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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 목사 | 2021.09.18 07:52:0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교회가 새로워지는 길
종교가 거룩해지면 사람이 모인다. 재물도 모인다. 사람이 모이고 재물이 쌓이면 권력이 된다. 그것이 종교의 타락이다.
종교가 타락하면 사람들은 방황한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권력자들까지도 경건한 종교인들에게는 스스로 머리 숙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헌금하여 풍요로워 졌다하더라도 종교의 풍요로움을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실제로 종교의 부와 권력은 타락이다. 일부러 타락하려 해서가 아니라 기왕에 얻은 부와 권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하게 될 때 종교는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종교적 진리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교회 재산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으로 착각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신도수가 줄고 종교의 재산이 줄고 권력과 멀어짐을 종교의 쇠퇴로 간주한다.

사람이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교는 반대다. 종교가 아무것도 없을 때, 순결하고 청빈하고 열정만 있을 때 종교는 종교답다. 종교가 무엇인가 많이 갖게 되었을 때, 종교는 본질에서 벗어난다. 세상으로부터는 물론이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다 뺏기던지 다 버리던지 해서 벌거벗었을 때 다시금 종교는 종교다워진다.

교회의 부가 곧 타락이라는 것은 교회사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베네딕트 수도회, 클뤼니 수도원, 시토수도원, 프란체스코회, 예수회, 도미니쿠스회 등의 수도회들은 참으로 경건했다. 그들은 노동, 순종, 순결, 학문적 열정 등으로 무장했다. 그들은 참으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었다. 민중들은 물론 권력자들도 머리 숙이고 존경했다.
520년 베네딕트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수도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동했고 선교했고 공부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베네딕트 수도원은 새롭게 서로마의 주인이 된 게르만족들에게 신앙과 생활의 모범이 되었고 문명의 전달자들 이었다. 민중들은 물론 권력자들도 그들을 존경했다. 존경받을 만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베네딕트 수도원 출신이었다. 사람들은 아낌없이 수도원에 재산을 헌납했다. 그 결과 수도원은 부요해 졌다. 그러면서 수도원은 처음의 정신이 퇴색하고 수도원은 부패하게 되었다.

그러자 910년 클뤼니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교회의 부패가 만연된 가운데 그들은 극도로 경건한 삶을 살았다. 교회의 부패를 원천적으로 막고자 모든 성직자의 독신을 표방했다. 클뤼니 수도원은 급속히 확산되었고 많은 이들이 클뤼니 수도원을 지원했다. 세력이 커진 클뤼니 수도원도 교황을 배출했다. 역시 존경받을 만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클뤼니 수도원 출신이었다. 클뤼니 수도원의 위세가 극에 달했을 때 교황이 역시 클뤼니 수도원 출신 우르반 2세였다. 그는 막강해진 교회의 힘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이교도들의 손에서 구원하자고 십자군전쟁을 시작했다. 이렇게 막강해진 교회이기에 역시 타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막강해져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막강해짐이 곧 타락이다. 수도사와 수녀들은 노동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으며 수도원에는 각종 보화들이 넘쳐났다.

그러자 1098년 새롭게 시토 수도원이 설립되었다. 21명의 수도사들이 청빈과 노동을 강조한 베네딕트의 규칙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의 시토부근에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어서 1210년에는 프란체스코 교단, 1216년에는 도미니쿠스 교단, 1540년에는 예수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이 수도원의 수사들도 참으로 경건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졌다. 이단을 박멸하고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하고 사형에 처하는 권한이다. 그들이 권한을 남용한 것인지 정말 그렇게 믿어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열성적으로 이단박멸, 마녀색출에 몰두했다.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곧 타락이다.

교회 타락의 본질은 교회의 부와 권력이다. 윤리적 타락은 부와 권력이 주어지면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부와 권력을 지닌 교회와 성직자는 아무리 경건하려 해도 경건할 수 없고 아무리 근검절약하고 겸손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방석 위에서 청빈한 척 하는 위선으로 본다.
그러니 교회가 새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 권력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 김홍한목사의 <이야기신학 164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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