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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목사] 회복보다 중요한 회복의 이유

묵상나눔 제임스............... 조회 수 57 추천 수 0 2020.04.19 07: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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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보다 중요한 회복의 이유](에스겔 36:16-38)


1. 회복


회복은 중요하다.
타국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포로에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간절히 원했고
하나님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겔 36:29-30, 새번역) [29] 내가 너희를 그 모든 더러운 곳에서 구원하여 낸 다음에는, 곡식의 소출을 풍성하게 하여, 다시는 너희에게 흉년이 들지 않게 하며, [30] 나무에 과일이 많이 맺히고 밭에서 소출이 많이 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굶주림 때문에 다른 여러 나라의 조롱을 받지 않게 하겠다.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도 그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기에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돌이키는 회복을 이루어주셨다.

그런데 이렇게 물리적으로 포로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고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토록 길게,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회복에 대해서 말씀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회복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말씀하시는 건
이런 회복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물리적인 불편이 생기고 상황이 꼬이고
내가 원치 않는 고통을 겪는 일이 생기면
사람은 당연히 그 고통에서 회복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 불편과 고통에서 회복되기만 하면
모든 것은 정상이 되고
삶은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건 분명 아니다.
그 회복만을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해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2. 회복의 이유


이스라엘이 회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 앞에 악한 모습을 깨닫고 돌이켜
선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서였을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회복의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다소 충격적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회복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깨닫게한다.

먼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땅에 살 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겔 36:17-19, 새번역) [17]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이 자기들의 땅에 살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다. 내가 보기에 그 소행이 월경 중에 있는 여자의 부정함과 같았다. [18] 그들이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려 그 땅을 더럽혔으며, 온갖 우상을 섬겨 그 땅을 더럽혔으므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부었다. [19] 내가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그들을 여러 나라들 속으로 쫓아 보내며, 여러 나라에 흩어지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전혀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은
악하고 패역한 백성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의 포로로 흩어버리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심판을 받고 벌을 받아서 쫓겨간 이방에서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이 그걸 보시고 포로에서 회복시키시는 것이
정상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악에서 돌이키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혀
이방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겔 36:20, 새번역) 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주의 백성이지만 주의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라고 하였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기하고
완전히 버리셔야 마땅해 보인다.
희망이 없는 백성이 아닌가?
도무지 희망이 없는 족속들이 아닌가?

이 상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이켜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겔 3622-23, 새번역)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 까닭은 너희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더럽혀 놓은 내 거룩한 이름을 회복시키려고 해서다. [23]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내 이름을 더럽혀 놓았으므로, 거기에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 이방 사람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내가 내 거룩함을 밝히 드러 내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도,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이스라엘 회복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방 나라들도 하나님의 주님이심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악함에도 그들을 회복시키신 것이다.

삶이 회복된, 또는 회복되는 신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선함이나 착함이나 의로움 때문에
자신의 삶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나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황당하게 교만에 빠지고
자기 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3. 진짜 회복


그렇다면 진짜 회복은 무엇일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삶이 회복되고 불편이 사라지고
원하던 사람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진짜 회복일까?

그럴 리가 없다.
참된 회복은 물리적인 회복일 수가 없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더러움을 향해 달음질치는
내면의 그 악함을 버리고 새로워지는 것이 참된 회복이다.

그 내면의 회복이 없다면
물리적 회복이 아무리 일어난다 해도
다시 악에 치우칠 것이기에
그건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일 수 없다.

그런데 내면의 회복은 가능할까?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죄인이 아닌가?

아 담 이후로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물리적인 회복만으로
모두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 본질적인 회복인 내면의 회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 바로
사람의 내면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리적인 회복 뿐 아니라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겔 36:25-28, 새번역) [25]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28]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맑은 물로 온갖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시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넣어 주셔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 하셨다.

그래서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하는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라 하셨다.
진짜 회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물리적 회복도 필요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래서 그 회복이 진짜가 아니다.
진짜 회복은 내면에 있는 죄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새로운 마음과 영이 부어지는 것이다.

이전에 행하는 악에서 벗어나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놀라운 삶을 누려가는 것이 참된 회복이다.

그 참된 회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셨다.


