 목장에 눕게 하고
좋은 풀을 뜯어 먹게 하겠다고 하신다.

지금은 사람 누군가를 찾아야 할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돌봄을 받아야 할 때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찾으시는 양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언제나 약하고 비루하고
헤매고 아프고 길을 잃어서 슬픈 양들을
직접 찾아 나서신다.
그리고 구출하셔서 좋은 꼴을 먹이신다.

반대로 스스로 살지고 힘이 세어지면
하나님이 찾지 않으신다.

그럼 일부러 가난하고 길을 잃고 헤매고
아프고 슬픈 상태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할까?
그럴 리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은 원래가 비루하고 비참하고
슬프고 외롭고 아프고 절망적인 상태로
평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헛된 것들로 자신을 치장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라는 사실을 잊을 뿐이고 덮을 뿐이다.

탐욕과 욕망에 이끌려 돈과 권력을 가지고
그것들로 사람들을 착취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영혼의 헐벗음을 잊는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를 찾지 않으신다.
버려진 자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비루하고 비참한 존재인지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주의 긍휼을 힘입고
주님이 찾아서 구출해서 좋은 풀을 제공하는
혜택을 입을 수가 있다.


6. 사람 목자는 필요 없을까?


그렇다면 사람 목자를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람 목자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그 한계는 분명하다.
사실 사람이 목자일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도자의 역할로서 목자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대원 다닐 때 교수님 한 분이
목사의 위치를 '양치기 개' 정도로 말씀하셨는데,
깊이 공감이 되었다.

양치기 개는 목자의 명령에 따라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면서
양들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목자에게 집중하고 하고
목자를 잘 따라가도록 인도하는 일을 돕는다.

양치기 개는 그런 역할을 하지만
그는 역시 목자에게 돌봄을 받는 양과 같다.
양과 같은 위치이면서 양들을 목자에게로
이끌고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 일을
양치기 개가 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목자가 되어선 안 된다.
자신은 목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도 자신은 양에 불과하다.
양치기 개의 역할을 맡은 양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양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목자인 척하는 삯꾼 목사와
목자인 주님께 이끄는 역할을 하는
올바른 목사를 구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양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자신의 목자라고 믿는 삯꾼 또는 사기꾼과
주님께로 양들을 이끌고 주님께 집중하도록
돕고 훈련하는 참된 '양치기 개'를 구별하는 것이리라.


7. 나는?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목회자인 나는 어떤 위치일까를
참으로 많이도 고민했었다.

목사라고 하면서 성도들을 은근히 착취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자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웠고,
그러지 않으려면 내가 어떤 위치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신분, 위치가 두 가지라는 것이었다.
양이면서 동시에 양치기 개.

나는 양이다.
주님이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늘 주님께 목이 마르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과 답답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말씀 앞에 선다.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교제를 누린다.
나에게 생명이 공급되는 시간이다.
매일 아침 공급받는 생명으로 나는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설교하는 시간, 강의하는 시간보다
비교할 수없이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양치기 개다.
이 말은 내가 결코 목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나에게로 양들을 모은다면, 그것이 목적이라면
나는 목자에게서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오직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애쓸 수 있을 뿐이다.
다른 곳으로 가려는 양들을
그렇게 가지 못하도록 막고
헛된 길로 빠지려는 양들을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고
양들의 눈을 오직 목자에게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
양치기 개인 내가 할 일이다.

이 두 가지 신분이 나에게 주는 자유가 크다.
최선을 다해서 양들을 돌보지만
책임은 나에게 있지 않다.
난 그저 매일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사랑의 눈빛을 보고
그 눈빛 속에서 따뜻하게 명령하시는 말씀을 듣고
양들을 그 부드럽고 따뜻한 목자에게로
올바르게 인도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는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가르치고 훈련한다.
나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스스로 목자이신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참되고 성숙한 양이 되도록 옆에서 돕는 것,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주님의 얼굴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누리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목사로 살아가는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의 목자이신 주님을 더 깊이 누리고
아름답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주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말씀묵상 기본반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먼저 심화반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장점이 많았다.

세미나 진행 후 10일간 세미나 동영상을 열어두었다.
강의 들으신 분들이 충분히 반복해서 들으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강의 전체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면서
자신의 말씀묵상의 태도를 고칠 수 있게 되었다고
몇 몇 분들이 연락이 와서 말씀해주셨다.

온라인 세미나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면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잔잔한 기쁨이 생겼다.
이 분들이 말씀에 집중하도록 해드리는 것이
목사로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제는 시골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사님을 만났다.
좌충우돌하는 중에 성실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섬기면서
한 걸음씩 걸어가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깊은 위로와 감사를 누렸다.

강요와 폭력으로 성도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양치기 개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주님께로 한걸음씩 가까워지도록
겸손히 성도들을 섬기는 이야기들이 너무 감사했다.

구석구석에 이런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이렇게 타락한 시대이지만
이런 분들 때문에 소망이 있구나 싶었다.

양으로서, 양치기 개로서
나의 위치를 결코 망각하지 않기를,
양으로서 목자이신 주님과 깊은 관계를 누려가길,
양치기 개로서 양들이 주님의 인도를 직접 받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일을 멈추지 않길,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는 삶이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93089104_2837512522969118_8932634001097621504_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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