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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i Choi | 2023.03.09 07:20:5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용서, 언제까지
마태복음 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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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일입니다. ‘관용’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일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와 관용에 터하여 신앙과 삶의 가치를 세웁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고 하셨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 말씀을 ‘원수에 대하여 호감을 갖거나 근사한 사람으로 오해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잘되기를 바라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할만해서가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이듯, 용서란 원수를 대할 때 자기처럼 대하는 태도입니다. 남의 작은 실수는 침소봉대하여 지탄하면서 자신의 큰 허물은 모른척하는 일은 위선자입니다(7:5). 지금 우리 사회는 위선자 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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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프랑스 툴르즈 지방에서 위그노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를 꿈꾸는 이 청년은 당시 사회에서 위그노로 사는 것에 한계를 느껴 절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습니다. 청년이 로마가톨릭교회로 개종을 결심하였는데 이를 반대하는 위그노 아버지 장 칼라스가 아들을 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툴르즈는 위그노전쟁(1562~1598) 발발 시점에 수천 명의 위그노가 학살당한 지역으로 그 200년이 되는 시점에 교회와 권력은 희생양을 찾고 있었는데 장 칼라스는 더 없이 좋은 사냥감이었습니다. 결국 칼라스에게 거열형이 선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칼라스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고, 잘못 심판한 판사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사건을 목도한 볼테르는 ‘당신이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당신 역시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유명한 『관용론』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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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장 칼라스 사건 이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독일과 프랑스 전쟁(1870~1871)에서 진 프랑스는 ‘드레퓌스사건’으로 면피하려고 하였습니다. 패전 후 프랑스는 강박적인 애국주의 열풍에 휩싸여 군국주의의 길을 재촉하여 반유대주의 열풍이 뜨거웠습니다. 이런 즈음에 유대 혈통의 포병 대위 드레퓌스는 희생양 삼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적의 나라 독일에 군사기밀을 알려주었다는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군국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들, 그리고 교회는 드레퓌스를 한 목소리로 규탄하며 분노하였고, 공화제를 추구하는 정치인과 지성인들은 그 광기에 맞섰습니다. 이때 작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1898)를 써 무죄를 이끌었습니다. 이 사건 후에야 프랑스는 민주정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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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종교 등 사회 모든 분야에 용서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힘으로 한반도를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는 물론, 당시 독립운동을 폄훼하며 일본을 편드는 대통령도 용서하여야 합니다. 저들이 저지르는 무지와 무책임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입니다. 용서가 필요 없는 세상은 언제나 오는 걸까요?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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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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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용서를 생활화하겠습니다. 그런데 용서받은 죄인이 여쭙니다. 언제까지 용서만 하면서 살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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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11 내 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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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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