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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i Choi | 2023.05.05 08:34:2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홀로 사는 민족
민수기 22:36~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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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발람을 영접하는 모압 왕 발락의 모습이 정교 유착으로 보여 눈에 거슬립니다. “발락은 발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맞이하러, 그의 영토가 끝나는 아르논 강 경계에 있는 모압의 한 성읍까지 나아갔다”(22:36 새번역). 종교의 타락을 가장 반기는 영역이 정치권입니다. 음습하여 불의와 악이 기생하기 쉬운 정치권으로서는 높은 도덕성과 진리에 터한 경건한 종교가 시어머니처럼 잔소리하기보다 자신들과 손을 잡고 적당히 타락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니 발람이 자신의 부름에 응하여 온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환대하며 소와 양을 잡고 근사하게 영접하였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설사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의 대가로 제시한 복채와 재물에 대한 탐심을 품고 발락의 청을 들어주더라도 그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선지자의 체통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말합니다.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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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바알의 산당에 올라 멀리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서 발람은 번제를 하나님께 올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발락과 모압의 고관들에게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23:8). 발락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발람의 대언은 이어집니다. “홀로 사는 저 백성을 보아라.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여느 민족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23:9 새번역). 발람이 본 이스라엘 모습에 선민의 독특한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선민 공동체는 ‘홀로 사는 백성’, 곧 주체적 공동체입니다. 선민 공동체는 자신의 일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객체로 살기를 거부하고 주체로 살겠다는 의지가 출애굽 사건에 담긴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사람입니다. 역시 주체적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물질과 권력로 인생의 본질이 휘둘리지 않습니다. 선지자 발람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적당히 예언하거나, 주문자인 발락의 기분에 맞춰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면 큰 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아직 ‘의인의 죽음’을 꿈 꾸었고 물질의 유혹을 이길 선지자의 혼이 존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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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에 대접을 잘 받고 온 모양입니다. 대접이 공짜일 리가 없습니다. 그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채 분위기에 한껏 취했다면 발람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홀로 사는 민족’을 꿈꿉니다. 이집트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노예적 삶도 싫고, 가나안 족속의 문화에 동화되어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도 반대합니다. 안보를 위한 동맹때문에 주변 나라들로부터 심각한 안보 불안을 초래하는 것도 싫고, 내편 네편 편을 갈라 세상을 더 혼란하게 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70년이 넘도록 이어온 분단 상황을 슬퍼하고, 형제끼리 증오를 일삼는 행위를 중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함께할 대상은 주변 나라보다 형제가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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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절망뿐인 광야 같은 세상살이에도 하나님의 계수함을 받은 자로서 희망의 삶을 잇는 형제와 자매에게 주님의 선한 이끄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면서도 종살이에 익숙한 한국교회 현실이 슬픕니다. ‘홀로 사는 민족’의 당당한 정체성을 이 민족에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국제 질서에 평화가 스미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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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55 나 같은 죄인 살리신hhttps://www.youtube.com/watch?v=pYvbYi22j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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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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