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엇이든 › 한국말은 어렵다.

김요한 | 2023.03.03 11:05:0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1.
한국말은 어렵다.
뒤늦은 나이(42세)에 생면부지의 출판업에 뛰어들었다가, 몇 년 후부터는 교정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한국말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령,
2.
'사랑받다'에서 '사랑'과 '받다'는 붙인다.
'고난 받다'에서 '고난'과 '받다'는 띈다.
왜 똑같이 명사 뒤에 '받다'를 쓰는데, 하나는 붙이고, 다른 하나는 띄어 쓰는가?
이유는, 명사(사랑, 고난) 뒤에 '하다'를 써서 말이 되면 붙이는 것이고, 말이 안 되면 띈다.
* 요즘은 '고난받다'를 한 단어로 이해해서 붙이는 경우도 많다.
3.
'고난 받다'는 띄어 쓰는데, '고난당하다'는 붙인다. 이유는? 몰라. 나는 젊은 시절부터 엄격하게 교정 훈련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 그냥 한국말 규칙을 하나씩 다 외웠다. 차라리 그게 속이 편했다. ㅋㅋㅋ
4.
대한민국 대통령이 '1909년에 일어난, 일본이 한국을 병탄한 것은, 한국이 못나서 그랬다'는 3.1절 경축사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발언의 요지는, 한국이 일본에 병탄당한 것은, 일본이 나빠서 혹은 잘못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모지리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에 단 하루 사이에 수많은 패러디가 난무한다. 가령,
6.
강도를 당하면, 당한 사람이 나쁜 것이다.
왕따를 당하면, 당한 사람이 나쁜 것이다.
사기를 당하면, 당한 사람이 나쁜 것이다.
배신을 당하면, 당한 사람이 나쁜 것이다.
등등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면, 당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라는 패러디까지 거침 없이 나돈다.
이렇게 가해자가 저지른 악행을 가해자의 책임이 아닌, 피해자의 책임으로 귀속시키는 행위는 첨예한 계급 사회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가파른 피라미드 사회에서, 상위 포지션에 있는 자들은 무슨 짓을 해도 용인이 되나, 하위 포지션에 있는 자들은 늘상 '고난당하'면서도, 오롯이 그것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까지 뒤집어 써야 한다.
바로 이것이 가장 대표적인 '불의'이고, '불공정'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불의를 바로 잡고, 억제하라고 뽑아 놓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입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책임을 운운하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발화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정의롭거나 공정하지 못한 대표적인 까닭이 여기 있다.
7.
무슨 일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슨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 입장에서는,
무슨 일을 가해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무슨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사회는,
그 자체로 지옥이다.
하지만 모든 '당함'이 항상 억울하고 원통한 것만은 아니다. 가령,
어떤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가조작'에 자기 계좌가 '이용당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어떤 이는 성대한 전시회를 열고, 기업으로부터 (강제) 협찬을 '받은' 것 같은 의심이 드는데, 그러나 결국 '협찬을 당한' 것으로 화기애애하게 잘 마무리된다.
어떤 이는 50%에 육박하는 표절과 짜깁기 증거가 명백한데도, 그러나 '박사 수여'를 '당한다.'
이렇게나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모든 사람이 억울하게 당하는 세상에서,
딱 한 사람만 매사에 횡재를 '당한다.'
대한민국 사회에 그런 특별한 당함을 경험하는 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 때문이다.
8.
요컨대, 현재의 대한민국은 결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냥 귀족들의 사회, 나아가 신종 왕정 같은 봉건 사회다.
사회 구석구석이 다 그렇다.
만약, 이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지를 철저히 자각하고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이 사회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자신이 '개 돼지' 취급을 '당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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