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목사딸의 비밀일기장] 2003년 04월 19일

목사딸의 | 2003.04.19 09:38:5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잘하고 싶을 때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독서실에서 열심히 지우개와 싸우고 있었다.
20살에 처음으로 법학을 부전공하면서 집어들었던 刑法總論(형법총론). 자국이라도 남을까봐 연필로 슬슬 그어놓은 밑줄을 두해가 지난 지금 다시 지우고 있는 것이다. 한자 독음을 몰라서 밑줄을 쳤던, 그 밑에 "?" 표시까지 달아놓고, 나름대로 예까지 써가며 어떻게해서든 이해해 보려던 20살 내 모습이 갸륵했다. 헤드폰을 통해서 강사의 목소리가 외계인처럼 들리고, 손은 연신 주황 샤프와 지우개를 번갈아 쥐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꼬집기" 였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마비되는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벽을 등대고 있는 곳, 오늘은 이 열에 나밖에 없었다. 그 손길의 主體는..
바로, 엄마였다.

아침 나절에 집을 나서며 투정을 부렸다.
- 아.. 딸은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데, 누구는 딸이 얼마나 힘든지 심심한지 생각도 안 하고.. 아! 외롭다~  ^^;
얼마나 유치한지 모른다. 요즘 나는 철저히 유치하고도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만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집안에서 첫째라는 순서를 없애버렸다. 순전히 내 맘대로.. --;
- 아.. 누가 맛있는 점심이나 사줬으면 좋겠네~
하하. 이쯤되면 어머니 마음이 동하실만한데..
4시에 독서실에 오시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도, 내가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까먹었다기 보다는 타인이 그러하듯 어머니도 약속을 어기실 것이라는 불신에서 비롯한 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망각은 불신과 비슷한 단어일 테니까.. 어쨌든, 어머니의 등장으로 꼬르륵 거리며 빈사상태에 빠졌던 위가 조금은 정신을 차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로 보기 좋게 KO 당했다.
어머니의 등장이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는 식단이였다. 시장 뒷골목을 배회하는 걸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어머니가 원하는 메뉴를 물으실 때, 분식집에 가십시다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좀 생각했다는 게 버스 정류장 앞의 '김家네'다.
- 희경아, 우리 샤브샤브 갈까?
- 헉, 엄마.. 지갑 보여주세요. ^^;;
- 우리 큰 딸 맛있는 거 사 줄 돈도 없을까봐. 가자!
- 엄마아~~~ (ㅠ.ㅠ)
택시까지 잡아타고 늘 마을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샤브샤브 집에 가고 있다. 엄마와 함께..

신나게 설명했다. 듣고 있는 테이프의 강사가 내가 주는 불안감과 자신감의 상충되는 그 영역을 엄마에게 "신나게" 설명했다. 택시 운전기사님이 보든 말든 아니, 듣든 말든 "배금자" 변호사 얘기, 군인이 사시합격한 얘기.. 뭐 이런 것들을 나열하는데, 어머니는 그 짧은 와중에도 택시 운전기사님께 자랑이시다.
- 저희 딸이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제가 맛있는 거 사주러 가는 거에요.
한 때는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딸을 자랑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아침마다 다니는 수영장에서도 "예쁘고 기특한 우리 딸" 자랑. 보험 아줌마에게 건강 보험을 가입하시면서도 "법 공부하는 우리 딸" 자랑. 눈을 흘겨가며 그러시지 말라고 핀잔을 얼마나 많이 드렸는지.. 그런데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엄마의 그 모습이 너무나 솔직하고 가식없는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이어서 내가 앉아 있는 시트까지 묵직한 뜨거움이 전해졌다.

"청포도 캔디 사건" 이후, 가족들의 놀림이 엄청나다.
사탕이 중요하냐, 엄마가 중요하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탕을 준 사람이 중요하냐, 엄마가 중요하냐라는 논쟁이겠지만.. 나로서는 그저 씨익 웃고 만다. 그거야 물으나마나 아니겠는가. ^^; (어, 쓰고 보니 나도 답을 모르겠다. 누가 더 중요하지..? 하하.)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내 모습만큼, 어머니도 조금씩 내어주고 계신다.
내 삶 속에 함께해 오셨던 당신의 자리를.. 아주 조금씩,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털털거리며 운동화 끌고 푸시시하게 다니는 딸은 공부한답시고 밤늦게까지 집에 없는데, 그런 딸이 가끔씩은 가족들까지 모른척하고 혼자 또 예수원에 다녀오겠다고 하는데.. 서운하셨을 터. 내색은 없으셨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을 수 있기에 되려 그 마음을 생각하고 더 아팠던 적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브 샤브를 앞에 두고, 우리도 집에서 이 메뉴를 한번 시도해 보자며 두 모녀가 양념맛을 분석해 본다. 식당 종업원이 들었다면 어디 다른 식당에서 스파이로 잠입했다 생각했으리라.. ^^* 나는 이제 못 먹는게 점점 없어지는데, 엄마는 '위'때문에 못 먹는게 점점 많아지신다. 밀가루 음식, 맵고 짠 음식. 당신께서 가장 즐기시던 게 아니였던가.
- 이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함께 살겠니.
- 엄마, 전 시집 안가고 엄마 아빠랑 평생 살건데요. *^^*
- 너도 거짓말 하는구나. 3대 거짓말 중에 하나 하는 걸 보니..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 ^^;;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러 버렸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아직도 꽃꽂이 강습을 배우러 다니시던 애띤 모습인데, 내 앞에 앉아계신 엄마는.. 어느새 외할머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직도 엄마는 꿈 속에서 외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같이 살아요.. 같이 살아요를 반복하신다 했다. 수영장에서 알게 된 어떤 분이 내게 엄마가 젊어서 좋겠네 하시는데, 엄마가 그 옆에서 잠시 우울의 빛을 보이셨다. 분명 외할머니 생각이셨으리라..

- 잘하고 싶을 때는 옆에 없는 거라더라. 그래서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거래.
단호박죽을 먹고, 국수까지 건져 먹으며 엄마가 무심코 말을 던지셨다.
그 말에 왜 그렇게 미안해졌을까. 아침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훌쩍거리며 읽은 마태복음 말씀 얘기를 해 드렸더니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바보같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떠난 뒤에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 잘할껄. 바보같은 나도.. 나도..

잠시 시간이 마술을 부렸나 보다. 나는 눈을 부볐다.
나는 다시 독서실로 가기 위해 종점으로, 엄마는 교회에 부활절 계란 삶으시러.. 먼저 내리셨다.
빗방울 맺힌 버스 창 밖으로, 창가에 앉은 나를 보며 환히 웃는 엄마의 얼굴이 뿌옇게 흐려진 창가의 김 사이로 간신히 보였다.
엄마의 얼굴은 분명, 꼬맹이가 당신의 팔짱을 끼는 게 평생 소원이라고 말하며 올려보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엄마..
잘하고 싶을 때 내 곁에 있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오래 오래 함께 하는 거에요.. 아셨죠? (^^)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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