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묵상나눔 › 고독

Navi Choi | 2023.02.28 07:35:1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고독
마태복음 14:22~36
.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시인 안도현 님의 <간격> 첫 연입니다. 시인은 평소에는 잘 몰랐는데 산불이 나고서야 간격과 간격이 모여 숲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인생의 원리도 그렇습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괴로운 고통이다. 아무리 격심한 공포라도 모두가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으나 고독은 죽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사람이며 홀로 고독을 이겨낸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
예수님은 혼자 있고 싶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서,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마 14:22 새번역).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후 예수님의 행동이 평소와 달라 보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주님께서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왜 서둘러 무리를 돌려보내셨을까요? 아, 주님은 따로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23). 주님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이라고 인식하셨습니다. 연약한 육체로 세상에 오신 주님으로서는 하나님과 교통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날이 저물도록 산에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매우 외롭고 쓸쓸함을 의미하는 고독이 인생에 고통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독 때문에 인생이 깊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어는 “내가 고독할 때 나는 가장 고독하지 않다”고 했고, 미국 소설가 펄 S. 벅은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고 하였습니다.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며 고독을 긍정하였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빛만 있으면 대지는 사막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천국에 대한 수용성과 고독을 너끈히 살아낼 지성이 있는 정신인이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기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재촉하고 무리를 서둘러 돌려보내신 주님을 본받아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더 갖기를 원합니다.
.
찬송 :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2023. 2. 28 화
333824893_6019313044774651_6694794484305053742_n.jpg

 

첨부 [1]

댓글 [1]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