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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목사]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란?

무엇이든 츠롸............... 조회 수 92 추천 수 0 2020.05.09 20: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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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란?]

(시편 9편)


하나님의 속성은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 매우 중요한 속성이 공평과 정의다.

(시 9:8, 새번역) 그는 정의로 세계를 다스리시며, 공정하게 만백성을 판결하신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사람의 삶에 어떻게 나타날까?


1. 악인들에게


(시 9:5-6, 새번역) [5] 주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문책하시고, 악인들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 버리셨습니다. [6] 원수들은 영원히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그 성읍들을 뿌리째 뽑으셨으므로, 아무도 그들을 기억조차 못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악인을 멸하신다.
주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악을 행하는 나라과 사람은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멸하셔서 망하게 하신다.

심지어 아무도 그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그런데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방법이 흥미롭다.

(시 9:15-16, 새번역) [15] 저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자기가 몰래 쳐 놓은 덫에 자기 발이 먼저 걸리는구나. [16] 주님은 공정한 심판으로 그 모습 드러내시고, 악한 사람은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 드는구나.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도록 하시고
자신이 쳐 놓은 덫에 걸리게 하시고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걸려 들게 하심으로
그들이 결국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악한 일을 꾀하고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따로 심판을 행하실 필요가 없어 보일 정도로
자신들의 꾀에 스스로 넘어가서 망하게 된다.

악이 스스로 망해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중요한 방법이다.


2. 억울한 약자들에게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서 중요한 표현이 몇 가지 나타난다.

(시 9:9, 12, 18, 새번역) [9] 주님은 억울한 자들이 피할 요새이시며, 고난받을 때에 피신할 견고한 성이십니다. [12] 살인자에게 보복하시는 분께서는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을 기억하시며, 고난받는 사람의 부르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8]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끝까지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억눌린 자의 꿈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억울', '고난', '가난', '억눌린' 등의 표현들이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와 고난받는 자와 억눌린 자들,
즉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을
'고아들과 과부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억울하고 고난받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과 눈물과 애환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 땅의 재판이 권력과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온갖 더러운 판결로 악인들을 보호해주는 것과 달리,
하나님은 공정한 재판관이셔서
억울하고 고난받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무조건 약한 자들의 편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돈과 권력이 없어서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억울하고 가난하고 억눌린 약자들이 피할 수 있는
요새와 견고한 성이 되어주신다.


3. 세상은 억울한 곳이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악인을 반드시 멸하시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약자들은 보호하시는데
문제가 있다.

아무리 봐도 이 세상은
억울함으로 차고 넘쳐나는 곳이라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 세상은 공평과 정의가 시행되지 못하는 것 같고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 같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억눌려 살아가는
수많은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슬픈 세상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런 곳일까?
왜 이런 곳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일까?

왜 세상은 억울함으로 넘쳐나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시는 방법과 관계가 깊다.

악인들의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망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악인들이 함정을 파고 악한 꾀를 만들어내는 것을
하나님이 막지 않으신다.

그래서 세상에는 악인들이 판 함정들과
악인들이 만들어낸 악한 꾀들로 넘쳐난다.
결국 그들은 자기 꾀에 걸려 넘어지겠지만,
넘어질 그때까지는 그 함정과 악한 꾀들이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악인 자체를 완전히 소멸하시면 되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신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과 완벽하게 상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악과 악한 꾀들을 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선을 행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 땅의 '모든' 악인들을
완벽하게 심판하여 없앤다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고,
나 자신도 심판으로 죽어 없어져야 할 것이다.

세상이 억울한 곳에 되는 이유는,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배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억울한 아픔을 당했을 수도 있을 테니
세상이 억울한 곳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럽고 아프면서도 감사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4.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모순적인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매우 중요하게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행적을 전파함

(시 9:1-2, 새번역) [1] 주님, 나의 마음을 다 바쳐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놀라운 행적을 쉬임 없이 전파하겠습니다. [2] 가장 높으신 주님, 내가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이름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행적을 쉬임 없이 전파하려면
하나님의 행적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행적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행적이 자신의 삶을 통과하고서야
하나님의 행적을 전파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감사와 찬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억울함으로 가득찬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행적을 알고
하나님의 행적을 삶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경험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가득 차고 넘쳐나서
그 행적을 전파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만큼 되어서
저절로 전파하고 찬양하는 삶이 되는 것이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본질이다.

둘째, 보복을 기도함

(시 9:13, 19, 20, 새번역) [13] 주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죽음의 문에서 나를 이끌어 내신 주님,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살펴 주십시오. [19] 주님, 일어나십시오. 사람이 주님께 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십시오. [20] 주님,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시며,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행적을 알고 누리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억울한 일에 대해서,
또는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억울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신의 삶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공평과 불의를 보고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당하고만 있는 것은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공평과 불의에 대해서
자신의 힘으로 다 해결하겠다고 덤비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가 있다.

불공평과 불의와 싸우는 것은 신자로서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보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공평과 정의를 위해 노력하지만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복하셔야 완벽하게
공평과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음을 또한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공평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도
하나님께 또한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참된 보복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고
그 보복을 통해서 악인들과 강한 자들이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되게 하실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5. 나는?


억울한 일을 제법 많이 당했다.
웬만한 일은 참을 수 있으나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는 참기 어려워서
마음이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힘이 없었고
부당함에 저항했다가
나만 불이익을 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제법 정의로운 줄 알았지만
나중에 나 자신과 상황을 돌아보니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보였다.

억울하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지만
정작 나도 작게 억울함과 부당함을 주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와닿았다.

기계적으로 완벽한 공평과 정의가 이 땅에 시행된다면
나부터 망하고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음이 주의 은혜임을 깊이 자각했던 때였다.

나는 결코 정의로운 존재가 아님을,
나는 결코 선한 존재도 아님을
그 이후로부터 계속 깨닫고 발견하게 되면서
성경이 말하는 '죄인'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정확한 개념인지 충격적으로 느껴왔다.

그래서 내가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임을 알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말씀과 친해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알아가고 누려가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의 나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꾸역꾸역 말씀을 묵상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조금씩 성경에서 알게 된 그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그 전부터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을 묵상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 하나님과 교제하고
내 삶 깊숙히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하루하루 누려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상은 억울한 곳이었지만,
억울하고 가난하고 아픈 삶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나의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로 살아가면서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의 변화다.

악한 자들이 너무 많이, 잘 보이고
악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도 너무 잘 보인다.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히 위장해서 마치 거룩한 존재들인 양,
시민들과 교인들을 매우 배려하는 양 행동하는
그들의 위선과 악행들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난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할까?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행적을 알아가고 누려가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그 악행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복을 기도한다.
그들의 위선과 악행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보복의 날이 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에게도 한국교회들에게도 이 나라에도
주의 긍휼이 너무나 필요하기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곳,
상식이 통하는 곳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나도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특히 정치, 종교 지도자라 자처하는 악인들도
자신들이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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