4. 이스라엘의 실패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참된 회복을 누렸을까?
전혀 그러지 못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전히 악을 행했고 여전히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다.
율법의 정신에는 관심이 없고
껍데기로만 신앙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셔서
율법의 근본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도대체 누구에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새 마음과 새 영이 부어져 말씀대로 살아가는
거룩함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서
죄에서 벗어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과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낙심이 된다.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스라엘의 실패를 더 크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이 시대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에
너무나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의 모습에 절망이 된다.
많이 변했고 성숙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새 마음과 새 영'이 부어졌다고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는
자신에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나의 실패가 아닐까 싶어
마음 깊은 곳이 아려온다.


5. 나는?


'새 마음'과 '새 영'이라는 표현만 보면
그 구절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며 절규했었다.

아무리 나를 살펴봐도
그 새 마음과 새영이 없어서였다.
오히려 옛 사람으로 충만해서
죄에 너무 쉽게 넘어지는 자신을
날마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삶에 기적같은 회복이 분명히 많이 일어났다.
학원 강사로 살아가던 시절에
최선을 다해 강의해서 제법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 삶은 언제나 버겁고 힘들었다.

수많은 수업에 치여서 허덕였고
수업이 없는 시간이나 휴일도
쉬는 시간이나 쉬는 날이 아니었다.
짬이 나면 다음 수업을 위해 교재를 연구해야 했다.

쉼 없는 그 삶 속에서도
탐욕은 스물스물 자라났고
거룩함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바라봐야 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된 지금은
예전의 그런 쉼 없는 삶이 아니다.
좋아하는 성경 강의, 묵상 강의, 설교를 하면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삶에서 엄청난 회복이 일어난 것이다.

영어 강의 준비 대신 설교를 준비하고
말씀묵상 강의를 준비하고
새로운 강좌를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들이 많으니
다음 수업을 위해 교재 연구를 하는 삶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르다.

입시 영어 강의는 내 영혼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교재 연구하고 강의하는 모든 시간을 통해
나는 너무 힘이 들었고 나의 영혼은 척박해져 갔다.

그러나 설교와 묵상 세미나를 준비하고
말씀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은
즐겁고 기쁘고 영혼은 풍성해진다.
내 삶에 획기적인 회복이 일어난 것이다.

영어강사였을 때보다 수입은 당연히 적다.
그러나 그럭저럭 풍성한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면의 복잡함과 불투명한 상태로 인해
늘 알 수 없는 고통이 마음을 짓누르던
과거의 그 상태에서도 거의 벗어났으니
마음의 회복도 제법 많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새 마음과 새 영'이라는 표현을 보는 순간
다시 마음에서 왈칵 눈물이 난다.

다시 한번 낙심한다.
말씀을 묵상해서 예전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어이없게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종종 경험하기 때문이다.

내가 부정당하는 일이 생기면
예전과 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수많은 변명을 늘어놓는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절망스럽다.

나는 도대체 언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음 받아서
완전한 회복을 얻고
주의 '모든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분명 약속하셨는데
왜 아직 나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언제 해결이 되는 것일까?
지금 누리는 이 작은 회복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회복,
더러움이 모두 씻겨지고 새롭게 되는
그 완전한 회복의 날은 도대체 언제일까 싶다.

나는 여전히 작은 것에 마음이 무너지고
주의 은혜로 회복되는 일을
거의 매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은 것에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의 십자가가
놀라운 의미가 되어 다가온다.
나의 이런 죄 때문에 십자가가 필요한 것임을
뼈가 저리도록 깨닫는다.

그 고통스럽지만 감사한 아픔을 겪고서야
마음에 기쁨이 회복되는 작은 부활을 경험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렇게
나의 매일의 삶과 묵상을 통해
작게 경험되고 있다.

아직은 완전한 '새 마음'을 모르겠다.
그것이 나에게 부어졌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작은 새 마음과 새 영'은
분명히 부어진 것 같다.
매일의 삶을 안고 말씀 앞에 서서
십자가와 부활을 작게나마 경험해가는 것이
내가 누리는 새 마음과 새 영이 아닐까 싶다.

더러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그 완전한 새 마음과 새 영을 누리는 날을
마음에서 버릴 수가 없다.
그 날이 어서 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래서 '새 마음과 새 영'이라는 표현만 보면
이토록 울컥 눈물이 난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매일 작은 십자가와 작은 부활을 경험하고 누려간다.
이 불완전한 누림 속에서
완전한 새 마음과 새 날을 그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윤용 목사 (서울 천호동 말씀의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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