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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봉 목사 | 2021.04.26 10:01:0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쉼표가 없는 인생은 황폐해진다.

하나님은 쉼표를 찍고 황폐해진 우리 내면을 다시 질서 있게 가꾸라고 하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피드와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소중한 것들을 무시하면서 함부로 처리해왔다. 그 결과로 이전보다 더 편하게, 더 잘 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삶은 더욱 살벌하고 피곤하며 메마르기 시작했다. 쉼표가 없는 인생은 황폐해진다. 우리가 내린 가장 어리석은 결정들은 다 우리가 지나치게 바쁘고 지친 상태에서 내린 것들이다. 하지 말아야 했던 말을 해서 상황을 너무나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경우도 대부분 우리가 바쁘고 지친 상태에서 내뱉은 것들이다. 조금만 여유를 두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기도하며 묵상하는 쉼표를 두었더라면 성령님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점검해주셨을 텐데, 우리는 너무 바빴고 너무 지쳐 있었다. 하나님은 쉼표를 찍으시며 문제의 근원인 황폐해진 우리 내면세계를 다시 질서 있게 가꾸라고 하신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하천 생태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동네 어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작은 하천과 실개천이 농지 정리에 의해 인위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는데, 효용 가치가 없어 보이던 실개천이 실상은 생활하수를 정화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살리는 주요 원천이라고 한다. 그런 작은 개천들이 사라지면서 공해 물질이 강바닥에 쌓이고, 그 결과로 수질이 오염되어 생활환경이 많이 파괴되어 버렸다.
내 영혼의 실개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치열한 매일의 일상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 정화해야 할 영적 퇴적물이 쌓이게 한다. 그러면 우리 영혼은 지치고 사나워지며, 강퍅해지게 될 것이다. 괜히 화내고 짜증내는 일이 많아지고, 원망과 불신과 두려움과 욕심과 시기하는 마음들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온다. 이때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혼을 새롭게 하는 실개천과도 같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바로 이런 것들을 매일 성령의 생수로 영적 디톡스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묵상’(meditation)이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을 살펴보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되받아 좀 더 자세히 본다는 뜻을 갖고 있다. 흐르는 물의 수면에는 영상이 비쳐지지 않는다. 한참 달리다가 들어온 사람은 숨이 가빠서 바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숨을 가라앉히고, 물을 마시고 좀 쉬어야 한다. 하나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바쁜 일상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숨을 고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소리를 끄고(스마트폰, TV, 사람들과의 잡담) 홀로 있어야 한다. 이 침묵과 고독의 시간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야 세상이 뒤흔들어놓은 자기 자신을 가라앉힐 수 있다. 이 시간 동안에 성령께 거칠게 어질러져 있는 우리의 내면세계를 정리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셀라’(selah)라는 히브리어가 자주 나온다. 이는 음악적인 쉼표를 의미하는 단어다. 다윗의 시편의 전체적인 어조를 살펴보면 ‘셀라’ 이후의 다윗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숙하고 수준 높은 믿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고통과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던 다윗이 ‘셀라’를 반복해가면서 점점 평온을 되찾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평안과 담대한 심령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이는 다윗이 셀라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안식하면서 내면세계를 정돈했음을 뜻한다.
다윗도 우리처럼 실수와 실패가 많았던 사람이지만, 넘어질 때마다 셀라의 안식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쉼표의 은혜를 누렸다. 그래서 다윗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계속해서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었다.

고재봉 목사
(기쁨이있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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