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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 목사 | 2023.08.06 08:05:5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늙은이
어린아이는 떼를 써도 예쁜데
늙은이는 춤을 추어도 보기 싫다.
나도 이제 중늙은이, 이미 춤을 추어도 보기 싫은 몰골이 되었다.
늙은이는 모름지기 시대의 선생이어야 하는데, 늙은이들에게서 “늘~ 그러함”의 장구함과 거룩함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렇다.
첨단 기술 앞에 늙은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초등학생들도 능숙히 다루는 핸드폰도 다루지 못하여 전전긍긍인데 무엇을 가르칠까?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인터넷만 검색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 젊은이들은 늙은이에게 물을 것이 없다. 그러면 삶의 지혜를 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도 없다.
삶의 지혜는 풍성한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다. 나이가 들면 경험은 저절로 쌓이겠지만 지식은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많고 풍부해도 그 양이 너무 적어 지혜로 승화하기 어렵다. 혹 지혜가 되었다 하더라도 몇 마디로 함축하면 그만이다.
오늘날 늙은이들은 산업사회의 경쟁에 몰려 치열하게 사느라 깊이 있는 학문을 하지 못했다. 우선 급한 대로 실용적인 것만 배웠다. 혹 깊이 있는 학문을 하고자 하면 빌어먹기 십상이라고 어른들의 꾸중을 들었다. 그 때는 유교와 불교는 구시대의 유물로 내팽개쳤다. 기독교는 깊은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구원과 축복만 가르쳤다. 그러니 머리가 비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실용지식은 이제 첨단기술 앞에 아무 짝에도 쓸데없고 삶의 깊은 지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으니 오늘날 늙은이들은 정말 쓸모없는 추한 존재가 되었다. 근본을 찾지 않고 현상만 쫓아 숨 가쁘게 살아온 결과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깊이 있게 살지를 못했다. 바쁘게 살았지만 알차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추하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추하다.
이미 늙은이가 된 사람들과, 늙은이가 될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과 같다. 이제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하면서 살까? 가치관이 깊지 못하니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노후 걱정이요, 소일거리 생각이요 건강에 대한 걱정이다. 아직도 근본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을 찾아야한다. 자신을 어떻게 찾을까?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전을 탐독하고 되새기고 묵상하는 것이 제일이다. 적당히 읽지 말고 철저히 읽어야 한다. 무조건 읽지 말고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의심한다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더욱 깊은 것을 알기 위한 꼭 필요한 방법이다. 주석서도 살펴보고 신학서적도 참고해야 한다. 수 십 년 신앙생활 한 장로니 권사니 하는 이들의 성서적소양이나 신학적 소양이 새내기 목사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여건이 허락된다면 동서양 고전도 탐독하고 역사도 공부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예부터 “10년 공부”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지 몰두해서 10년 공부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다. 비록 늙은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수명은 지겹게도 길다. 웬만한 늙은이들에게도 10년 세월은 남아 있으니 지금이라도 10년 공부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경전을 공부하는데도 방법이 있다. 많은 것,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지금 자기가 아는 것 중에 가까운 것에서 미루어 생각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近思錄>의 近思의 뜻이다. 경전 공부는 조금씩 해야 한다. 곱씹어서 해야 한다. 경전을 보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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